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無心) 설법
이법산 스님 / 서울 캠퍼스 정각원장

무심(無心)의 세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참으로 무심(無心)하다’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본래의 의미는 무심(無心)은 맑고 밝고 깨끗하며, 판단을 잘하고 새롭게 만들어 가는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무심의 의미는 조금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 이맘 때 태풍 루시가 할퀴고 간 자리에 또다시 올해는 매미라는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다는 것은, 우리가 ‘무심’코 지내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해야할 일을 하지 않거나, 알고 있어야 할 것을 애써 무시하였으며, 나중에 하늘을 원망하거나, 혹은 남의 일 보듯 이렇게 지내서야 되겠습니까?

경제가 계속 침체되어 한국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또한 국민들의 마음은 위축되어 있고, 또한 불안하고 초조하여 서로간의 시비와 투쟁이 발생하여, 감당키 어려운 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만 합니다. 오늘 정신차리는 법문을 위해 오늘 이 법회의 법사로서 단상에 올라왔습니다.

고려시대 백운스님께서는 참으로 즐겁게 사신 분이셨습니다. 국사(國師)를 청하여도, 왕사(王師)를 청하여도 그러한 자리를 결코 달가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불교 지도자로서 해야할 말, 해야할 수행을 모두 잘 행하면서도 왕과 국가에 대하여 아무런 격의 없이 할말을 토로하셨던 분이십니다. 『백운화상어록』에는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습니다.


팽불팽조대로비(烹佛烹祖大爐붑) 큰 화로에 부처도 조사(祖師)도 녹이고

하범하성악겸추(?凡?聖惡鉗鎚) 범부와 성인의 사슬 또한 끊어버리고

소아억겁전도상(燒我億劫顚倒想) 억겁동안 잘못된 나의 생각마저 불태워 버리니

불력승지획법신(不歷僧祗獲法身) 아득한 세월을 다하지 않고서도 법신(法身)을 얻음이라

 

중생은 왜 중생인가. 그 분별하는 마음 때문에 내 편이니 네 편이니 하고 편가르기 하는 것입니다. 요사이 많은 싸움들, 특히 여야의 정파들이 서로 편가르기를 하여 대립하고 있습니다. 백운스님께서는 이러한 분별과 차별들을 없애기 위하여 위와 같은 게송을 설하셨습니다. 즉 부처, 조사, 범부 모두가 차별이 있다는 것은, 억겁동안 우리 마음 속에 이어져온 분별하는 마음, 즉 우리의 눈, 귀, 코, 혀, 몸이 갖가지 촉감을 느끼면서 스며드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러한 감각에 처음으로 입력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익힌 것이 곧 업(業)이 되어 길들여지며, 그것이 곧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물든 것이 본래 주인을 망각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기준이 흐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비가 일어나고 싸움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얀 백지라서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꽃이나 엄마 얼굴을 그릴 것인가, 뱀이나 지네, 도깨비 같은 것을 그리렵니까? 만일 나쁜 그림이 그려졌다면 무엇이 나쁘다는 말입니까. 물감이 나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리는 손, 종이, 붓 어느 것이 나쁘단 말입니까? 결국 기존의 감각에 입력된 것들이 좋지 않은 기준이었기 때문에 옳은지 그른지 알지 못하고 그릇된 마음에 끌려 다니게 되어 나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마음에 남아 있는 이러한 전도몽상(顚倒夢想)들을 녹이기 위해 백운스님은 위와 같이 게송을 설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운문스님께서도

“주장자가 용이 되어 하늘과 땅 끝을 삼켰고, 부채는 33천에 있는 제석천의 콧구멍을 날리도다”

라고 하셨으며, 몽산스님께서는

“작은 벌레가 동해 바다의 물을 삼켜버리니 물고기와 새우 등 바다생물들이 쉬지 못하고 우렁이가 눈 속에서 춤을 추더라”

라고 하셨으며, 인도의 시공스님은 중국 한국 모두 다녀가신 분으로써

“벙어리가 말을 하니 귀머거리가 멀리서 속삭이듯 듣고있으니, 만불이 찬탄하고 허공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더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소식들은 제대로 알고 있으면 모든 근심과 걱정을 떨쳐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백운스님께서는

“바다 밑에 먼지가 있고, 산꼭대기에서 파도가 치니, 허공 꽃이 열매를 맺고, 돌 여자가 아기를 낳으며, 진흙소가 울고, 목마가 바람을 향해 소리치고 달려 나가도다”

라고 하셨으니 바로 격외도리(格外道理)라 하는 것입니다. 격외도리는 분별하지 않으며 차별없는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의 몸 속에는 맛있는 음식이 대변으로 변해 있음에도 더럽다고 하지 않지만, 일단 그것이 밖으로 나오게 되면 더러워 피하듯, 범부의 성격도 드러내지 않는다면 좋다거나 싫어하는 분별심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동국대학교 정각원장이자, 선학과 교수 및 대학장을 겸직하고 있으며, 또한 조계종 승가고시위원장으로서 종단의 교육에 일조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리 일이 많더라도 이것저것 분별심 없이 일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선하거나 염불하거나 절을 할 때도 한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동국대학교는 일산에 건립된 불교종합병원을 개원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으며, 또한 그 개원을 위해 100만개의 연등 달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교직원이 분별심 없이 주어진 일 열심히 할 때, 병원 개원은 물론 동국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깨끗하고, 맑은 무심(無心)으로 일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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