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선재들의 발원문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부처님의 마음
최현정/ 동국대학교 부속유치원 교사
아이들과 함께 한 짧지 않은 시간,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더 많은 시간들...
아이들의 육체, 정신세계는 너무나 변화무쌍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알아야만 했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 아이들의 다양한 생각과 표현들이 낯설게만 느껴졌던 때가 떠오른다. 아이들의 물음에 잠시동안 생각에 잠겼다 얘기하면 어느새 아이들은 다른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그 마음을 헤아리기 전에 ‘왜 그런 질문을 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아이들의 많은 질문 속에서 구할 수 있었다.
아이들마다 다양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다양한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이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있는지가 염려되어서 질문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는 만져보고 싶은 물건이 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무엇을 하는 물건인지 안전하게 사용하고 싶어 물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묻고 싶어서 묻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첫 번째 아이의 경우는 아이의 눈빛을 바라보며 경청을 하였고, 두 번째 아이는 나의 물건에 대한 사전 경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 번째 아이에게는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원하는 대답을 해 주었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과 내가 의사소통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이었다. 아이들은 질문을 할 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궁금한 것을 그냥 물어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른의 잣대로 무엇을, 어떻게, 왜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아이들의 구체적인 물음을 원했다. 아이들의 눈으로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아이들과의 의사소통 방법을 알게 된 나는 문득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법을 해주신 행적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유연한 사고를 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사고가 유연해지자 이번에는 의사소통을 넘어 아이들과의 눈 높이에 맞는 활동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흥미로운 교구, 이야기나누기, 노래 부르기로 아이들과 흥미롭게 활동을 전개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이들은 말로만 다시 되뇌었지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담지는 않는 듯했다. 그래서 어떤 활동이 아이들의 마음에 머물러 있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하루는 뒷산 산책을 하며 아이들이 “선생님, 여기 꽃이 피었어요.”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정말이지 조금은 병든 소나무 사이에서 작은 야생화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여서 어느새 봄이 되어 꽃이 피었구나 하고 지나쳤었다. 그런데 산을 얼마 오르지 않아 “선생님, 이 나무는 이름이 뭐예요?” 하는 물음이 들렸다. “이름은 소나무란다.” 고 대답하자 “선생님, 옷걸이 같아요. 뾰족한 게 여러 개 있어요. 옷걸이 나무라고 불러요.”. 그러고 보니 정말이지 짧은 나뭇가지가 10개가 넘어 마치 옷걸이처럼 생긴 나무였다. “그렇구나. 우리 앞으로 이 나무의 이름을 옷걸이 나무라고 부르자꾸나.” 그때, “선생님, 옷걸이 나무에게 인사할래요. 옷걸이 나무야, 안녕!”. 아이들의 말을 뒤로한 채 산길을 오르는데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먼저 발견했다면 저 나뭇가지를 누가 잘랐을까 하고 생각했을 텐데, 아이들은 마치 친구를 부르듯 나무의 이름을 불러주는구나....’
산책을 하며 아이들의 계속되는 자연의 변화에 대한 발견과 탐구는 이내 뒷산의 소나무,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백로에게서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친구들과도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열려있는 아이들의 마음 자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생각하는 좁은 교감의 영역을 좀 더 넓은 교감으로 마음자리를 넓힐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후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아침이면 아이들은 바깥놀이터의 동물 장을 그냥 지나가지 않고 작은 손에 꼭 쥐여진 당근과 배추를 토끼와 닭에게 주며 말을 건네었다. “맛있게 먹어라”, “사랑해”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개미를 보고는 “개미를 밟으면 안 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이롭게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몸짓을 볼 수 있었다. 순간 아이들에게서 ‘자리이타’행을 실천하는 부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리이타’란 말을 곧잘 되내이면서도 진실한 마음자리의 의미를 몰랐던 그 동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유치원 교사가 된 인연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생활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연스레 구할 수 있었다. 작은 발견이지만 이로 인해 내 마음에도 조그만 불성의 씨앗을 싹틔우게 된 것 같아 환희심이 일었다. 앞으로도 함께 할 나의 도반인 아이들과 함께일 수 있는 유아 교사의 길은 지금 이 순간 더욱 행복한 길임에 분명하다.
고즈넉한 대나무 길을 걸으며 ‘중요한 순간에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조금은 오래된 광고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지금 잠깐 주위를 둘러보면 또 다른 눈으로 불성의 씨앗을 싹틔울 수 있는 인연을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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