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길

선(禪)의 입장

김호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책방에 들러 이런 저런 책을 펼쳐 보다가 언뜻 생물학의 세포에 관한 것에 눈길이 멎었다. 참으로 정교한 구조들로 배열되어 있는 우리네 피부의 세포구조가 신기함을 넘어 한없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같은 부위를 육안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달리 현미경을 통해서 바라본 무늬와 구조가 이렇게 달라져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우선 놀라왔다.

이전에 처음 세포에 관해 공부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새롭게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세상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이와 경험과 인식의 폭에서 오는 결과이다. 예전보다 다양한 생활경험과 폭 깊은 사물에 대한 인식이  바로 이러한 차이를 가져왔을 것이다. 이것은 같은 대상을 앞에 놓고도 보통의 생각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각도에서 보다 깊이있는 상념을 동원하여 집중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알고 체험해 왔다.

가령 장님 코끼리 만지는 비유와 같은 것이다. 어느 부위를 만지느냐에 따라 각자의 깜냥이 달라지기 때문에 코끼리가 기둥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새끼줄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평평한 벽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널찍한 판자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제 같은 대상을 같은 각도에서 바라보더라도 이들 세포를 바라보는 느낌처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은 무슨 입장이라 해야 하겠는가. 굳이 무어라 표현하려 한다면 그것을 일종의 선(禪)의 입장, 즉 각자의 근기(根機)에 따른 체험의 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환경과 교육과 가치관 등등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와 같이 예전과는 다른 결과를 초래하기까지의 자신의 변화에 대한 인식도 가미된 것임은 물론이다.

설령 그러한 경험과 인식을 지니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에 합당한 경우를 만나지 못하여 스쳐 지나치는 일이 허다하다. 따라서 그만한 것을 이해하는 눈을 지닌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결과 삶의 빛깔과 폭과 깊이는 자신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의 차이만큼이나 클 것이다. 같은 하늘아래 같은 시대를 호흡하면서도 그토록 다르다는 것은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말이 있다. 이것을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 한다. 즉 같은 것을 동시에 바라보는 데에도 각기 따라서 견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동일한 물을 바라보는데 있어 물고기에게는 그들이 깃들어 사는 궁전으로 보이고, 아귀(餓鬼)들에게는 그들이 갈구하는 피고름으로 보이며, 사람에게는 물로 보이고, 천인(天人)에게는 유리세계로 보인다는 말이다. 이것은 인식의 차이라 치부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인식의 차이는 평소의 습관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스스로가 바라보는 눈의 높이만큼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인식의 차이는 그 차이로 끝나지 않는다. 곧 그것이 그 생각을 지배하고 결국에는 전혀 다른 인과가 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생물학의 세포라는 물질의 경우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네가 품고 살아가는 감정의 세포도 마찬가지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머리 속에 인식되지 않는다고 해서 감정을 공허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이를테면 감정에도 물질의 세포만큼이나 다양하고 정교한 구조로 배열되어 있음을 느껴야 한다. 즉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하면 그 감정세포의 배열도 질서정연한 구조를 보인다. 그래서 무엇을 생각하거나 일을 처리할 때도 순조로이 잘 풀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마음이 들떠 있다든가 화가 나 있을 경우에는 오히려 바둥거리고 요점을 지나쳐 버리기 일쑤다. 이것은 실제로 여러 가지 뇌파의 임상실험을 통해서도 나타나는 바이다. 세포라는 구조 대신에 파장의 형태로 나타날 뿐인 것이다.

이러한 대상의 경우와는 반대로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자신의 표현도 일정할 수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달라지기도 한다. 어렸을 적의 꿈이 나이를 먹고 보면 한낱 유치한 장난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소중하고 달콤한 것이었는가를 인정하고 싶어진다. 그토록 소중하던 장난감이 이제 나이가 들어서 별 볼일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하던 순간 우리네는 어린이만이 지니는 고유한 빛깔을 잃어버리고 어른들이나 안고 살아가는 치열한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뇌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같은 대상을 같은 각도에서 다른 인식으로 바라보는 세포만큼이나 커다란 차이로 나타난다. 즉 바라보는 주관과 관찰되는 객관의 입장의 교환은 한정할 수 없는 변화의 깊이로 다가온다. 이러한 자신의 고유한 감정의 세포의 배열은 생물학의 세포처럼 하루하루의 자신의 생활을 그대로 반영하여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러한 인식과 경험과 나이의 차이에서 오는 자신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에 대처해 나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가 보는 자신의 모습과 타인의 눈을 통해서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 이것이 선에 들어가는 일차적인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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