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명과 불교생태학
신성현 / 불교학과 교수

흔히들 현대 문명의 특징을 맥월드(Mc World)화라고 말하고 있다. 맥월드는 세계최대의 체인망을 가진 패스트푸드 식당인 맥도날드(Mc Donald)에서 유래한 말이다. 우리는 이제 세계 어느 곳을 가든 값싸고 간편하게 그리고 동일한 맛의 햄버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현대문명이 상업주의에 의하여 전 세계가 동질화 간편화 저질화되어 간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이는 동시에 그만큼 세계문화 자체가 패스트푸드 화하는 무자비한 동향화로 저질, 저속화되어 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류는 지난 20세기에 많은 사건과 변화를 경험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부터 1989년 공산주의가 몰락하기까지 75년간에 걸친 대량 살육, 파괴를 경험하였고 이 기간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결한 시기였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후, 유일한 체제로 남은 자본주의는 극심한 상업주의 만능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맥월드라는 단어는 상업주의를 대변하는 말이다.

한편으로 이 말은 세계 다양한 문화의 실종을 의미한다. 우리의 미각을 패스트푸드에 고정시키며 더나가 폭넓은 사고를 하나로 획일화시키고 있음을 뜻한다. 문화의 상실, 이는 현대문명이 가지는 비극이며 숙업이다. 그러나 맥월드로 상징되는 현대문명이 만들어 내는 공업(共業)은 단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차별과 갈등의 문제를 빚어내고 있으며 그 중 하나가 인간과 생태계의 갈등이다.

우리는 햄버거에 들어가는 쇠고기를 값싸게 생산하기 위하여 많은 수의 소를 필요로 한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소 12억 8천 마리의 무게는 인류 전체의 체중을 합친 것보다도 무겁다. 지난 30여 년 간 중앙아메리카의 산림 25%가 목장을 만들 목적으로 사라졌다. 브라질에서는 지금도 단지 몇 년간의 목축을 위해서 불도저가 아마존 밀림을 밀어내고 있다. 이처럼 수풀이 제거되면서 수십 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방출하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온실효과를 촉진시키고 있다. 또한 소들이 음식물을 소화시키면서 엄청난 양의 메탄가스를 방출하는데 이 메탄가스는 온실효과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햄버거를 포장한 플라스틱 용기는 썩지 않고 온 지구를 쓰레기 더미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원인들로 지구 전체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인간과 생태계의 갈등을 야기시키고 인간의 생존자체마저도 위태롭게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햄버거의 쇠고기를 값싸게 생산하기 위하여 소의 최소한 권리마저도 빼앗고 있다. 쇠고기가 보다 싼 가격으로 식용으로서 사용되기 위해서는 소의 삶은 그만큼 비참해져야 했다. 소는 더 이상 동물이 아니다. 소는 공장식 농장(factory farm)에서 사료를 고기로 전환시키는 기계와 같다. 한번 제대로 초지를 밟아 볼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삶을 마친다. 거세, 어미와 새끼간의 분리, 무리로부터의 분리, 낙인, 수송, 그리고 마지막의 도살 그 어디에도 동물의 배려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는 일방적으로 인간에 의해 자행된 동물과의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이상 맥월드라는 단어 속에 함축되어 있는 현대문명의 한 단면을 예로 들었지만, 현대문명은 이외에도 수많은 갈등과 차별을 낳고 있다. 현대사회가 이러한 문제를 안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독일의 철학자 셸러(Max Scheler)는 일찍이 현대인의 타락이 근대의 자본주의와 그 경제체제에서 비롯한 우리들의 체험구조 그 자체에서 연유한다고 지적하였지만 대체적으로 근대 휴머니즘의 인간중심주의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오늘날 상업주의의 비인간화 현상도 실은 인간중심적 사고가 낳은 업보이다. 인간의 지적 산물인 과학이 그리고 과학이 낳은 여러 가지 사회제도와 기계기술이 인간 위에 군림하게 됨으로써 빚어진 현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연 정복이라는 목적을 놓고 볼 때 과학은 가장 효율적인 도구였다. 과학이 인간에게 가져다 준 혜택은 실로 헤아릴 수 없이 크다. 우리는 더 이상 과학이 없는 일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의 욕망은 이를 더욱 부채질하여 다시 환원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인간중심주의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중심주의는 우주 안에서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절대적 고귀성 즉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인간 이외의 다른 모든 존재들의 가치는 인간의 가치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즉 인간만이 절대적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신념이다. 인간중심적 신념은 인간의 복지와 번영을 위해서는 자연의 도구적 개발과 인간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한 착취, 파괴를 전적으로 정당화한다.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은 근대에 들어오면서 과학적 자연관의 정립과 과학적 기술의 개발에 의하여 한결 더 강화, 정당화되어 왔다. 날로 발전하면서 과학기술은 인간에게 그만큼 더 힘을 부여했고, 그러한 과학기술로서 오늘날 인간은 흔히 위협과 공포의 대상으로 보였던 자연을 완전히 제압, 개발, 착취함으로서 자신의 목적에 따라 도구로서 이용함으로서 물질적 생활을 날로 더 윤택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과학적 지식과 기술이 기하급수적 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오늘날 20세기를 막 넘어 온 시점에서 인간은 마침내 동물, 지구는 물론 우주를 정복함으로서 자연의, 아니 우주의 절대적인 군주로서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21세기 현대문명 속에서 제기되는 여러 갈등과 차별의 문제는 이처럼 인간중심주의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중심주의에 근거한 현대문명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에 중점이 모아져야 한다.

그 답변의 하나로 우리는 불교생태학(Buddhist Ecology)을 모색해보지 않을 수 없다. 불교와 생태학은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는데 있어 정확히 획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생태학(ecology)은 본래 19세기 후반 헥켈(Haeckel)이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주변 환경과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학문' 또는 '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학문'이다. 불교는 나를 비롯한 온 생명(有情)의 상호의존(緣起)과 상호존중(慈悲)을 통한 행복(涅槃)를 지향한다. 불교와 생태학은 상호의존성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합일점을 갖는다.

불교는 이미 종교로서 국한되지 않는 총체적 문화이다. 불교에서는 성립이후 지금까지 이천 오백년에 걸쳐오면서 종교 철학 문학 역사 사회 정치 예술 등 그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우리는 불상을 통하여 인도문화뿐만 아니라 그리스 문화, 중국문화 등 다양한 문화와 총체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는 이미 불교가 복합적 문화와 연계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생태학을 주목하는 이유 또한 인문학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으로 이루어진 학문적 통합의 총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상호복합적인 성격의 불교와 생태학이 만남으로서 우리는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그러한 학문 영역이 불교생태학이다. 불교생태학은 불교교리를 바탕으로 하여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제반학문과 만나 상호의존(緣起), 상호존중(慈悲)을 통한 행복(涅槃)을 발견하는 학문이다.

우리는 불교생태학의 연구를 통해 현대문명이 앓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새로운 중도주의의 비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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