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룡뇽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김성철 / 인도철학과 강사

11월 14일, 여느 때처럼 전자메일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던 차에 다급한 제목의 메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지율스님을 살립시다, 천성산을 살립시다, 도롱뇽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평소 안면이 있던 한 재가법사로부터 온 것이었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한 신문기사, 어느 인터넷 신문 귀퉁이에서 본 단식 40일 째를 맞이하는 지율스님의 이야기였다. 경남 양산 천성산을 통과하도록 계획된 고속철도 공사의 중단을 요구하며, 지난 10월 4일부터 단식에 들어갔으니 벌써 42일 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그토록 무심했을까. 사람이, 그것도 스님이 40일을 굶었다는데도 아무런 느낌없이 무심히 흘려버릴 수 있었을까. 일의 자초지종은 놓아두고 우선은 사람을 살리고 볼 일이었다. 필자는 전자메일이 안내해주는대로 도롱뇽 소송인단을 모집하는 서명에 참여한 후, 미력하지만 나름대로 일조를 했다고 자위하면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소식이 주말을 넘긴 후에 들려왔다. 본래 10만 명이 목표였지만 그 목표는 서명을 시작한 지 단 사흘 만에 성취하고, 모두 17만 명이 서명에 참여하여 지율스님이 단식을 회향했다는 것이었다. 서명을 하면서도 과연 늦기 전에 10만 명을 채울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서명을 시작한 지 불과 나흘 만에 이루어진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 기적을 가능하게 했을까.

생명까지 위협하는 긴 단식의 와중에서 새만금 삼보일배의 수경 스님이 단식장인 부산시청을 방문한 것은 단식 39일째 되는 11월 11일이었다. 만일의 사태를 걱정하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승 특유의 강단으로 단식을 밀고 나가던 지율스님은, 이 날 단식 해제의 조건으로 도롱뇽 소송인단 10만 명 모집을 제시하였다. 단식 12일 째인 지난 10월15일, 지율 스님과 대책위는 천성산의 상징인 꼬리치레도롱뇽을 원고로 하여 고속철도 천성산구간 공사착공금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하였다. 그 소송인단의 모집 목표가 10만 명이었던 것이다. 다음날 지율스님을 방문한 정토회의 법륜스님은 편지글을 통해 거리 서명과 인터넷 서명을 촉구했고, 총무원장 법장스님 역시 친서를 통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정토회를 비롯한 20개 불교사회단체도 긴급기자회견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불교계의 제도권과 사회단체가 총동원되다시피 하게 한 추동력은 역시 한 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17만 명의 서명 참여라는 역동적인 응집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불교계만의 이해에 관련된 사안이었더라면 일반인 뿐 아니라, 심지어 타종교인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불교사상에 기반하면서도 불교라는 테두리를 넘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안인 생태와 환경문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자신의 일로 여기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수준과 역량을 가진 시민 사회가 형성되어 있는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된다. 척박한 일상 속에서도 대안적인 사회와 생활방식, 새로운 삶의 태도를 모색하는 노력들이 우리 사회 안에서 작지만 뚜렸한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제적 풍요만을 위한 개발과 발전만 난무하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흐름들 말이다. 이러한 흐름이 생명존중이라는 불교사상의 보편적 측면과 만났을 때, 불교사상 또한 그들를 통해 육화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 뿐일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이들을 연결하는 매체, 인터넷이라는 인다라망이 없었다면 이러한 기적 또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터넷을 통한 여론의 형성과 전파는 이미 주류적인 경향으로까지 자리잡았다.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시위, 반도의 여름을 달구었던 월드컵 열기, 드라마로 가득찼던 지난 대통령 선거를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이번 도롱뇽 소송인단 모집 서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손가락 끝에서 클릭 몇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가벼움이 없을 수 없지만, 그러한 가벼움이 또한 역동성과 집중된 힘을 만들어 낸다. 이번 도롱뇽 소송인단의 모집에서 보여준 것은 불교사상과 환경운동, 인터넷의 행복한 만남의 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천성산(天聖山)이라는 이름은 원효스님의 척반구중(擲盤求衆 : 밥상을 던져 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뜻) 설화에서 유래한다. 당나라의 담운사(혹은 태화사) 스님들이 집이 무너져 내려는 것도 모르고 공양을 하고 있을 때, 대운산 척판암에 머물고 있던 원효스님이 밥상을 던져 그들을 구했다는 것이다. 이후 목숨을 건진 천 명의 스님이 원효대사를 찾아왔을 때, 원효대사는 그들을 천성산 정상 화엄벌로 데리고 가, 화엄경을 강의하여 모두 성불하게 하였다.

천 삼백 여 년이 지난 지금 천성산은 천성산에만 있지 않고, 화엄벌은 화엄벌에만 있지 않다. 지율스님은 밥상도 없이 천성산과 그 속에 깃든 모든 생명을 구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 비움의 공간 속으로 17만 명이 모였고, 그들이 있는 자리 그대로를 천성산으로, 화엄벌로 만들어 버렸다.

 

지율스님은 45일 간의 단식 일지를 시로 기록하였다. 다음은 단식 38일 째 속가의 어머니가 다녀갔을 때 일지다.

 

새벽 첫차를 타고 내려오신 어머님께서

그만 가자.

이젠 그만가자

다 그만 두고

이제, 그만 가자하신다.

 

지율스님의 용맹정진과 감동의 기록들은

천성산 홈페이지

(http://www.cheonsung.com/)에서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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