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
희망
양관 스님/ 불교문화대 선학과 강사
어제는 또 비가 내렸다.
통도사를 감싸고 있는 영축산은 지금도 하얀 눈을 이고 있다. 봄은 여러 가지를 시샘한다고 하지만 관음전 앞에 추위에 타 버린 하얀 목련은 애처롭기만 하다. 추위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래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예불을 보고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계속 든다.
옆에 있는 빨간 목련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미리 봄을 알리러 왔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선구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한편으론 하얀 목련은 빨간 목련에 비해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금 지나고 여러 가지 인연조건이 구비되었을 때 나왔더라면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런 처량한 목련을 보면서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날 수 있고 이런 것 때문에 많이들 아파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을 때 겪게되는 고난이란 자기의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막을 수 없는 업보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변해 가는 것이야 불교의 무상의 이치가 아니라도 우리는 시시각각 눈으로 또는 피부로 확인하고 있다.
물론 역사나 개인의 변화에 있어서는 무조건 앞으로만 전진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역사적 진보를 이야기하고 개인의 발전을 바라는 게 인간의 마음이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어떤 때는 거꾸로 돌리려는 세력이 강할 때는 그 쪽으로 움직이는 게 힘의 원리인가 보다.
통도사로 다시 들어와 강사 소임을 맡고 또 은해사에 있던 몇 권의 책을 옮기고 몇몇 사람들을 만나는 쉴 틈 없는 하루 하루의 삶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주위로부터 듣는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야기는 아무래도 열심히 싸우던 정치꾼들이 밥상을 엎어놓고 지금도 다투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마치 똥을 싼 아이가 똥을 주무르면서 더럽다고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저 옆에서 신경 써 주면 좋아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어린아이들의 순전함을 비교하는 것은 어린아이들에 대한 모욕이겠지만 똥을 가지고 노는 모습들이란 것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관음전 앞에 시들고 있는 목련을 보면서 지금의 탄핵을 받은 대통령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왜 그리 빨리 나와서 저렇게 다 말라 비틀어져 가는 몰골로 남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애처롭게 하는지 아니면 역사의 진보를 너무 빨리 읽어버린 큰 오류를 범한 죄의 대가인지 하는 생각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일들은 총선이라는 극한 대결의 장이 끝나면 사그라들 수 있으리라 희망해 봅니다.
마침 어제 강의 차 들렀던 경주의 화사한 꽃들 속에서 제 때를 잘 알고 나와 활짝 피우는 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중에 일부는 이렇게 된서리를 맞고 쓰러져 가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꽃들은 순리에 따라 일어나 피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동참하고 그리고 여름이 되면 결과를 얻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역사와 일련의 정치적인 사건들도 이런 시련들 속에서 조금씩 한 걸음씩 진보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길거리에 피는 아름다운 꽃들처럼 역사의 진보 앞에 쓰러지지 않는 아름다운 꽃을 우리 정치인들은 국민의 힘에 떠밀려서라도 피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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