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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파기 안양규 / 불교문화대
불교학과 교수
이 이야기는 붓다가 사밧티(Savatthi)에 머물고 계실 때 인내심이 부족한 한 수행자에 관하여 말씀한 것이다. 일찍이 붓다가 사밧티에 머물고 있을 때, 양가의 청년이 붓다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였다. 출가하여 불법을 배운 지 5년이 지났을 때, 그는 붓다로부터 명상(선정)을 위한 주제를 받고서 숲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우기 3개월을 보내면서 수행하였지만 약간의 깨달음도 얻을 수 없었다. 낙담하고 있던 그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붓다는 세상에 4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셨는데 나는 정말이지 가장 저급한 부류의 사람에 속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번 생애에선 나에게 어떤 좋은 수행의 과보도 없을 것이다. 숲에 머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붓다에게 되돌아가서 붓다를 친견하며 설법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환속하여 되돌아 세상의 쾌락을 추구했다. 그의 동료들이 이것을 보고 강제로 그를 붓다에게 데리고 갔다. 붓다는 발심했던 비구가 수행을 하다가 자신은 무능하다고 생각하여 포기하고 환속했다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 말씀했다. “비구여! 그대는 전생에 강력한 의지를 굳게 지니고 있었다. 오로지 그대의 힘만으로 많은 사람과 500대의 수레를 끌던 소들이 모래 사막에서 물을 얻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무기력하게 수행을 포기하려고 하는가?” 비구의 전생담을 듣고 싶어하는 제자들을 위해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옛날에 브라흐마닷타왕이 카시(Kasi)국의 베나레스(Benares)를 통치하고 있을 때, 보살은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성하여 500대의 수레를 가지고 장사를 하였다. 어느 날 대략 100Km로 펼쳐진 사막을 횡단하게 되었다. 사막의 모래는 너무나 미세하여 주먹으로 쥘 수가 없을 정도였다. 태양이 떠오르면 사막은 숯불처럼 뜨거워져 걸을 수가 없었다. 이런 사막을 건너려는 사람들은 나무, 물, 기름, 쌀 등을 수레에 싣고 밤에 움직였다. 새벽녘에 천막을 치고 일찍 아침식사를 마치고 그늘에서 휴식(오수)을 취하였다. 그리고 밤에 다시 여행했다. 보살은 상인들 중 별자리를 잘 보는 사람을 뽑아 밤길을 안내하도록 했다.
사막을 거의 다 횡단할 즈음에 밤길을 책임진 상인은 내일이면 사막을 모두 건너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상인들에게 지금까지 운반해왔던 물, 음식 등을 모두 버리게 하고 출발하도록 하였다. 길잡이 상인은 수레 행렬중 맨 앞쪽에 위치해서 별을 보며 길을 안내하였다. 그러나 너무 과로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그만 잠을 자게 되었다. 그가 잠든 사이 수레를 끌던 황소들은 방향을 바꾸어 왔었던 길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날이 샐 때에야 길잡이 상인은 잠에서 깨어나고 이 사실을 알게되어 당황하게 되었다. 어젯밤 출발하기 전에 물, 음식 등을 모두 버렸으니 상인들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 것인지 염려하며 절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보살은 “만약 나마저도 저들과 같이 이성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모두 죽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침착하게 거닐며 사방을 살펴보았다. 쿠사(Kusa) 식물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보살은 이곳 아래에 틀림없이 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을 시켜 이 곳에 우물을 파도록 하였다. 곡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커다란 바위를 만나게 되었다. 더 이상 팔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포기하고 절망하게 되었다.
보살은 저 바위 밑에 물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바위에 귀를 대고 그 바위 밑에서 들려오는 자그마한 물소리를 듣고, 보살은 젊은이에게 말했다. “만약 그대가 지금 포기한다면 우리는 모두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 용기를 잃지 말고 쇠망치를 들고 들어가 저 바위를 깨어 물을 찾아달라.”. 젊은이는 주위사람들이 자포자기하여 낙담하고 있을 때 굳은 결심을 하며 바위를 깨부쉈다. 바위가 두 조각으로 쪼개지고 그 틈 사이로 물이 솟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젊은이의 강인한 의지 덕분으로 물을 마시고 몸을 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음식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무사히 사막을 횡단하여 싣고 간 물건들을 팔아 2∼3배의 이익을 얻고 귀향할 수 있었다.
불법을 만나 수행하다가 도중에 포기한 지금의 비구는 과거 전생에 모든 사람이 실망에 빠져 무기력해 있을 때, 불굴의 정신으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라고 붓다는 이야기하며 지금 수행을 포기한 비구로 하여금 용기를 내게 했다. 전생에 보살이 바위 밑에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물이 있다라는 말을 확신하고 우물을 팠던 것처럼 이번 생에도 붓다의 가르침을 믿고 정진하여 아라한이 될 수 있었다.
어떤 난관에 봉착하게될 때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 이상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혹은 조금 노력해 보더라도 원하던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으면 쉽게 포기해 버리고 만다. 다른 일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열반을 성취하는 일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할 수 있다고 불교는 가르치고 있다. 모든 중생은 성불할 수 있으므로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정진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살펴본 전생담의 요점인 것이다. 성불을 위한 수행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필생의 과업으로 생명과 직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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