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속의 토끼뿔
이법산 스님 / 서울 캠퍼스 정각원장

지난 11월 18일 새벽 전 조계종총무원장이며, 현 동국학원 이사장 월암당(月庵堂) 정대(正大) 스님이 세수 67세 법랍 42세로 세상 인연이 다하여 관악산 삼막사(三幕寺) 월암당(月庵堂)에서 입적(入寂)했다. 스님은 당대의 선지식이었던 전강(田岡) 대선사를 만나 초발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원력을 세우고 판치생모(板齒生毛)라는 화두를 받아 오직 이 관문을 타파할 선관(禪觀)만으로 정진하였다. 판때기에 이빨이 있을 수도 없으며, 더구나 이빨에 털이 난다는 소식은 더욱 황당한 문제일 따름이다.

화두(話頭)란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모두가 격(格)에 맞지 않는 말이지만 이 엉뚱한 문제의 관문을 뚫어내기 위한 공부가 참선이다. 화두를 참구하여 뚫어내기만 하면 중생의 모든 어려운 관문(關門)이 일시에 '탁!' 트이어서 생사 없는 본래 구족한 자성의 진리를 체득하게 된다.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듯, 천년의 어두웠던 동굴에 밝은 햇빛이 들듯, 무시겁래의 무명의 악습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천겁만겁의 어두움에 가려졌던 무명업식이 일시에 없어지는 상태를 깨달음의 경지라고 한다. 그 때 그 기쁨에서 읊어내는 노래를 오도송(悟道頌)이라 한다. 정대 스님은 판치생모(板齒生毛), 즉 판때기 이빨에 털 난 관문을 타파하기 위하여 인천 용화사, 용주사, 망월사, 수덕사 등의 선원에서 수행정진 하였다.

스님은 선승으로써 이(理)와 사(事)를 겸비한 조계종의 걸출한 행정가였다.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가장 높게 평가받는 것은 조계종 총무원장 재임 중에 중앙승가대학교를 안암동에서 김포학사로 이사한 일과 한국불교역사문화관의 건립은 한국불교발전에 기여한 위대한 공로라고 할 수 있다. 2003년 1월 동국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일산 불교종합병원 개원과, 2005년 건학 100주년을 맞을 동국의 도약을 기대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는 것은 한국의 모든 불자가 안타까워하는 바이다.

 

래불입사관(來不入死關)  

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

거불출사관(去不出死關)  

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

천지시몽국(天地是夢國)  

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

단성몽중인(但惺夢中人)  

우리 모두 꿈꾸는 사람임을 깨달으라.

 

정대 스님의 임종게(臨終偈)다. 한 평생 수행자의 길을 걸어오면서 파란만장한 어려움과 즐거움도 있었겠으나 생명을 접는 순간에는 오고 감이 있겠는가. 몸뚱이의 생겨남과 없어짐을 생사라고 하는데 생겨날 때는 있는 것 같으나, 죽을 때 한 평생 살았던 것을 돌아보면 모두가 한순간의 꿈일 뿐 무상의 변화 속에서 가고 오고 머뭄도 본래 없는 것. 꿈에 꿈인 줄 안다면 꿈에 펼쳐지는 희비(喜悲)의 현장이 한 바탕 웃음일 뿐 무슨 재미가 있으랴. 꿈이란 깨면 흔적도 없는 것이데 가고 오고 통과할 관문이 어디 있으랴. 망상의 꿈, 집착의 꿈, 탐욕의 꿈에서 깨어나라는 것이다. 꿈을 깨는 자는 걸릴 관문이 없을 것이다.

월암당 정대 스님은 한 바탕 꿈을 깨고 가셨다. 애지중지하던 육신이 아닌 그처럼 마음의 고통을 주던 육신을 헌신짝처럼 벗어 던지고 홀연히 판치생모의 관문을 부숴 버리고 고요하고 고요한 열반의 세계로 가셨다.

정대 스님은 "중생들이여 망상의 꿈을 깨라"는 위대한 교훈을 남기고 법신의 본 자리로 돌아가셨다. 여기 월암당 정대선사의 모습을 그려보며 영전에 시(詩) 한 수 읊어 본다.

월재운상조대천(月在雲上照大千)  

달이 구름 위에서 대천 세계 비추는데,

암중선자농토각(庵中禪子弄?角)  

암자에서 선승은 토끼 뿔을 희롱하네.

정체당당무거래(正體當當無去來)

정체는 당당하여 오고 감이 없는데,

대성일갈파수미(大聲一喝破須彌)

큰 소리 악! 에 수미산이 무너졌네.

 

중생의 마음 속에 여래의 성품 확연하건만 무명업식의 구름이 가려 그 빛을 비추지 못하네. 오직 보이지 않을 뿐 그 광명은 항상 온 법계를 비추고 있다. 참선 수행이란 본래 한 물건도 없는 청정 본연의 자성을 밝히는 것. 달 속의 토끼 뿔은 판때기 이빨에 털 난 소식이나 무엇이 다르랴. 확연히 드러난 본래 자성에 오고 갈 것이 무엇이며 탕탕하여 걸릴 것이 없으니 대자유의 대장부로다. 조계종지(曹溪宗旨)를 이은 임제가풍(臨濟家風)에서 '악!' 한번 소리치니 수미산 같은 중생들의 망상심이 와장창 무너졌네.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도리를 알면 탐욕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소식을 알면 아상(我相)의 고집을 떠나 자비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 마음에 무명 업장이 다 소멸하면 열반적정(涅槃寂靜)을 체득하여 날마다 좋은 날 언제나 기쁨이 넘쳐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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