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법문

자연만이 탐욕스런 문명의 해독제

법정 스님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제앙은 누가 불러 들였습니까? 바로 우리 인간들의 생활 형태가 기상 이변의 원인입니다.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이며, 누구도 대지를 소유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생명의 뿌리이자 어머니인 대지를 버릇없는 자식 인간들이 너무 학대하고 있습니다. 요즘에 병원마다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고, 사스라고 하는 괴질이 세계인을 공포에 떨게 하였듯이 듣도 보도 못한 병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들 인간이 어머니인 대지를  병들게 한 업보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모체가 만신창이가 되어있는데, 자식인 인간이 건강할수 있겠습니까?

현대인의 삶은 남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모든 존재는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기 잠재력을 발휘하며, 우주적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거대한 생명의 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기술 문명이 그러한 자연의 자정 능력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 기술 문명은 자연에게 독약과 같으며,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을 깨뜨림으로써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라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글을 쓸 때 현대 문명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컴퓨터를 쓰지 않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 컴퓨터의 사각 스크린만 들여다 보다 보니 더욱 더 이기주의화되고, 참고 기다릴 줄 모르게 됩니다.

더욱 큰 문제는 기계에 의존하다 보니 결국은 기계의 결정에 속박된다는 점입니다. 몇 해 전 뉴욕의 정전 사고에서 보듯이 컴퓨터와 기계가 고장을 일으키면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일손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상자」(箱子)에 보면 “기계의 편안함에 의존하다 보면 기계의 냉혹한 마음에 들어와 순박함을 잃게 된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또 마하트마 간디는 “오늘날 인간이 손을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은 크나큰 비극” 이라면서, “생명의 손을 잃어 버리게 된 것을 스스로 저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돈과 권력, 육체적 향락과 경제적 부만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회에까지 이르렀다. 사실 나는 신문 방송을 접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날마다 지면을 장식하는 만연한 부정부패가 내 심성을 흐리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회 윤리는 말로만 그치면 안되며,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재산과 자원은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유산이며, 그러한 유산을 다음 세대(우리의 내생)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밖에 나가면 이른바 ‘싹슬이’의 탐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필요한 만큼만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 너무 탐욕스러워 지구가 병들어 가고있으니, 지구로부터 얻은 물자를 소중히 다루는 것이 지구 환경을 지키는 일입니다.

색다른 물건에 대한 충동 구매가 문제입니다. 지나가다 좋은 옷이 걸려 있으면 바로 사지말고, 일단 정말 필요한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대형 할인 매장이 대표적입니다. 일단 들어서면서 장바구니가 아니라 커다란 손수레가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차량을 운행하는 것은 그 차체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함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값비싸고 배기량이 큰 승용차를 찾습니다.

광고에도 속지 말아야 합니다. 광고는 상업주의, 소비주의를 부추기는 첨병입니다. 요즘은 신문도 상업주의의 용병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신문 용지를 생산하기 위해 해마다 캐나다에 있는 1만 7000㎢ 원시림이 파괴 되고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도 생명윤리의 피해를 안기고있습니다. 영상매체 또한 자기판단력을 잃고 빠져 들어가게 하며, 시간과 전력을 낭비하는 것은 물론 사고력과 판단력을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요즘 성형 수술이 유행이지요. 얼굴을 뜯어고친다고 팔자가 바뀝니까?

내 얼굴은 내가 행동한 업(業)의 거울입니다. 부와 미추(美醜)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움입니다.

혹자는 “온 세상이 대량 소비, 대량 소비를 하는데 나 혼자 안한다고 세상이 바뀌는가?”라고 질문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차원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한 마음이 청정하면, 모든 법계(法界)가 청정해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순간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었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생의 마음을 잘 다스리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충동과 유혹에 이끌리지 말고, 자기 훈련과 자기 절제가 습관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 많을수록 세상은 편안해집니다. 그래서 ‘자연은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흙을 멀리할수록 병원과 가까워집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궁극적인 존재이며, 문명은 자연의 독약입니다. 문명으로 발생한 질병은 질병으로 치료할 수 없으며, 자연을 통해서만 치유할 수 있습니다.

자연만이 인간의 탐욕으로 생겨난 해독제입니다. 우리 안의 자연스러움을 일께움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을 인간답게 살고, 결국 우리가 돌아갈 곳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이 돌아가야 할 곳은 자연입니다.

 | 목차 |
 

| 월간정각도량 | 편집자에게 | 편집후기 |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