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의 날개와 같이
류강렬 / 불교문화대 불교학과 4학년

경주 동국대학교 정각원은 동국대학교 정문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낮은 구릉을 문수 보현 보살이 협시를 이루듯 양쪽으로 두고, 부처님께 청수를 공양하듯 정각원의 아래에 해탈연이 있다. 정각원은 학생들이 자아를 찾아 더 큰 눈을 가질 수 있는 곳이며, 커다란 마음의 휴식처로써 21세기 세계문화의 하늘을 날아다닐 날개를 만드는 곳이다. 이러한 정각원과 완만하지 않으며, 가파르지도 않은 동국대학교가 있는 이곳은 신라의 도읍 아니 한반도를 철새들이 지나가기 시작한 그때부터 우리에게 커다란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오랜 세월 많은 역사와 함께 다져진 준비되어온 곳이다. 바로 이곳 경주 동국대학교에서 21세기가 시작되는 지금 그 날개의 깃털들이 하나 하나 피어나기 시작하는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예로부터 경주에는 세 가지 진기한 물건과 여덟 가지 괴상한 현상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삼기팔괴라고 한다.

삼기는 바로 금자, 옥적, 화주를 가르킨다. 금자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왕이 천신으로 부터 얻은 보물이라고 한다. 병든 사람을 이 자로 재면 병이 낫고 죽은 사람을 재면 살아난다고 한다. 옥적은 죽어서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에게 보낸 것으로, 장마 때는 비를 그치게 하고 가뭄 때는 비를 내리게 하는 신비스러운 힘이 나타났다. 그래서 세상의 파란을 없애고 평안을 가져다 준다는 뜻에서 만파식적이라 불렀다. 그리고 화주는 분황사 탑에서 나온 것인데 그 빛깔이 마치 수정처럼 맑고 고운 구슬로써, 선덕 여왕이 지니고 있었던 수정 돋보기인데 태양광선을 통과시켜 불씨를 얻었다고 한다.

팔괴라 함은 먼저 남산 부석을 들 수가 있다. 국사골에 있으며 큰 바위 위에 또 한 개의 둥근 바위가 얹혀 있어 사람의 얼굴이나 버선을 거꾸로 세워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도 하며, 바위가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부석이라고 부른다. 두번 째는 문천도사인데 문천은 지금의 남천의 옛 이름이다. 이곳의 모래는 얼마나 부드러운지 모래가 물의 흐름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세 번 째는 계림황엽으로 계림에는 가을이 아닌 여름에도 잎사귀가 누래 진다는 것이다. 신라 말의 학자 최치원은 신라의 국운이 이미 끝났음을 알고 고려의 왕건에게 상서하였다. 그 글 중에 「곡령청송(鵠嶺靑松) 계림황엽(鷄林黃葉)」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것은 곡령 즉 송악의 고려는 청송과 같이 성하고, 계림 즉 신라는 이미 황엽으로 시들었다는 뜻이다. 네번 째는 백률송순으로 백률사는 경주 북쪽 소금강산에 있으며, 이차돈의 목이 베어졌을 때 그의 머리가 떨어진 곳에 세운 것이다. 재래종 소나무는 순이 생기지 않지만, 백률사의 소나무는 가지를 친 뒤에 솔순이 생긴다고 한다. 솔순이 생기는 것은 불교 윤회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명해 진 것이다. 또한 백률사에는 넓은 대숲이 있는데 다른 대나무와는 다르게 봄이 되어 대밭에 죽순이 돋아날 때에는 송순과 같이 굵은 것들이 한꺼번에 힘차게 돋아나서 그 정경을 찬미하여 '백률 송순'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다섯 번째로는 압지부평이 있다. 연못, 논 등에 자라는 마름은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는 다년생 풀이다. 이 안압지에 있는 마름만은 뿌리를 땅에 내리지 않고 물 속에 떠있다. 안압지는 대궐에서 잔치하던 전당인 임해전의 정원에 파놓은 못이다. 이 못 위에는 언제나 부평초가 떠 있어 바람이 불면 풀무더기들이 구름처럼 떠다니기에 그 정경을 가리켜 '압지 부평'이라 한 것이다. 여섯번 째로 우리학교가 있는 금장 낙안이 있다. 서천과 북천이 합치는 곳으로 맑은 강물이 흘러 깊은 애기청소를 이루고 높고 낮은 바위들이 솟아 있어 산수화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바위 정상에는 금장대가 있었는데, 신라의 임금들은 때때로 이곳에서 즐겼다 한다. 이곳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날아가던 기러기들도 내려와서 쉬었다 가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라 하여 '금장낙안'이라 부른 것이다. 일곱번 째로 불국 영지를 들 수가 있다. 영지에는 불국사의 전경이 다 비쳐 있었는데 오직 석가탑만 비쳐 지지 않았으므로 석가탑을 무영탑으로 불렀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여덟 번째 이야기는 나원백탑이 있다. 현곡면 나원리에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5층탑으로 통일 신라 초기의 탑인데 지금까지도 순백의 빛깔에 변함이 없다. 이외에는 나원백탑이 아닌 서산연모가 있다. 경주의 서쪽에 솟은 선도산에는 언제나 아지랑이가 끼어 있는데, 해질 무렵 저녁놀에 반사되어 연분홍빛으로 물든 이 산의 아지랑이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한 정경이라 한다.

지금의 한국불교는 긴 세월을 지나오며, 정치에 의한 흥망성쇠를 겪었다. 하지만 그 꾸준한 전통과 맥락을 지켜 변하지 않으며 이어져왔다. 하지만 고여있는 물은 섞는 법.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해 나가는 21세기에 불교는 그 근본을 잃지 않으며, 변해야 할 것이다. 우리민족의 정신 속에 유교가 큰 틀을 잡고 있다고 하나, 그 유교 정신의 내면에는 불교가 있는 것이다. 유교뿐만 아닌 기독교문화 속에서도 장로, 선교, 등의 많은 단어가 그 어원이 불교 인 것이며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많은 어휘 속에도 불교에서 유래 된 말이 많을 것이다. 우리말속에 녹아 있는 불교의 어휘는 기독교 이전에 이미 불교에 있었지만, 기독교에 양보한 것들 일 것이다. 21세기 우리가 가장쉽게 많이 접촉하는 매체인 인터넷 속에도 불교적 단어가 많이 존재한다. 아바타, 로터스, 카르마, 다르마... 이러한 어휘들은 그 뜻과는 다르게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미 그 어원이 불교이며 그 사용의 의미 또한 불교의 가르침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 속에는 사물놀이와 같이 더 많은 것이 불교일 것이다.

불교는 세상 그 어떠한 곳에서도 없는 곳 없으며, 세상의 그 어떠한 것과 연결되지 않는 것 없다. 분별과 획일적 사고에 의해 황폐화되어지는 세상에 만법의 이치를 일깨워 더욱 다른 서양적 종교라는 것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공부하는 우리 경주 동국대학교 학생들의 몫인 것이다. 금장낙안에 쉬었다가 저 멀리 대륙으로 날아가는 혹은 겨울 바람을 피해 대양으로 날아가는 날개에 우리의 꿈과 희망을 실어 날아야 할 것이다. 20세기의 마지막 세대가 21세기의 시작을 불교와 함께 나누어짐 없이 다 같이 연결되어지는 세상을 만들어야할 것이다. 움직임이 있는 곳에 가는 것이 있다. 이미 가버린 것과 아직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지금 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가고 있는 중이다. 정각원의 부처님께 삼배 올리며, 자신이 벗은 신발을 정리 할 수 있는 우리는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으며, 미래를 준비 할 수 있는 주인공의 본 모습일 것이다. 경주 동국인이여 우리의 날개를 더욱 크게 펼쳐라.

준비되어진 주인공, 우리의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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