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작하는 마음

민준석 / 경주캠퍼스 학생처 취업지원팀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다. 달력을 한 장씩 넘기며 새롭게 맞이하는 한달을 바라보며 무언가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에 부풀어진 마음을 누구나 가질 수 있다는 건 우리 일상에 있어서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해의 시작, 일주일의 시작, 작게는 또 하루의 시작. 그러고 보면 우리 삶에 있어서 언제나 접하고 있는 '시작'이란 단어는 참으로 아름다운 말인 것 같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시작'이란 단어 속에는 모두가 지니고 있는 각자의 무한한 희망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큰 기대와 의지와 달리 또다시 새로운 달들을 맞이할 때마다 지난 달력들을 바라보면 기대한 어떤 일들도 일어나지 않고 한 달이 지나가 버린 경우가 너무도 많은 듯 하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항상 방학계획이며 신년 계획들을 세우면서 자신 앞에 있는 생활에 있어서 시작이란 시점을 만들어 함께 해 왔다. 하지만 방학숙제도 방학 끝나기 직전 허둥지둥 급하게 친구들의 것들을 베끼거나 대충대충 하면서 숙제를 마무리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일기도 매일 안 쓰고 몰아서 한꺼번에 쓰거나 옆 짝의 일기를 베끼다가 선생님께 혼나기도 했던 바로 그 기억.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면서도 이러한 어릴 적 습성들이 몸에 배어 있다보니 항상 계획만큼은 잘 짜는 것 같지만, 문제는 그에 따른 실천이었다. 우리는 늘 시작이 반이네 하면서 자기 자신의 계획을 합리화 시키다보니 늘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는 반은 했다고 안심하다가 너무 쉽게 하루, 이틀 그리고 한달, 두 달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자신의 계획을 잊어버린다. 그러고 '역시 난 안 돼. 다음에는 꼭 목표하는 계획을 밀고 나가야지'하면서 자기 자신의 습성과 나태함을 고치지를 않은 채 합리화하면서 자신을 관대히 여기므로 인해 시작할 때 부풀어졌던 기대와 희망은 어느덧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어 항상 되풀이되고 만다.

이러한 모든 현상들을 우리말로써 제일 표현하기 쉬운 것이 바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이란 우리가 밥 먹고 옷 입고하는 것이 마음이 아니라, 배가 고프면 밥 먹을 것을 생각하고 또 우리가 일이 있어서 어디를 가려고 생각만 하면 이 몸뚱이는 자연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니 천지의 근본이 마음이고 만사의 주체가 이 마음이기에 불법(佛法)에서는 '마음의 수련'을 통해서 삶을 슬기롭게 나아가고자 가르치고 있으며, 이는 또한 불제자들에게 있어서 평생의 과제이기도 하다. 오제왕경(五帝王經)이라는 불교의 한 경전 속에서 부처님께서는 '마음의 알맞은 적절함', 즉 '중도(中道)가 마음을 다스림에 최고의 길'이라고 말씀하셨고, 이를 지켜나가는 것은 행복한 일이라고 여기셨다고 한다.

마음에 적절함 즉 중도의 길이란, 욕망을 두고 말하더라도 그 일이 보고, 듣고, 먹는 것이든 너무 모자라거나 지나치지 않아야 함을 뜻한다. 결국 이는 어떤 욕망도 그것을 적절히 조절하고 균형을 유지하라는 가르침이다. 이미 기본적인 욕망을 인정한 이상 이 같은 중도의 길을 걸을 수만 있다면, 결핍의 불만과 불안에서 벗어나 과도한 집착과 탐닉이 가져올 파탄을 겪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어느 만큼이 적절하다는 말일까. 그것은 지족(知足)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족한 줄 알라'는 다름 아닌 스스로의 마음이 하는 일이다. 마음을 잘 쓰고 다스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스로 마음에서 족함을 알면 되는 것, 다시 말해 마음의 주인은 곧 자신이다. 즉 주인이 스스로 알맞게 조절하고 중도를 걷고 지족해야 할 뿐 달리 길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 부처님의 가르침만으로 만족감에 빠져서는 안 된다. '팔리'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온다.

 

어느 곳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물은 맑고, 많은 연꽃이 피어있었다. 손이 더러운 한 여행자가 있었는데, 연못에 손을 씻으면 손이 깨끗해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손을 씻으러 연못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손은 여전히 더러운 채였다. 이렇게 그는 연못을 지나쳐서 여행을 계속했다.(김재성 역,위빠사나 수행,불광출판부,2003)

 

이 비유가 설해진 다음에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졌다. "만일 그 사람이 더러운 채로 있다면, 누가 비난받아야 하는가. 연못인가, 여행자 자신인가?". 비난받을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여행자이다. 그는 연못에서 더러움을 씻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니 여행자가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붓다는 우리에게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만일 우리가 그 길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 수행을 닦지 않는다면, 우리는 괴로움들을 없앨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괴로움을 없애지 못한다면, 누가 비난받아야 하겠는가 ? 붓다인가, 마음의 수행법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인가 ? 그렇다. 우리 자신이 비난받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언제나 모든 생활에 임함에 있어서 불굴의 정진력으로 자기 자신만의 마음 수행법을 닦는다면,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시간들 속에서 신바람 내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의 삶은 언제나 청춘일 것이다.

 

 | 목차 |
 

| 월간정각도량 | 편집자에게 | 편집후기 |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