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말씀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김호성/ 인도철학과 교수


우리가 늘 읽고 외우는 반야심경(이하, ‘심경’이라 함)의 이해에 도전해 본다. 우선 제목을 이해해야 한다. 제목에 이미 경전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이 본래의 온전한 제목이다. 이로써 ‘심경’의 주제가 반야바라밀임을 알게 된다. 물론, 반야바라밀을 말하는 경전이 많다. 『대반야경』은 10만송(頌)이나 된다. 그러한 방대한 반야부 경전의 의미를 간략히 간추려 놓은 경전이 필요하게 된다. ‘심경’이 출현하는 이유이다. 그러니까, 심(心)은 핵심이라는 뜻이다. 산스크리트어 hrdaya는 원래 심장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반야바라밀은 무슨 뜻일까? 그 해설이 본문 안에 있다고 했다. 그 중에서 첫 번째 문장이 중요하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이라는 문장은 이 ‘심경’을 편찬한 결집자(結集者)의 말이다. ‘심경’의 대강(大綱)이다. 그런 맥락은 우리가 읽고 외우는 현장(玄?) 역본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소본(小本)이기 때문인데, 그 보다 경전의 체제를 잘 갖추고 있는 대본(大本)을 통해서 살펴보면 그렇다.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 이하는 사리자에 대한 관자재보살의 설법이다. 이 부연 설명 부분은 다시 ‘심경의 대강’에 대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오온이 모두 공(空)함을 비추어 보시고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셨다.”

한문 ‘심경’으로부터 옮겨본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산스크리트로부터 옮겨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그리고 그때 성스러운 관세음보살마하살께서는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경지에서 행위를  행하면서 이와같이 관찰하셨다. 오온들이 [空함을], 그리고 그것들의 자성이 공함을 본다.”

이렇게 산스크리트본과 한역본을 대조해 보면, 여러 가지 차이점이 등장하게 된다. 그 중에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한역의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셨다(度一切苦厄)”라는 부분이 원래의 산스크리트 본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다”라는 말은 이러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터이다.

비록 산스크리트 본에는 없었지만, 한역에서 그 부분을 삽입한 것은 참으로 탁월한 번역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두 가지 관점에서 그 이유를 제시해본다. 우선, 다음 표를 보자.




나는 이 세 문장을 동일한 의미를 갖는 문장으로 본다. “오온, 즉 우리 인간이 공하다”고 보는 인식이 반야바라밀이다. 그러므로 원인이 되는 행은 동일하다. 따라서 그 행위의 결과도 동일해야 한다. 그런데, ⓐ의 범본에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결과가 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와 ⓒ의 내용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 말을 ‘ ? ’ 속에 집어넣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도일체고액’이었다고 나는 본다.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다.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문장이 반야바라밀에 대한 또 다른 설명으로 다시 제시된다.  여기까지 ‘심경’의 내용을, 범본에 의지하여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여기서 나는 반야바라밀이 곧 중도(中道)라는 점을 보게 된다. 만약에 ‘?’ 부분에 ‘도일체고액’을 집어넣지 않았다면, 공즉시색에 해당하는 내용을 ‘‘심경’의 대강’ 속에는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는 뒤에 나오는 ‘심경’의 부연 설명 부분과 그 앞의 대강(大綱) 부분이 일치하지 않는 어려움이 생긴다. 산스크리트 본에서부터 그러한 문제가 있었지만, 부연 설명에 그 책임을 미루었던 듯 하다. 그런데, 한역의 역자들은 보다 분명하게 조직하고 싶어했던 것같다. 그렇게 ‘도일체고액’을 집어넣음으로써 근본(體)과 작용(用)이 둘 다 갖추어진다.

종래에 공(空)이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색즉시공(색→공)의 측면만을 생각하기 쉬웠다. 그러나, 이제 공즉시색(공→색)을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반야바라밀은 행위로부터의 탈피나 세속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행위나 세속이 갖는 집착성을 탈피한 뒤에 다시 한 차원 높은 행위, 한 차원 높은 세속참여임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한역 ‘심경’의 역자들(대본의 반야, 소본의 구마라집과 현장)은 원래의 텍스트가 갖는 의미를 이러한 “창조적 번역”을 통하여 훌륭하게 드러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 빼어난 통찰력에 감사드리면서 오늘도 나는 ‘심경’을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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