세계의 불교 문화 유산
인도의 바자 석굴
심재관/ 강릉대 교수
인도에 현존하는 석굴 사원군은 대략 1천 2백여 곳에 이른다. 그 가운데 마하라슈뜨라에 걸쳐있는 데칸 지역 석굴군을 헤아리면 약 1000여 개에 이른다. 그러니까 인도 석굴 사원의 거의 대부분이 서부 데칸 지역에 밀집해 있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고 이 데칸 석굴 사원의 75퍼센트가 불교의 석굴 사원이다. 그만큼 데칸의 석굴 사원은 불교 건축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서인도나 중인도에서는 이미 기원전 3세기전부터 나무나 돌을 이용해 사원을 짓기 시작했는데, 고고학적으로 가장 오래된 석굴 사원으로는 비하르 주의 바라바르(Barabar) 언덕에 있는 로마슈 리쉬(Romas Rsi)를 위한 사원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사원이 갖는 建築意匠적인 의미는 특별히 입구의 목조양식을 흉내낸 부분이다. 석굴 사원에 표현된 이러한 목조 양식의 특징들은 그 후 초기 석굴 사원의 거의 공통된 모습이기도 하다.
서부 데칸 지역의 석굴 사원군에서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바자(Bhaja) 석굴이다. 바자 석굴은 대략 기원전 100년경에서 70년경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22개의 석굴이 마련되어 있다. 이 가운데, 불당의 기능을 했던 짜이띠야는 초기의 것 가운데 하나이다.
이 석굴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짜이띠야(caitya)가 그 입구와 내부에 보여주고 있는 목조양식의 분명한 특징 때문이며, 또하나는 19번 비하라(vihara) 석굴의 내부가 보여주는 조각상의 독특함에 있다.
짜이띠야 석굴은 스투파나 불상을 모신 초기 석굴 사원의 불당(佛堂)을 의미한다. 바자 석굴군에서는 12번 짜이띠야 석굴이 유명하다. 석굴의 입구는 로마슈 리쉬의 석굴 입구처럼 말발굽 형태로 둥글게 모양을 냈다. 그 입구 좌우의 윗쪽으로는 보다 작은 창문을 내었는데, 이 창문은 실제의 창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단독 목조 건물의 형태를 흉내내 그대로 석굴벽면에 그것을 부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창문 밑으로는 실제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조각해 넣었는데, 머리모양이나 기타 보석 장식의 인물상들은 슝가(sunga)왕조의 조각과 아주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초기 석굴 사원이 보여주는 말발굽 형태의 건축적 의장들은 고대 인도의 석굴 사원이 어떤 건축에 영향을 받아 조성되었는가를 추측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들이 된다. 뿐만 아니라, 말발굽 형태의 의장은 후대의 거의 모든 인도 건축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게 된다.
바자의 12번 짜이띠야는 긴 반원형의 천정을 하고 있으며, 후미는 둥글게 조성해 그 안쪽 끝에 스투파를 안치했다. 그리고 8각형의 기둥들이 둥근 천정을 떠받치는 반원형 늑재(肋材)들을 떠받치면서 벽을 따라 나열해 있다. 기둥들에 주두머리나 주초석이 없는 점이나 그 내부의 스투파에 별다른 조각이 없는 점도 이 사원의 초기 형태를 말해준다.
여기에 다시 목조 건축의 양식이 반영되어 있는데, 둥근 늑재들은 실제의 구조적인 역할을 하는 부재가 아니라, 단지 그렇게 휘어진 반원형 늑재의 모양만을 조각해 내 것이다. 따라서 바자의 이 짜이띠야는 독립 목조 건축의 모습이 석굴에 나타난 가장 초기의 모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바자 석굴에서 아마 가장 눈길을 빼앗는 것은 19번 비하라 석굴일 것이다. 이 19번 석굴은 건축적으로도 비교적 정교한 형태를 보여주며, 또한 벽면에 풍부한 조각을 남겼다. 12번 짜이띠야와 거의 동일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비하라에는 한 쪽으로는 베란다가, 그리고 또 한쪽으로는 방들이 딸려있다. 입구쪽에는 가로로 열주를 달았는데, 왼쪽에 두 개의 기둥을, 오른쪽에는 다섯 개의 기둥을 두고 입구를 열어놓았다.
이 비하라도 역시 건축학상 목조 건축의 영향이 잘 나타나 있다. 이 비하라에 붙어있는 베란다의 천정도 반원형 천정으로 마련했는데, 천정을 떠받치는 반원형 늑골부재가 새겨져 있으며, 이 부재들을 연결해 잡아주는 가로 석가래들이 다시 길게 조각되어 있다. 다시 비하라 안쪽 거실 내부에도 목조 건축의 영향이 매우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방문 위에 조각되어 있는 말굽형 의장들과 벽면에 감실(龕室)이나 선반처럼 마련한 공간 위에도 이 의장이 새겨졌다. 이는 당시 뛰어났던 목조 건축의 기술과 그것의 반영을 잘 짐작케한다.
그러나, 이 바자 석굴에서 가장 재미있는 곳은 19번 비하라의 벽면에 돋을 새김된 조각들이다. 베란다의 오른쪽 끝에 있는 방의 입구는 양쪽으로 두 개의 조각이 새겨졌다. 슝가 왕조 당대의 특징처럼, 이들 조각은 얕게 새겨졌다. 왼쪽에는 인도의 태양신 수리야(surya)을 조각한 것으로 보이며, 오른쪽에는 비와 천둥의 신인 인드라(indra) 신을 조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추측하는 것은 태양신이 마차를 끌고가는 것이 보이며, 인드라의 경우, 자신의 승물(乘物)인 코끼리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조각상들이 힌두 신인 수리야와 인드라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불교 사원에 이렇게 수리야가 등장하는 것은 매우 드믄 경우이다. 보통 불경이나 사원에서 인드라는, 브라마 신과 함께, 자주 불교를 보호하는 신장이나 부처님의 수호신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수리야는 다소 예외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 조각이 아직 확인되지 않는 특정한 신화나 불전(특히, 자따까 jataka)의 내용을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왕의 행렬을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개는 이들 조각이 어떤 불전의 내용이라는 주장이 많지만, 최근에는 이와 정반대로, 이것이 서사의 내용이 아니라는 연구결과도 등장했다.
그러나, 두 조각의 의미는 대개 동일한 것으로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수리야가 모는 마차 밑에는 거대한 괴물이 눌려져 있고, 인드라가 탄 코끼리는 주변의 여러 작은 인물들의 소동을 진압하고 있다. 특히, 인드라의 코끼리 주면과 아래쪽에는 나무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데, 인드라의 코끼리가 이들을 짓밝고 코로 그 나무를 뽑아버리고 있다. 이러한 장면으로 볼 때, 수리야나 인드라가 여기서 불교에서 경계하고 있는 어떤 정신적 상태나, 불교가 배척하고 있는 어떤 신앙 형태를 묘사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외에도 이 19번 비하라의 내부에는 작은 스투파와 난장이, 창을 들고 있는 수문장(dvarapala) 등이 곳곳에 조각되어 볼거리를 더해주고 있다.
그림1. 기원전 3세기경의 로마슈리쉬 석굴 사원. 현존하는 최고의 인도 석굴 사원이자 목조 건축의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석굴
그림2. 바자 석굴군의 12번 짜이띠야 석굴 입구부분. 입구천정부분이 말굽아치형으로 되어있다. 입구 왼쪽 위로 보이는 작은 창도 같은 말굽형 아치창으로 꾸몄다.
그림3. 19번 비하라의 천정부. 반원형 늑골(肋骨)부재가 천정을 떠받치는 것처럼 새겼다.
그림4. 코끼리를 타고 있는 인드라와 나무를 뽑아올리고 있는 코끼리. 19번 비하라의 오른쪽 끝방, 오른쪽 벽면.
그림5. 수리야가 타고 있는 마차 밑에는 거대한 괴물이 깔려서 쓰러져 있다. 19번 비하라의 오른쪽 끝방, 외쪽 벽면.
그림6 . 베란다 위쪽 천정 아래에 작은 스투파를 조각하고 마치 천정버팀을 떠받치고 있는 인물상을 새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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