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법사의 업적
도오 스님 / 불교문화대학 강사

현장(玄?) 법사는 13세에 낙양(洛陽)에 있는 정토사(淨土寺)에서 『유마경』과 『열반경』 그리고 『법화경』을 읽고 14세에 수계를 받았다. 그의 나이 29세가 되자 불타의 성지인 천축국(天竺國)에 가서 성지를 참배하고 고승들에게 불경을 배워 올 것을 결심하고 인도를 향해 떠났다. 당시 중국은 남북조(南北朝) 대립으로 북방 지론학(地論學)과 남방 섭론학(攝論學)의 차이가 교파를 대립시키고 이것으로 인하여 교파간 분쟁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현장은 교파간 분쟁은 불교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각파의 쟁론을 하나의 교리로 통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신이 직접 천축국에 가서 고승들을 친견하고 불경을 배우고 그 불경들을 가져와 번역함으로써 하나의 통일된 교리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3만리 길을 걸어서 인도로 향했던 것이다.

현장 법사가 처음 도착한 곳은 나란타사(那爛陀寺)였으며, 여기서 계현(戒賢) 법사를 친견하였다. 그 때 계현 법사의 나이 106세였는데, 90세 정도로 보였다. 법통으로 보면 무착(無着)­세친(世親)­진나(陳那)­호법(護法)­계현(戒賢)의 순으로 이어지는데 계현 법사도 당시 인도 불교계의 뛰어난 인물이었다. 현장은 계현 법사에게 5년 간 수학을 하였고, 유식(唯識)과 인명학(因明學)을 배우면서 새로운 불교 지식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현장의 나이 37세가 되던 해 계현 법사와 작별을 하고, 5인도를 돌면서 불타께서 수행하셨던 곳을 참배하고 당시 유명하다는 고승들과 거사 등을 만나 유식학과 인명을 배우고 41세에 중국으로 돌아왔다.

인도에서 돌아온 현장 법사는 공원(公元) 645년 나이 46세가 되던 해 불경 번역 사업에 착수하였고, 공원 664년까지 약 20년 간 심혈을 기울여 중국 역경사상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역사상으로 보면 동한(東漢)과 남북조(南北朝) 시대를 비롯 공원 5세기를 전후해서 불학의 모든 분야에 공헌한 바 크다고 하겠다. 특히 불학에서 미륵, 무착, 진나, 호법, 계현 등으로 이어지는 인명(因明) 대법(對法)과 계율(戒律), 중관(中觀), 유가(瑜伽) 등 5과(科)를 모두 번역한 것이다.

이 5과는 5세기 인도의 정통 불학이었다. 이것을 현장이 중국에 전하게 된 것이다. 현장이 번역한 74의 경론(經論)을 포함 도합 1,335권을 번역한 것은 불교사상 유래 없는 일이고 중국의 역사상 중국과 인도의 관계사에서 마치 하나의 빛을 뿌리게 된 것이다.현장 법사는 일대(一代)의 위대한 불학가요, 번역가요, 여행가요, 중국과 인도의 우호 사자인 것이다. 공원(公元) 664년 2월 5일 65세의 나이로 그는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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