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마음 법일 스님 / 경주
정각원 법사
학교에 오기 전에는 일년 중 봄과 가을 두 차례씩 설악산 봉정암에 오르곤 했다. 용대리에서 백담사를 거쳐 수렴동과 쌍폭을 경유해서 봉정암 오르는 길은 4월 말경에서 5월 초순경에 오르면 채 녹지 않은 계곡의 물빛은 연녹색을 머금어 맑고 청량하기 그지없고, 새순이 막 솟아난 연두빛의 숲들이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재수가 좋으면 봉정의 진신 사리탑에 옅게 눈이 내려앉은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그 풍경은 지금껏 뇌리에 박혀 잊혀지지 않는다. 또한 9월 말경이나 10월 초순에 오르면 단풍과 어우러진 가을 햇살은 환희 그 자체이고 또한 가을하늘을 닮아 마음이 아려 아플 정도로 비취빛을 품어내는 물빛은 기도하기 위해 험한 산길을 오르는 불자들의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가파른 암반 길을 그리 힘들이지 않고 산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최상의 도우미다.
봉암을 향한 길을 걷노라면 올라가서 부처님께 기도하겠다는 마음과 산 빛, 물빛에 취해 잡념이 다 떠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까닭에 수많은 불자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부처님의 진신 사리탑을 향해 오르고 있고, 나 또한 수십 차례 올랐지만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감회를 맛 볼 수 있다. 또한 성지 순례의 행렬을 보노라면 ‘불교신자들의 신심(信心)이 정말 대단하구나.’ ‘저런 신심(信心)들 때문에 불교라는 것이 이 땅에서 유지되어 가는구나.’ 하고 느껴진다.
젊은 나이에 백담사를 통하여 봉정에 오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연세들이 60세에서 80세 나이를 가진 노처사님(老處士)과 노보살님들께서 오르는 것을 보면 감탄할 수밖에 없고, 그 숫자가 한둘 정도가 아니라 수십 명 수백 명의 사람이 오르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힘들지 않으세요.”하고 물어보면 “내가 이 봉정암을 한두 번 오르는 줄 알아요. 매년 올라요.” 하시면서 척척 올라가시는 걸 보면 그저 탄성만 절로 나오고, “보살님 연세가 꽤 되어 보이시는데 어떻게 오르시려고 하세요.” 하고 여쭈면 “내가 지금 오르지 않으면 더 늙어지면 오를 수 없기에 올라요.”하시는 분, “무거운 것 같은데 제게 주세요.”하면 “부처님께 올릴 쌀이라 내가 매고 가야 해요.” 하시는 분들, 또 허리가 반 휘고 나무지팡이에 의지해 언제 도착을 할지도 모르는 암자를 향해 쉬엄쉬엄 오르시는 노불자(老佛子)들을 보면 부처님을 향한 나의 신심(信心)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불자들의 믿음이야말로 불교를 지탱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많을 때는 하루에 1000여명이 모여 기도하는 그 곳은 부처님을 향한 마음이 저절로 용솟음치는 곳이며, 5시간 내지 7시간 동안 거친 길을 올라왔으면서도 얼음 같은 차가운 물에 잠시 씻고 휴식을 취한 후 1000배, 3000천배의 기도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저 숙연해 질뿐이다. 바로 이러한 모습들이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하는 믿음이 아닐까?
기도가 끝나고 봉정암에서 소청봉을 올랐다가 희운각까지 되돌아가 내려가는 길에 늘어선 수백의 사람들이 열 지어 내려가는 광경 또한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고, 가파른 암반을 기어내려 가면서 “아이고 힘들어 힘들어” 하면서도 정작 내년에 또 오시겠냐고 여쭈어 보면 “그럼 또 기도하러 와야지요.”하시는 그 말씀에 “존경스럽습니다.”란 말 밖에 드릴 것이 없었다. 이런 믿음은 잠시 잠깐 기도하면서 하심(下心) 모르는 사람들과, 보이기 위한 신앙 형태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귀감이 될 만한 것이고, 이 글을 보는 젊은 청년 불자들에게는 진정한 부처님을 향한 믿음을 배우려면 꼭 하늘과 땅이 맞닿은 봉정에 올라 사리탑을 친견하라고 말하고 싶다.
오르는 길, 내려오는 길에 넘어지거나 부딪치거나 해서 부상자가 가끔 발생하고 암자에 오른 불자들이 발이 삐거나, 손목이 붓거나, 먼 길을 걸은 까닭에 어깨, 허리, 다리의 통증을 호소하시는 분들을 많이 본다. 이럴 때 젊은 우리 청년 불자들이 기도 겸해서 봉사 활동하기 위해 설악산 봉정암을 등반하면 어떨까?
산을 오르면서 생긴 부상자들, 힘겨워하시는 분들에게 친구와 손자 되어 드리고 암자에 올라서는 침을 놓아주거나, 파스를 발라주거나, 다리들을 주물러드린다면 그 보다 더 좋은 보시는 없으리라 생각해 본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젊은 청년 불자들이 신심(信心)을 내어 봉정에 올라 기도도 하고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며 까지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를 행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내어 본다.
잡아함경 제4권의 승가라경(僧迦羅經)에서는
“마치 달이 흐림이 없이
허공을 두루 떠다닐 때에
모든 작은 별 가운데서
그 광명이 가장 밝은 것처럼
깨끗한 믿음도 또한 그렇고
계 있고 지식 있고 아낌 떠난 보시는
탐욕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그 보시는 특히 밝아 환하게 나타나리.”
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 젊은 청년 불자들이 깨끗한 믿음을 내어 아낌을 떠난 보시를 행할 수 있는 마음을 갖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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