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 도량

몸과 말의 가치

이법산 스님/ 서울 정각원장


표정은 따뜻해도 가슴은 냉정해야 한다. 별다른 생각 없이 마음이 가볍게 움직이면 거미줄에 걸리기 싶고, 쉽게 뱉어진 말은 패가망신을 불러온다. 이 세상에는 병도 많고 허물도 많다. 병이든 허물이든 일단 자신에게 생겨난다면 그 순간부터 괴로운 것이다. 온갖 생명이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서로 자신만이 잘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존재하는 한 괴로움 또한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이 세상을 고해(苦海)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매일 자신만이 괴롭다고 하지만 괴로운 고해는 남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니다. 모두가 자신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조차 나에 입장보다 남의 입장에서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입장에서 나만을 먼저 생각하려니 남에게 하는 가벼운 말 한마디 따듯하게 하기 어려우니 어찌 과보와 과오가 따르지 않으랴. 인과응보(因果應報)는 당연히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누구를 원망하고 무엇을 탓하랴. 다 자기가 지어서 자신에게 다시 오는 것인데.

모든 일을 가만히 신중하게 생각해 보자. 내가 현재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이며 나는 내 노릇을 남부끄럽지 않게 잘 하고 있는가를. 내가 내 자신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를 돌이켜 조용히 잘 살펴보자. 경거망동(輕擧妄動)이란 몸을 가볍게 움직이고 말을 함부로 한다는 뜻이다. 무언가 신중하지 못하면 마음이 산만하여 하려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남에게 미움만 사고, 남을 편안하게 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내 자신이 더 피곤하게 될 뿐이다.

야운 비구의 자경문(自警文)에 이런 말씀이 있다.


“몸을 가볍게 움직이지 않으면 산란한 생각이 쉬어서 선정을 이루고,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 어리석음을 돌이켜 지혜를 이룬다. 실상은 말을 여의었고 진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입은 화(禍)의 문이니 반드시 엄하게 지켜야 하고, 몸은 재앙의 근본이니 응당 가벼이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자주 나는 새는 문득 그물에 걸리는 재앙이 있고, 가벼이 날뛰는 짐승은 화살에 상하는 화가 없지 않도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6년을 정좌하여 움직이지 아니하였고, 달마 대사는 소림굴에서 9년을 말없이 지냈으니 후세에 참선하는 이들이 어찌 옛 자취를 의지하지 않을 것인가?”


이 말은 처음 출가하여 수행하는 초심자들을 상대로 한 교훈적인 것이지만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지표가 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이 날쌘 것과 가벼운 것은 다르다. 날쌔다는 것은 유연하고 민첩하여 모든 일을 눈에 거슬리지 않게 잘 처리한다는 의미이고, 가볍다는 것은 원숭이나 똥파리와 같이 산만하게 허둥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눈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분수도 모르고 함부로 날뛰다가 남의 원성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일을 잘못 하여 자기도 망치고 주변의 인연 있는 사람까지 화를 미치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말은 항상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고 지도자가 될수록 말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진다.

내가 이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극히 상식적인 생각이지만 상대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신분을 망각한 상태에서는 자못 막말이 나올 수 있다. 이는 마음이 산란하고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칫 나 하나쯤이야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행동하거나 함부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대단히 위태로운 생각이다. 미래의 한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는 인간으로써 책임질 수 없는 행동과 말은 절대 삼가야 한다.

묵언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전한 마음의 진리는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말 없는 곳에서 말 없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말씀으로 팔만대장경을 설하신 것은 말 없는 진리를 깨달으라는 수행의 방법론이다. 달마 대사도 바로 이러한 수행에 의하여 대도를 성취하였고, 9년의 시간 속에서 혜가(慧可)라는 큰 제자를 얻어 깨달음의 첨단 수행 방법인 선수행을 펼친 대도사가 되었다.

역대로 대도(大道)를 성취한 성인이나 위대한 지도자는 언행(言行)이 원만하여 모든 생명이 더불어 할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타당성 있는 모습을 보이고 기쁨을 줄 수 있는 희망적인 말씀을 남기었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여도 지도자의 언행은 항상 새롭게 회자되며 세상을 깨우쳐 준다. 근래 행동과 말의 신중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사회적 혼란과 국가적 손실은 물론이요, 국민 개개인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신이 선 자리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망각하여 부분적 대상 경계에 이목(耳目)이 끌려 행동과 말이 함부로 표현되어 많은 사람들을 혼란의 도가니로 빠뜨리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불교의 5계는 바로 이 몸과 말에 주의를 요하는 것이다.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 등 이 다섯 가지 계율만 마음에 새기고 생활한다면 그는 금생뿐만 아니라 세세생생(世世生生)으로 세상에 태어날 적마다 행복한 삶을 살 것이며, 모든 생명과 더불어 아름다운 모습과 미묘한 음성으로 즐거운 사회를 만드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즉, 품위 있는 몸가짐과 향기로운 말은 성공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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