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기도

김호귀 / 불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무엇인가를 향하여 경건하게 손을 모을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부모님을 위하여 잠시만이라도 건강을 빌어줄 수 있다는 것에서 우리는 부모의 한 자식으로서의 긍지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우리도 언젠가는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믿음과 함께 스스로 그 위치를 가늠해 보는 자신만의 고유한 행복이다. 멀리 떠나가는 친구를 위하여 한 마디의 짧다란 이별의 편지라도 괜찮다. 정녕 친구의 안녕과 건투를 비는 마음이라면, 내가 향하는 부처님의 모습을 잠시만이라도 가슴속에서 포근하게 느낄 수 있다면 또 얼마나 든든한 의지처이겠는가.

이렇듯 자신의 정성과 기도속에서 여물어가는 스스로의 살림살이가 있기에 좋은 오늘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감동이다. 사는 것이 감동으로 전해오는 문턱에서 자신의 발 밑을 되돌이켜 볼 수 있는 여유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것은 여유와 솔직한 자신의 발견에서 묻어나온다. 시간은 쪼갤수록 늘어나게 마련이다. 기도는 자신을 드러낼수록 그 깊이에 빠져든다. 시간적으로나 믿음으로나 한번 속은 셈치고 기도에 몰입하는 자신의 모습을 애써 상상해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거기에 자신이 있으되 더 이상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는 데에 이르도록 지속적으로 몰입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 궁극에 도달하여 절대고요에 대한 체험과 함께 보이지 않던 자신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이것은 자신이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있을 때 그 부처님은 자기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하고 있을 때 그 부처님은 자기속에서 우러나온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올리는 기도와 예배는 이미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대상이 자기에게 베풀어주는 가피로 다가온다. 그래서 자신과 부처님은 주객으로 따로 떨어져 있으되 실은 함께 있는 것이며, 대상으로 있으되 자기의 내면속으로부터 자기의 빛깔로 우러나온다. 마음속에 형성된 형체로서의 부처님의 모습은 우리의 의식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며, 그 영상이 파괴되지 않는 한 고스란히 자기속에 남아 있게 된다. 나아가서 자신이 부처님 상호속에 어려 비췬다.

이것은 비단 신앙의 대상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부모와 친구의 우정도 마찬가지이다. 그러기에 그 대상들이 그토록 간절한 감동으로 다가올 때에 우리는 새삼스레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기가 투영된 모습으로 나타난 그림자에서 실체를 의식하게 될 때 그 투영된 모습은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니다. 실체가 없는 그림자는 존재할 수 없고 감동이 없는 신앙이란 무의미할 뿐이다.

아사세왕이 아버지였던 빔비사라왕을 감옥에 유폐시켜 죽이고 어머니 위제휘부인마저 굶겨죽이려 했을 때 위제휘부인이 갈망했던 부처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어머니에게 설법해 주기 위해 하늘나라에 올라간 부처님을 간절하게 사모한 우데나왕의 염원은 또 얼마나 극진했던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신만의 신념이 그대로 신앙이 되어갈 때에 우리는 자기의 고유한 빛깔을 발하게 된다. 자신이 근무하는 직장에서 업무에 대한 숙련은 그 사람의 인격에 그대로 나타난다. 하나의 그릇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도공의 얼굴빛은 그 그릇을 닮아간다. 세상의 모든 진리와 가치와 척도가 그릇으로부터 비롯된다. 자신을 잊은 듯 열연하는 교향곡의 지휘자의 제스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로 나타난다. 소리와 율동으로 음악을 표현한다. 스스로 거기에 몰입하여 그릇이 얼굴빛이 되고 율동과 소리로 음악이 표현된다. 거기에서 굳이 자신과 예술의 몸짓을 구분할 필요가 있겠는가.

스스로가 대상화되어 자기를 바라보게 될 때에 비로소 자기는 대상과의 구분이 없어진다. 기도하는 자기와 기도의 대상인 부처님과의 상대가 사라지고 자기와 부처님은 기도의 감동으로 변화한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부처님으로부터 기도를 받고 합장을 받는다. 그릇이 도공을 만들어 내고, 음악이 소리와 지휘자를 연주해 낸다. 주객의 전도가 이루어진다. 한동안의 깊은 기도와 창조라는 감동속에서 잠시 우리는 우리를 떠나 대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다시 우리라는 현실로 돌아온다. 여전히 나는 기도를 올리고, 도공은 그릇을 만들고, 지휘자는 음악을 연주한다. 달라진 것은 없다. 그대로이다. 그러나 확실히 우리는 변해 있다. 더 이상 신앙의 대상이 신앙의 대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언제라도 나에게 다가오며 나는 언제라도 그 대상으로 다가간다. 그 대상과 내가 이루어가는 무한한 감동의 무대는 그대로 인생의 살림살이요, 자신의 발자욱으로 남는다. 더 이상 지워지지 않는 마음속의 부처님 모습처럼 항상 우리들 곁에 있으면서 외부의 대상과 항상 깊이 교류한다. 그 속에서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솔직한 반성을 통해서 오래도록 깊은 감동의 여운으로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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