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그물로 다시 엮는 돈황, 그리고 불교

심재관 / 강릉대 강사

한국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불교학 연구 분야를 꼽으라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적어도 한국불교와 관련된 자료를 제외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사본(寫本)연구일 것이다. 그 일차적인 이유는 물론 연구자료가 되는 사본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번째와 세번째 이유는, 당연한 귀결로, 그 연구자 부재와 함께 연구필요성의 인식부족이라고 볼 수 있다. 문헌학으로서의 불교학은 그 역사를 보건데, 선교사나 정치가, 여행가, 그리고 일부 고전학자들의 필사본 수집에서 비롯되었다. 19세기에 시작된 유럽의 아시아 문헌수집 과정에서 리즈 데이비스(R. Davids)나 호그슨(Hodgson), 또는 슈타인(Stein) 등의 역할이 불교연구에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은, 새로이 발굴된 필사본을 토대로 그것의 비판교정본과 번역으로 박사논문과 연구서를 쏟아내는 외국 불교학계의 사정을 볼 때,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불교문헌학의 실질적인 일차자료인 사본에 접근할 기회가 없는 불교학자들은 어느 정도 일말의 박탈감도 느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자면 우리로서는 인터넷이라는 쇼윈도를 통해 외국의 연구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할 지 모른다. 그러나 사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러한 한계가 비단 연구자들만의 책임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아래에서 볼 수 있듯, 외국의 돈황학을 위한 여러 비영리 사회단체들의 움직임은 이를 반증해준다.

실지로 국내에도 돈황학회가 존재하지만(http://dunhuang.sinology.or.kr), 이 학회에서 진행되는 연구가 대체로 민속학이나 예술, 문학 등에 한정된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돈황의 사본들에 대한 연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통한 불교문헌 연구나 불교사 연구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외국에서 진행되는 돈황연구에서 불교문헌을 비롯한 필사본과 예술품 등에 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먼저 국제돈황프로젝트(The International Dunhuang Project: IDP: http://idp.bl.uk/)를 예로 들어보자. 사실 국제돈황프로젝트가 결성된 계기는 여러나라에서 돈황의 자료들을 수집해 간 까닭에 돈황에 대한 총체적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 시작되었다. 나라와 소장처의 사정에 따라 자료들의 목록조차 준비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소장품들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서로 유물들의 보존을 위해 힘쓴다는 취지이다. 돈황문헌들의 수집이 190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면, 도대체 각 나라들은 그 동안 수집한 약 10만점에 이르는 사본들을 가지고 무엇을 한 것이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국제돈황프로젝트는 거의 백년이 지난 1994년에 이르러서야 결성되었던 것이다.

영국과 독일, 중국, 프랑스, 러시아, 인도 등이 참여한 국제돈황프로젝트의 사무소는 브리티시 라이브러리(British Library)이며 운영은 후원자들의 기부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소장은 수잔 휫필드(Susan Whitfield)가 맡고 있다. 처음에는 유물의 보존과 목록작업에 치중했다가 1997년에 문서의 원문을 전산화하고 이를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스캔한 이미지들이 썩 선명하지 않아 크기도 작아 실용성은 의문시되지만 그런대로 볼 만하다.

현재까지 목록화된 불교관련자료는 약 1만2천여건이며, 이 가운데 원문이미지로 볼 수 있는 것은 8백여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대부분 한문자료에 국한되어 있다. 이 자료들은 검색프로그램을 통해 각각 그 문서들이 발견된 장소, 형태, 문서의 명칭, 주제, 언어 등에 따라 분류해서 찾아볼 수 있게끔 되어 있다. 문서이미지 뿐만 아니라, 오렐 슈타인과 같이 초기 수집가들이 찍어두었던 여러 유적지의 사진들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국제돈황프로젝트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차후 특정한 돈황 '불교문헌'에 대해서 만큼은 원문 검색이 가능한 전산화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브리티시 라이브러리에 있는 티벳 불교사본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하나 기억해야할 것은 일본에서 추진하고 있는 비교적 소규모의 돈황불교문헌 전산화 프로젝트이다. 일본에서는 지론종(地論宗) 논사들의 필사본을 전산화하고 있는데, 비록 이 종파의 문헌이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 영향력이 섭론종이나 화엄종 등에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연구가 나올 수 있다.  

국제돈황프로젝트와 이들의 홈페이지가 문서이미지를 데이터베이스화 했다는 점에서 매력있게 다가온다면, 돈황의 특정 불교문화를 다시 3차원의 이미지로 재구성해보고자 하는 프로젝트 역시 흥미있게 느껴질 것이다. 미국의 노스웨스턴 대학과 중국의 돈황연구학술원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공덕과 장엄, 혹은 불교가 가진 富의 네트웍(Merit, Opulence and the Buddhist Network of Wealth)]이란 다소 멋부린 이름의 프로젝트는, 거의 천년간 독특한 미학적 특성을 발전시켜온 돈황의 불교미술을 3D로 재구현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이들의 홈페이지(http://court.it- ser

vices.nwu.edu/dunhuang/)에는 아직 구체적인 작업의 결실이 공개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연구중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돈황의 석굴내부 전체(천정과 벽면)를 장식하고 있는 장엄한 벽화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프로젝트는 이 석굴사원 내의 벽화를 그대로 3D로 재현해내는 것이다. 이는 평면에서 이해되지 않는 벽화과 천장화의 관계, 벽화와 그 앞에 배치된 불상과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불교미술의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이 작업은 각 벽면을 따라가며 촬영한 2차원의 여러 평면 사진들을 짜맞춘 다음, 색과 광도 조절 후에 설계된 건축프레임에 덧씌워 3차원으로 렌더링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이들의 작업도 헨리 루스 재단(Henry Luce Foundation)의 지원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국제돈황프로젝트가 주로 돈황의 유물보존과 연구를 목적으로 영국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고 있다면, 실크로드재단(Silkroad Foundation: http:// www. silk-road. com)은 돈황을 포함해 보다 넓은 동서양의 지역교류 연구를 후원하는 미국 나름대로의 비영리 연구재단이다. 1996에 설립된 이 재단은 주로 미국 서부지역의 대학 특히 스탠포드와 버클리의 실크로드 연구와 그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을 위한 교육에 힘쓴다. 이를 위해서 재단은 학술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 프로그램을 병행해서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원하는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그룹인 IASSG (Inner Asia Silk Road Study Group)를 통해 국제적인 전문가들을 초빙해 매월 강의를 개설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연구자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소개하도록 한다. 이 외에도 돈황세미나와 돈항국제회의를 마련하고 있다.

이 재단의 사이트가 돋보이는 것은 중요한 자료를 올려놓은 것 때문이 아니라, 이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이 적어도 돈황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끔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초빙한 연구자들의 정보뿐만 아니라, 이들의 강의요지가 비교적 자세히 올라와 있고, 강연 주제와 관련한 연구서적도 함께 소개된다.

물론 돈황연구를 위한 기본자료도 풍부한데, 돈황학의 역사와 연구초기부터 현재까지 돈황연구와 관련된 논문들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서지사항과 사진까지 제공하고 있으며 실크로드와 돈황학에 관련한 최근 뉴스들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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