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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낙천의
'집에 있으나 마음은 출가하다'라는 시에
차운하여 강석근
/ 인문과학대 국어국문학과 강사
端坐觀空萬慮澄 단정히 앉아 공을 관조하니 온 생각 맑아지고
老禪肌骨髮惟仍 기골은 늙은 선승인데 머리카락만은 그대로네
在家未헆先成佛 속세에 있어도 성불에 장애가 없는데
披?何須要作僧 무엇 때문에 가사 입고 스님노릇 하리오
自始腰抛丞相印 허리에 찼던 정승의 인수를 버렸을 때부터
廻看心有祖師燈 조사의 등불을 돌이켜 볼 마음이 있었네
箇中一段堪嘲事 그 중에 꼭 한 가지 비웃음을 받을 일은
妻置盃呼忽錯應 술상 차리고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에 잘못 대답함이네
<동국이상국집 후집 3권, 次韻白樂天在家出家詩>
위의 시는 이규보의 <집에 있으나 마음은 출가했다는 백낙천의 시에 차운하다>라는 작품이다. 당나라의 시인인 백거이(白居易)(772∼846)는 자가 낙천(樂天)이고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인데 말년에는 불교에 깊이 침잠하였다. 그때의 생활을 노래한 시가 <재가출가시(在家出家詩>)이고, 이규보는 그의 이런 태도에 영향을 받아서 노년에는 불교를 더욱 신봉하였다. 이 시는 이규보의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굳이 출가와 재가의 삶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승련의 진술에는 승속의 차이를 넘어서는 자재(自在)함이 들어 있다. 마음으로 경계를 짓지 않고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면 도인인데, 출가나 재가의 기준으로 도의 경지를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혜능이 ≪육조단경≫에서 언급한 것처럼 출가·재가에 관계없이 청정한 마음이 곧 서방정토라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의 결련에는 이규보의 낭만적이며 탈속적인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앞의 구에서 보여준 자재로운 정신적인 경지가 술로 인해 정점에 이른다. 이규보는 시금주(詩琴酒)를 너무 좋아하여 스스로 삼혹호(三酷好) 선생이라 했듯이 술과는 분리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음주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성품의 요구에 따라 마시고 싶으면 마실 뿐이지 수행하는 거사라 해서 타인의 이목과 음주계에 자신을 묶어 두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에서는 계율을 범한 음주가 오히려 시적 화자의 고차적인 정신 세계를 드러내주는 행위로 승화되며, 이런 표현은 선적(禪的) 역설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반전으로 독자들에게 시원한 배설의 쾌감을 전해준다. 술상을 차려놓고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에 그간의 수행도 잊어버리고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멋쩍게 웃는 시적 화자의 모습에는 선적인 자재함이 묻어 있다. 이런 시적 화자의 태도에는 시인 이규보의 풍류와 자재한 도인의 정신이 아로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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