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의 창

108배와 108번의 다짐

현성우/ 경주캠퍼스 총무처 총무팀

 

 


훨훨 날아다니는 왜가리 떼로 인해 정각원의 아침은 극락정토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마치 다른 세계의 문턱에 온 듯 우리 4명의 신입직원을 반기는 왜가리 떼의 새하얀 날갯짓은 이른 아침 인적이 드문 정각원의 정취를 더욱 신비롭게만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서려있는 동국의 일원이 되면서 정각원에 들러 108배를 올리며 불자로서 또한 신입직원으로서 가져야 할 각오를 다짐하던 지난여름. 108배를 10분 안에 해버릴 만큼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의 수행을 위해 절을 하는 것인지, 동기끼리 108배 빨리 하기 시합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게 우리 신규직원 4명은 고요한 아침 정각원에서 동국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처음 며칠 간은 정각원 돌계단을 오르내릴 때 다리에 알이 배겨 쩔뚝이던 것도 어느덧 단련이 되었는지 3000배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법당 한쪽 어느 학생은 물동이라도 머리에 얹은 것인지 태극권 수련자처럼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108배를 하는 반면 한쪽에선 VTR화면을 빨리 돌린 것처럼 4명이 떼거지로 씩씩거리며 정신 없이 앉았다 일어났다 절하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봐도 우습기만 하다.

새로 산 와이셔츠가 땀으로 흥건히 젖어버리지만 시원한 바람은 어느새 젖은 셔츠를 말려주어 몸과 마음은 그저 상쾌하고 가뿐하기만 하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부처님의 가피로 저희 젊은이 4명이 부처님 나라인 동국에 몸을 담게 되었습니다. 오늘 부처님 전에 저희가 함께 모여 참배 드리듯 거짓말 같이 시간이 흘러 저희 머리에 서리가 내려 이곳을 떠나게 될 시간이 오면 그때 역시 오늘처럼 부처님 전에 저희 4명이 함께 108배 올리며 일생을 동국의 울타리 속에서 진정 보람찬 삶을 살았노라고 떳떳하게 말씀드릴 수 있게끔 저희가 8정도를 실천하며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있게 부디 보살펴 주십시오?’라고 경건한 마음으로 일배 일배마다 원을 담아 108번의 다짐을 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사람을 깨우치고 학문을 전수하는 스승의 모습을 동경해 장래희망이 선생님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세상 가장 귀하고 보람찬 일 중 하나가 교육이라고 생각했고 전공은 상이했지만 훗날 교육계에 몸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한 기대를 하곤 했었다. 같은 말을 수천번하면 그 말이 진언이 되어 결국 이뤄진다고 했던가?

그저 막연하게 바라던 원이 이뤄졌다.

이판스님이 수행에 용맹정진 할 수 있도록 사판스님이 가람의 살림을 꾸려나가듯 동국대학교도 역시 교수와 학생은 학문이라는 진리탐구에 용맹정진하는 이판승이요, 직원은 교수와 학생이 학문에 매진 할 수 있도록 대학의 살림을 꾸리는 사판승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동국대학교의 직원으로서 주어진바 소임을 충실히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정각도량인 동국대학교의 발전에 미력하나마 일조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신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국대학교는 나에게 인재양성의 산실에서 일 할 수 있는 보람을 주는 직장생활의 일터이자 깨달음을 위한 신행생활의 도량이기에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구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나는 직업에 대한 커다란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근무에 임할 수 있다.


예전에 난 부처님 말씀에 대한 깊은 공부는 없이 얕은 지식을 갖고 그저 사찰에 가기 좋아하는 그런 신자였다. 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머리가 굵어지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에 대해 그 소중함을 가슴으로 느끼게 됐고 욕망의 태풍이 몰아치는 칠흑같이 캄캄한 무지의 바다와도 같은 젊은 날의 방황 속에서 내게 나아갈 길을 비춰줄 인생의 등대를 진실로 간절히 찾게 됐다. 그 즈음 그 어떤 유명한 철학자들의 사상보다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은 욕심으로 가득 찬 내 마음을 비울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인연생기의 심오한 법을 깨우쳤다고 말할 입장은 전혀 아니지만 연기론은 불교가 왜 타종교와 구별되는 위대한 가르침인지 알게 해주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지만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혼자일 때와 여럿일 때 상이한 언행을 많이 하게 된다. 연기법에 의하면 세상에 드러난 죄와 업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다든지 현행법의 처벌을 받는 과보를 받게 되지만 드러나지 않는 과보는 법계에 그대로 누적되어 그대로를 훗날 모두 고스란히 받게 된다. 몸으로 짓고, 입으로 짓고, 무심코 지은 생각까지도 철저히 내가 짓고 내가 그대로 받아야 할 것들이기에 연기의 심오한 법은 내 욕심과 거짓들을 일소하라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해줬다. 진정 연기법을 아는 이가 연기법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연기법에 의지하여 살아간다면 불자로서 바른 삶을 살아 갈 수 있으리라.

 이 글을 쓰는 것을 기회로 그간 흐트러졌던 초심을 다시 한번 가다듬고 지난여름 108배 올리며 흘리던 땀방울이 옥구슬 되어 동국의 터전에 비옥한 양분이 될 수 있도록 동국발전을 위한 견마지로의 공을 아끼지 않으리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 목차 |
 

| 월간정각도량 | 편집자에게 | 편집후기 |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