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독심을 이겨내자

경산/ (주)천심공영 대표

 


나는 개를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단독주택에 살다보니 좀도둑 때문에 시골에서 태어난 강아지 한 마리를 구해 키우게 되었다. 처음에 올 때는 어벙해 보이는 것이 촌닭 읍내 장에 갖다 놓은 것 같은 그야말로 촌놈 태가 역력했는데 몇 년 지나다보니 밖에 데리고 나가면 보는 사람마다 좋은 말 한마디씩 하는 것이 본 바탕은 괜찮은 놈이었던 것 같다.

그 후 딸아이가 외국 가는 친구가 주고 간 애완견 한 마리를 또 키워야 하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런데 먼저 온 놈은 기껏해야 집안에는 현관까지 밖에 들어올 수가 없는데, 뒤에 온 놈은 이방 저 방을 마음대로 뛰어다니면서 놀 수 있고 수시로 가족들에게 안겨 귀여움을 받는 귀족생활(?)을 하는 것이, 거주 영역이 뚜렷이 구별되었으니 개 팔자도 같은 개 팔자가 아닌 셈이다. 먼저 온 놈은 마당에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추우면 추위에 떨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발자국 소리에 모든 신경을 쓰면서 밤낮 없이 우리 집을 지켜야 한다는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 생에는 좋은 몸 받아 태어나라고 이름을 ‘보리’라고 지어주고 식구들 모두 오고갈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해 준다. 그런데 기특한 것은 집안에서는 절대 대소변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하루 이틀 집을 비워야 하는 때에는 참고 있다가 꼭 밖에 나가서 보는데 그것도 길에는 실례를 하는 법이 없이 산 쪽으로 들어가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다. 낮에는 거의 집에 식구들이 없는 편이라 불교방송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고 나가기에 이놈은 불교방송 애청자중에 두 번째가 라면 서러워 할 것이다. 그래서 이 놈이 불교방송 몇 년을 듣고 벌써 깨달은 바가 있는지 개 중에서 이만한 개 신사가 어디 또 있겠나 싶어진다.

두 번째 온 애완견은 덩치는 작은 것이 얼마나 영리한지 귀여워 해 주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때로는 감기가 들어 축 늘어져 있어도 정신만은 항상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식구가 저녁에 다 들어올 때까지 지키고 있다가 애교 있게 반기는 태도는 변함이 없다.

여기에서 우리 인간들은 단순히 좋아할 것만이 아니라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맡은 바 해야 할 일을 이들 개들과 같이 한결같은 자세로 생활한다면, 가정에서는 웃음꽃이 피어나게 되고 직장에서는 대우받는 사람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요즘 나이 많은 어른들이 가정에서 개만큼도 대접 못 받는 신세라고 한탄하는 서글픈 소리를 흔히 듣곤 했는데 개를 키우다 보니 그 말이 나올 만도 하구나 싶어지며 나 역시 혼자 계시는 노모께 등한시하였음을 깨닫게 된다. 개보다 못한 대접이라는 말은 3년 전의 나의 장인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슬픈 사연이 있다.

대쪽같은 성격에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이나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으며, 노랭이라 할 만큼 근검절약에다 정직하게 앞만 보고 내달은 80넘은 인생의 삶을 나는 존경했다. 딸 넷 다음 얻은 외동아들과 며느리에게 당신이 가졌던 모든 재물과 뜨거운 사랑을 내리셨건만 이 세상을 마감하기 얼마 전에 나에게 찾아와 눈물을 흘리시며 하시던 “개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노라”는 그 말씀이 마지막 대화였으니......

남은 여생을 우리 집에서 모시고 싶었던 나만의 결심은 결국 뜻을 이루지도 못했고, 임종도 보지 못했으며, 입관 또한 보지 못하는 슬픈 인연의 끝자락을 잡고 나 혼자 얼마나 울었던가. 49제 동안 빌고 또 빌었다. 제발 그 무서운 짐만은 꼭 벗어놓고 가시라고.

시대의 추세가 애완 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많은데 본의 아니게 사람보다 우위에 올려 놓고있지 않은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또 요즘은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만 하고 주위는 안중에 없는 삶을 사는 세상을 가끔 본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우리 불자들만은 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어야 함을 다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부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본래적인 자기를 믿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사노라면 슬퍼서 울어야 할 때가 있듯이, 사노라면 즐거워서 웃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사는 것이 괴로움만은 아니라고들 하지만 삶의 질곡에서 헤맬 때는 우리 불자들에겐 부처님 밖에 의지할 때가 어디 달리 있던가.

삶의 괴로움도 따지고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항상 듣고 되뇌는 탐·진·치라는 말. 오죽 했으면 세 가지 독이라고 표현했을까. 이 삼독심을 잘 못 다루어 후회하는 일 없는 생을 살고 싶어도 기실 잘 안 되는 것이 우리 중생들의 삶이 아니던가.

우리 불자님들 이 삼독심을 항상 새기면서 연꽃처럼 아름답게 살아가실 것을 합장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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