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을 위한 원숭이 왕의 충고

안양규 / 불교문화대 불교학과 교수

어느 날 제타바나 사원에서 비구들이 붓다가 그의 친척들을 위해 한 선행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붓다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번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친척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 붓다는 전생에 하였던 선행을 들려주었다.

 

아주 먼 과거에 브라흐마닷타 왕이 바라나시를 통치하고 있을 때, 보살은 히말라야 산에 원숭이로 태어났다. 보살은 매우 힘있게 성장하여 8만 마리의 원숭이를 이끄는 수장이 되었다. 간지즈 강변에 거대한 망고 나무가 산의 모양을 하며 자라고 있었다. 그 열매는 향이 많이 나고 맛이 있었다. 망고 나무의 한 줄기는 강 언덕 쪽으로 뻗어 있었고, 또 다른 한 줄기는 강물 쪽으로 뻗어 있었다. 어느 날 원숭이 왕이 맛있는 망고 열매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만약 단 한 개의 열매라도 강물 속으로 떨어진다면 커다란 재앙이 닥칠 것이다.'이런 재앙을 막기 위해 원숭이 왕은 원숭이들에게 어떻게 하더라도 망고 열매가 강물 위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충고하였다. 그렇지만 작은 한 열매가 숨겨져 있어 발견되지 못했다. 조그마한 열매는 자라서 강물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마침 그때 바라나시의 왕은 강물에서 몸을 씻고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강물에 떠내려오는 열매를 주운 어부는 왕에게 보여 주었다. 왕은 달콤한 망고 열매를 먹고 그 맛을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망고 나무가 강 상류에 있다는 말을 듣고, 많은 뗏목을 만들게 하여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마침내 망고 나무가 있는 곳에 도달하고 나서 왕은 강변에 천막을 치게 했다. 망고 나무에서 몇 개의 열매를 따먹고 나서 나무 밑에 마련된 잠자리에 들었다.

자정이 되어 왕과 신하들이 모두 잠들어 있을 때, 원숭이 왕은 8만 마리의 원숭이들을 데리고 망고 나무에 이르렀다. 원숭이들은 이 가지 저 가지를 옮겨다니며 망고 열매를 따먹고 있었다. 원숭이들이 내는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깬 왕은 병사들에게 명령하였다. "망고를 먹고 있는 저 원숭이들을 포위하고, 활을 쏘아라. 내일 망고 열매를 먹고 그리고 원숭이 고기도 먹을 것이다." 병사들이 왕의 명령에 따라 활을 준비하는 것을 원숭이들은 보고 도망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달아날 길이 없음을 알고 원숭이들은 죽음의 공포에 질린 채 원숭이 왕에게 달려갔다. 원숭이 왕은 두려워하고 있는 원숭이들에게 "너희들의 목숨을 구해 줄 것이다." 라고 말하며 안심시켰다. 곧 원숭이 왕은 강물 위쪽으로 뻗어 자라던 나뭇가지에 기어올랐다. 나뭇가지 끝에서 다른 쪽 강 언덕으로 뛰었다. 강변에서 기다란 덩굴을 찾아내어 덩굴의 한쪽 끝은 튼튼한 나무에 매고 또 다른 나머지 한쪽 끝은 자신의 허리에 묶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원숭이 왕은 원숭이들이 있는 망고 나무로 뛰었다. 그러나 덩굴의 길이가 조금 짧아 나뭇가지의 끝을 간신히 양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 원숭이 왕은 원숭이들에게 말했다. "서둘러라. 나의 등을 밟고 이 덩굴 위를 달려 안전한 곳으로 달아나라."

팔만 사천의 원숭이들은 차례대로 원숭이 왕에게 감사해 하며 모두 무사히 달아났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남은 원숭이는 평소 원숭이 왕을 미워하고 그를 쫓아내고 싶어하였다. 원숭이 왕이 저렇게 위험하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며 죽이고자 하였다. 이 나쁜 원숭이는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서 원숭이 왕의 등으로 뛰어내렸고, 원숭이 왕은 등뼈가 부러진 채 매달리게 되었다. 사악한 원숭이는 의기양양해 하며 원숭이 왕을 뒤로 한 채 달아나 버렸다.

이런 광경을 모두 지켜본 왕은 생각했다. "이 원숭이 왕은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다른 원숭이들의 생명을 지켰다. 저런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동물을 죽게 해서는 안 된다. 안전하게 내려 돌보아야 하겠다." 신하를 시켜 조심스럽게 원숭이 왕을 공중에서 내려놓고, 상처를 돌보아 주었다. 바라나시의 왕은 자신의 잠자리에 원숭이 왕을 눕히고 옷으로 덮어주었다. 원숭이 왕이 물을 마시고 안정을 되찾자, 바라나시의 왕은 원숭이 왕에게 물었다. "그대는 다른 원숭이들이 달아날 수 있도록 자신을 다리로 만들었다. 저 원숭이들이 그대에게 무엇이기에 그렇게 하였느냐?" 원숭이 왕은 대답했다. "나는 그들의 왕으로 그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병사들의 활에 두려워 떨고 있을 때 내가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다스리고 있는 원숭이들의 행복을 지켜줄 뿐입니다. 바른 통치자가 되고자 한다면, 왕의 백성들이 왕에게 소중하게 느껴져야 합니다. 왕의 생명 보다 백성들의 행복이 더 소중해야 합니다."

이런 마지막 말을 남기고 원숭이 왕은 목숨을 거두었다. 바라나시의 왕은 원숭이 왕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도록 하고 타고 남은 뼈를 모아 사당에 모시고 꽃과 향으로 공양하였다. 온 나라의 백성들이 원숭이를 기리고, 바라나시 왕은 원숭이 왕의 가르침대로 선정을 베풀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가 멀다하지 않고 거르지 않고 터져 나오는 불법 정치자금 비리와 구속되는 정치인을 보면서 원숭이 왕의 유훈을 되새긴다. 비단 정치인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지도자도 원숭이 왕의 말을 되새겨야 한다. 가장 작은 조직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가장 큰 조직인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도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구성원들의 행복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면서 수많은 원숭이들의 안전을 도모했던 원숭이 왕의 아름다운 모습을 구현한 지도자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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