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와 공덕
백경임 / 가정교육과 교수

불교 교단은 크게 출가수행자 집단과 재가신자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가수행 집단은 가정을 버리고 사회를 떠나 오로지 수행생활에 전념하는 수행자인 반면에 재가신자 집단은 가정을 가지고 세속생활을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불교의 궁극목표가 열반의 성취라고 하더라도 불교도가 처한 환경과 근기의 차이 때문에 수행방법이 다르지 않을 수 없다. 초기경전에 의하면 출가 수행자는 주로 계(戒), 정(定), 혜(慧)가 핵심을 이루는 8정도를 닦는 반면, 재가신자는 믿음(信)을 가지고, 계(戒)를 실천하고, 보시(布施)를 행하는 것이 권장된다. 이 가운데 보시는 재가신자들의 수행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재가불자로서 이번 생에 실천하는 수행의 중심 목표는 공덕을 지어서 사후에 천상이나 인간 세상에 좋은 조건으로 태어나는 것인데, 그 공덕은 보시를 통해서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가불자들이 행하는 보시는 정신적인 것[法施]도 있지만 주로 물질적인 것[財施]을 의미한다.

 

보시의 조건


보시라는 수행덕목은 출가자와 재가자의 큰 차이점이자 상호공생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초기불교시대 출가자들은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고, 영리적인 직업에 종사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비구들은 신도들의 보시로 살아야 한다. 재가자의 보시에 대해 출가자는 무보수로 종교적인 가르침을 주었다. 즉 법시(法施)는 재시(財施)를 보상함으로서 출가자와 재가자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러나 재가자의 보시가 출가자와 승가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보시가 베푸는 것이라고 해서 아무것이나, 그리고 아무에게나 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좋은 보시가 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을 삼륜(三輪)이 청정해야 한다고 표현한다. 첫째, 보시를 하는 사람이 청정해야 하고, 둘째, 보시하는 물건이 청정해야 하고, 셋째, 보시 받는 사람 역시 청정해야 한다.


보시자의 자격


보시하는 사람이 청정해야 한다는 것은 보시자가 계율을 잘 지키고, 바르게 생활해야 보시자로서 자격을 갖춘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물건을 베푸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의 행이 바르지 않거나 보시의 의도가 청정치 않으면 승가에서는 보시를 거절해야한다.

경전에서는 자신의 부모를 잘 모시지 않는 등 재가자로서의 행실이 바르지 않은 사람, 출가자를 이간시키는 등 수행을 방해하는 사람, 붓다와 법과 승가를 모욕하는 사람을 특히 경계한다. 이 경우 재가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행실을 고칠 것을 약속하지 않으면 출가자들은 그에게서 어떠한 보시도 받지 않는다. 이것을 ‘발우(鉢盂)를 뒤집는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그 당시 재가신도에게 심각한 처벌이었다.

보시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증일아함경에는 “(보시 할 때는) 아끼는 마음을 갖지 않아야 하고, 주고 난 후에 후회하지 않아야 하고, 자기 손으로 직접 보시해야 한다. 뉘우치는 마음이 전혀 없고 도로 받을 생각이 없으면 좋은 이익을 얻는다”고 보시자의 바른 자세를 설한다.


보시물의 조건


보시물이 청정해야한다는 것은 보시하는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즉 독약처럼 살생의 도구가 되거나, 좋지 않은 용도에 쓰일 칼, 방탕한 생활을 유도하는 음녀(淫女)등과 같이 남에게 해를 주는 보시물은 오히려 나쁜 과보를 초래한다. 비유를 들면 땅은 좋아도 나쁜 종자를 심으면 나쁜 수확물을 거두어들이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경전에는 재가신도에게 다음과 같은 보시물을 좋은 보시물로 권장하고 있다. 그것은 7 가지로서, (1) 승가에 땅을 주는 것, (2) 그곳에 사원을 짓는 것, (3) 거기에 가구를 설비하는 것, (4) 사원에 수입을 충당하는 것, (5) 이방인과 여행자를 돕는 것, (6) 병자를 돌보는 것, (7) 춥거나 기근이 들 때 음식물과 과자를 승가에 주는 것 등이다. 즉 출가자들이 수행할 수 있게 승려와 사찰을 돕는 일과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 행위들이 권장되었다.

또 “동산에 과일나무 심으면 나무그늘은 맑고 시원할 것이요, 다리나 배로서 물 건너게 해 주고, 복되고 덕되는 집들을 짓고, 우물을 파서 목마름 풀어 주고, 객사를 지어 나그네 쉬게 하며, 이렇게 하면 그 공덕이 밤낮으로 언제나 자랄 것이다”라고 하여 공공의 여러 사람을 위한 보시도 권장되었다.

그러니까 보시물은 보시물을 받는 사람을 기준으로 도움이 되는 물건이 좋은 보시물의 조건이 된다고 하겠다.


보시 받는 사람의 자격


보시 받는 사람이 청정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복밭[福田]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좋은 땅에 종자를 뿌리면 수확이 많지만 척박한 땅에서는 좋은 종자도 조금밖에 열매를 맺지 않거나, 전혀 맺지 않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코살라국의 프라세나지뜨왕에게 “마치 농부가 땅을 잘 다루고 잡초를 없앤 뒤에 좋은 종자를 좋은 밭에 뿌리면 거기에서 얻는 수확은 한량없지만 농부가 땅을 잘 다루지 않고 잡초들도 없애지 않고 종자를 뿌리면 그 수확은 말할 것도 없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보시를 받는 사람들의 자격에 따라 그 결과인 공덕에도 차이가 있다. 부처님은 음식물 보시를 보통 사람에게 하는 것보다는 수행자에게 하는 것이 좋고, 수행자에게 하는 것보다는 도를 이룬 사람에게 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난아 축생에게 보시하면 백배의 복을 얻고, 정진치 않는 이에게 보시하면 천배의 복을 얻으며, 정진하는 이에게 보시하면 백천배의 복을 얻고 ......, 아라한에게도 한량이 없으며, 연각에게도 한량이 없거늘 여래, 무소착, 등정각에게 이겠는가”라고 하여 짐승에게 보시하여도 공덕이 있지만 수행의 등급이 높을수록 공덕이 크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성자들은 가장 좋은 복밭(福田)이고 최상의 보시 그릇이 된다.

그러나 출가자라고 모두가 다 좋은 자격을 갖춘 것은 아니다. 잡아함의 정구경(淨口經)에는 비뚤어진 법으로 살아가는 승려, 별을 우러러 관찰하는 사특한 방법으로 살아가는 승려, 남의 심부름을 하거나 갖가지 병을 다스려 살아가는 승려에게는 보시를 경계한다. 즉 승려의 본분을 지키지 않는 승려는 보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또 더 구체적으로 다음의 다섯 가지 경우의 출가자 즉 (1) 재가자에게 손해를 끼친 자 (2) 재가자를 다치게 한 자 (3) 재가자를 이간시키고 비방한 자 (4) 삼보를 비난하는 자 (5) 악행을 행하는 자 등에게는 보시를 경계케 한다. 이러한 출가자가 보시 받을 자격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출가자가 재가자를 찾아가 참회하고 용서를 받아야 하는 절차가 필요한데 이를 율장에서 하의갈마(下意즼磨)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붓다는 “마땅히 줄 사람을 가리어 주라. 남을 속이고 함부로 내닫거든, 아무리 빌어도 주지 마라”고 보시 받을 사람의 자격을 강조한다.


보시의 공덕


후기 대승불교의 보시정신은 순전히 자비심의 발로이지만 초기불교의 보시는 자비의 정신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현세와 후세의 안락을 위한 것이다. 보시는 반대급부를 염두에 둔 일종의 투자처럼 생각된다. 즉 보시에 대한 공덕은 위에서 보듯 백배, 천배, 백천배 또는 무한으로 복이 돌아와 “이 세상에서 법을 실천하고, 착한 길로 갈 수 있는 길을 닦음으로서 쾌락을 가지고 있는 신들의 세계에 태어나서 기쁨을 누리게 된다”고 보상을 약속 받는다.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첫째, 시주(施主)의 이름이 널리 퍼진다. 둘째, 시주는 크샤트리아, 바라문, 사문들 속에 가더라도 두렵거나 어려워할 것이 없다. 셋째, 남의 사랑을 받으므로 모두 와서 우러러 본다. 넷째, 보시할 때에 기뻐하는 마음을 내고 기뻐하는 마음이 있으면 곧 즐거움이 있어서 그 뜻이 견고해진다. 다섯째, 뜻이 견고해지므로 사제(四諦)에 대해 여실히 이해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 다음 사후에 받게 되는 과보 즉 천상에 태어나는 복을 강조한다.

아무리 재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어도 죽을 때는 다 버리고 떠나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재산을 보시하게 되면 살아 있을 때에도 좋은 과보를 얻지만 죽은 후에도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 경에서는 그 원리를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설명한다.


오직 그 죄와 복 있어,

만일 사람이 그것을 지으면

그것이야말로 그의 소유이거니

그는 언제나 가지고 다니면서

나도(生) 죽어도(死) 버리지 못하나니,

그 그림자 형체를 따르듯 하네.

··········

그러므로 마땅히 복을 닦아서

오랫동안 쌓고 또 모으면

그 복덕은 능히 그 사람을 위해

딴 세상의 즐거움을 마련하리라.

 

그러나 보시문제와 관련해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보시가 아무리 강조된다 해도 이것은 공덕, 윤회의 길이지 해탈 열반의 길은 아니라는 점이다. 열반은 공덕에 대한 과보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시의 공덕이 열반을 약속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삼륜청정(三輪淸淨)의 보시는 청정한 수행자를 가까이 함으로 해서 올바른 법보시를 보상받을 것이다. 이점은 보시가 불교의 궁극목표인 열반성취의 좋은 수단이 됨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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