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날의 모정

김순현/ 동국대학교 경주병원 간호부 정신과병동

 


어느덧 여름이 다가오면서 몇 해전 불국사에서 행해졌던 봉사활동이 생각난다. 내가 할 일은 여름 불교 학교에 온 어린이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일이었다. 간호인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부담스러웠던 면이 적지 않았지만 불국사에 도착하여 어린이들의 해맑은 모습을 보는 순간 그런 걱정은 온데간데 없어졌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어느새 입가에는 미소가 살며시 번진다.

불국사는 이미 내가 종교인으로서 여러번 방문하여 친숙한 곳이지만 가운을 입고 약품가방을 챙겨 가기는 조금 쑥스럽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였다. 하지만 안내를 해 주신 비구니스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불안감은 곧 편안함으로 바뀌게 되었다. 안내된 방안에는 이미 어린이 환자 여럿이 누워 잠들어 있었다. 밤새 설사하고 배아프고 발을 삐어 붕대를 감은 채 곤히 잠자고 있었다. ‘아! 이 어린 환자들이 크게 아프면 어쩌지? 바로 응급실에 연락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번뜩 스쳐갔다.

밖에는 여름이 무서워서 도망갈 정도로 열심히 달리고 장난치고 떠들고 노는 아이들, 나무 그늘 밑으로 모여 있는 친구들, 스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는 친구들로 나까지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법당에서 부처님 말씀도 듣고 싶어지고 우르르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싶어졌지만 내가 할 일은 저기 아픈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기에 마루에 앉아서 잠시 하던 생각들을 접기로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시원하면서도 정갈한 방에 누워 있는 우리 어린 친구들은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했고 내가 누구냐고 묻기 시작했다. 어디서 왔으며, 뭐하러 왔는지 물어봐서 하나둘씩 차근차근 답해준 다음 내가 “넌 어떻게 여기 왔니?” 라고 되묻기 시작했다. “전 밤에 배가 아팠어요. 설사했어요” 또 다른 한 친구는 “전 엄마가 보고싶어요”라며 울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유치원에 다니다가 방학이 되면서 여름불교학교에 오게 된 것이었다. 나름대로 안 울고 강하게 버텨봤지만 그래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같이 나란히 누워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형제는 있는지 무엇을 가장 좋아하고 무엇이 가장 맛있는지, 누구랑 가장 친하게 지내는 지 등을. 그러는 동안 어느새 내 등뒤에도 둘이 앞에도 둘이 돌아누워 나의 말동무가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선생님, 배가 아파요.” 배를 어루만져주면 금새 괜찮아지고 하는 걸 보니 아마 엄마 손길이 그리운가보다라고 느끼게 되었다. 어린아이들은 모기 물린 것도 아파하고 치료받으러 왔다. 그러면 약 발라주고 “금새 낫겠네?” 그 한마디면 햇살 같은 웃음을 보이곤 했다.

이렇게 하루해가 저물고 밤이 지나면서 나의 봉사시간은 훌쩍 지나게 되었다. 교대번이 와서 약 종류와 사용내역을 인계하고 누워있는 어린 환자들의 상태가 어떤지 마지막 점검과 함께 인계를 했어야 했다. 크게 다친 친구가 없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나는 마지막으로 “엄마의 손길과 같이 쓰다듬어 주세요”라고 당부하고 스님께 인사를 고하고 내려올 채비를 하였다. 단지 간호만 생각하고 여기에 왔었지만 내가 얻고 내려온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약보다 더 큰 효과를 내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아마 그건 부처님이 내게 주신 큰 가르침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줄곧 내가 간호하고 있는 정신과 환자에게도 어머니 사랑을 하도록 한 계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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