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교 문화 유산

동인도의 우다야기리와 랄리타기리

정승석/ 불교대학 교수


동인도의 오릿사 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커택(Cuttack)이다. 이곳으로부터 동북쪽으로 60km 거리에 우다야기리(Udayagiri)가 있고, 55km 거리에 랄리타기리(Lalitagiri)가 있다. 이 두 지역은 라트나기리와 함께 동인도 불교의 최후 거점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이 세 지역 중에서 특히 랄리타기리가 가장 이른 시기부터 형성된 불교 유적지일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다야기리

우다야기리는 비루파 강변에 있는 고팔푸르에서 남서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곳에 있다. 경사진 두 지맥이 대지를 형성한 이 곳은 도처에 유물들이 널려 있다.

유적지에 들어서면, 온전한 상태의 건물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인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의 불탑이다. 8엽 형태의 전탑인 이 불탑은 높지도 않고, 복발형을 유지했으며, 위에서 내려다 보면 팔각정의 처마와 유사해 보인다. 탑신의 사방에는 불상들이 각기 다른 자세로 앉아 있다. 이 탑의 위쪽으로는 아마 승원터인 듯한 폐허가 흙과 뒤섞이거나 묻혀 있다. 발굴이 이루어진 언덕 위쪽에는 라트나기리와 같은 양식의 불전이 있다. 이 불전 내실의 불상과 보살상도 라트나기리의 그것과 거의 같다. 내실 정문의 테두리를 장식한 조각들은 인상적이지만, 군데군데 사라진 파편을 찾지 못한 채 복원해 두었다.

언덕 기슭에는 큰 연꽃을 든 거대한 관음상이 있는데, 여기에는 두 단락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서체로 보아 이 명문은 8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언덕 정상에도 조각상들의 파편과 옛 건물들의 유구가 있다.

여기서는 네 팔을 지닌 관음상 2구도 발견되었다. 이 관음상으로부터 약간 남쪽에 거대한 좌불이 있는데, 이 불상은 몇 개의 바위를 조각하여 짜맞춘 것이다. 우다야기리에서 출토된 많은 조각상들은 현재 파트나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필자가 1999년 초에 이 곳을 방문했을 때, 이 유적지의 다른 한 지맥을 형성하는 언덕에서는 한창 발굴 작업이 진행중이었다. 발굴 현장은 새끼줄과 흰색으로 구획이 지어져 있었고, 이미 윤곽이 드러난 그 안에서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바구니에 흙과 벽돌을 담은 뒤 열을 지어 오가느라고 분주했다.

이미 발굴이 어느 정도 진행된 곳에서는 내실의 불상도 드러나 있었다. 이 불전 입구의 벽에는 상태가 거의 원형대로인 보살상이 찬연한 모습을 드러냈는데, 한 사람이 아직도 더 다듬을 것이 있는지 열심히 티끌을 닦아 내고 있었다. 이 모두가 지하 도시를 발굴하는 듯했다. 작업은 지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지역이 번성했을 때의 상황을 가늠케 하는 거대한 우물은 이 곳의 입구에 거의 원형의 상태로 남아 있다. 서기 3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서 우다야기리의 유적 가운데서도 초기의 것이라고 한다. 바위를 깎고 다듬어 사각형의 둘레를 치고 입구에는 샘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을 역시 바위로 조성했다. 이 같이 웅장하고 잘 만든 우물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렵다.


랄리타기리

랄리타기리는 비루파 강으로부터 10km, 우다야기리로부터는 약 5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 곳이 처음 발굴될 때는 이 유적의 중요성만이 부각되었지만, 최근의 발굴에서는 이 곳이 더욱 고대의 불교 단지였을 것임을 시사하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도상학적 유사성에 의거하면, 현재 이 지역의 연대는 슝가 왕조 시대, 즉 기원전 2세기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랄리타기리는 세계 불교사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불교 시설들 중의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여기서는 괄목할 만한 것들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고탑(古塔)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 탑에서 유골이 담긴 석함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고대의 유풍뿐만 아니라 금은제 부장품들은, 이것들이 부처님의 유골일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필자는 이 불탑으로 올라가 보았다. 사방이 확 트여서 시야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 불탑의 위치로 선호해야 할 자리는 이런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산치의 대탑도 주변에 장애가 없는 전원의 한가운데 있다. 아마라바티의 대탑이 이런 위치에 있었다면 그렇게 모래흙 속에 묻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럴리타기리에서는 검은 유약을 바른 도자기 파편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아쇼카 왕 시대의 브라미 문자가 새겨져 있다. 이 밖에 쿠샨 시대의 명문, 장식용 브라미 문자 등과 같은 수많은 명문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것들은 랄리타기리가 기원전 2세기에 번영한 불교의 중심지로 설립되었음을 입증한다.

랄리타기리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독특하다. 지금까지 랄리타기리 단지에서 발견된 건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원형 사원의 유구이다. 이 사원은 많은 승방과 불탑들로 둘러싸인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이 유구의 중앙에 불상이 있고 양쪽에는 승방이 조성되어 있다. 이 규모라면 충분히 많은 스님들이 머물며 공부하든가 수행에 전념하고 있었음직하다. 이 같은 구조의 사원들은 기원전 2세기 무렵에 성행한 것들로서 마투라와 탁실라 부근에서 조성되었다.

랄리타기리의 불상들은 거대하다. 도상학적으로 보면, 랄리타기리의 조각상들은 자바와 동남아시아의 모형들과 흡사하다. 두툼하게 까진 입술, 아래로 길게 처진 귀, 길쭉한 얼굴, 경사진 이마와 같은 것이 현저하게 드러난 이 같은 불상의 도상학적인 특징이다.

여기서는 도상학적 지식이 없더라도 남방 불교와의 어떤 연관성을 감지할 수 있다. 터만 뚜렷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불전의 한쪽에는 흙으로 빚은 작은 열반상이 보인다. 투박하면서도 깜찍하게 보이는 이것은 비록 한참 후대의 것일지라도, 여기서 열반상 신앙이 성행했음을 시사하는 징표가 될 수 있다. 현장 법사가 방문했다는 곳도 이 랄리타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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