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잘 먹이는 이유
안양규 / 불교문화대 불교학과 교수

이 이야기는 붓다가 제타바나에 머물고 있을 때 들려준 것이다. 살찐 여자에게 이끌린 비구에 관한 이야기이다. 16세의 아리따운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청혼하는 청년이 없었다. 걱정하던 처녀의 어머니는 묘책을 내었다. 출가한 승려 중 한 사람을 환속시켜 딸과 결혼시키고자 하였다. 처녀의 어머니는 맛있는 음식을 승려들에게 공양하였는데 맛에 탐착하는 비구를 발견하고 딸과 결혼시키고자 하였다. 처녀의 자태에 유혹 받은 비구는 사원으로 돌아와 환속하고자 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동료 승려들이 그 비구를 붓다에게 데리고 갔다.

붓다는 뚱뚱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 비구에게 물었다. "그대는 상사병에 걸렸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인가?" 비구가 사실이라고 대답하자 붓다는 말했다. "비구여! 그 여자는 그대에게 고통을 불러올 것이다. 전생에도 그대는 그녀가 결혼하던 날 그대의 목숨을 잃었다. 그대는 죽임을 당하여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음식으로 요리되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붓다는 그의 전생을 이야기 해 주었다.

 

아주 먼 옛날 브라흐마닷타왕이 베나레스를 다스리고 있을 때, 보살은 어떤 마을 대지주의 황소로 태어나게 되었다. 이 황소에게는 동생 황소가 하나 있었다. 형 황소와 동생 황소는 집안의 모든 짐들을 운반하였다. 대지주에겐 오직 한 명의 딸만이 있었다. 딸이 근처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상류계급의 아들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녀의 부모는 생각했다. "딸의 결혼식에 참여하는 하객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성대하게 준비해야겠다." 그래서 그들은 집에서 기르고 있던 돼지에게 쌀밥 등 많은 음식을 주어 살찌게 만들었다. 동생 황소는 돼지가 맛있는 쌀밥을 먹는 것을 보고 형 황소에게 불평하며 하소연했다.

"집안의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몫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우리에게 단지 풀과 짚만 먹이로 줄뿐이다. 반면에 돼지에겐 쌀밥을 잔뜩 가져다 주고 있다. 어떻게 저 돼지 녀석이 저런 귀한 쌀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가?"

형 황소는 대답했다.

"아우여! 돼지가 쌀밥을 먹는 것을 부러워하지 마라. 저 불쌍한 돼지는 지금 죽음의 음식을 먹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돼지를 살찌워서 결혼식의 하객을 위한 음식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을 뿐이다. 며칠이 지나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돼지의 다리를 붙잡고 돼지우리에서 끌어내어 죽이고 하객을 위한 음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형 황소는 게송을 읊었다.

돼지를 부러워 말라
그는 죽음의 음식을 먹고 있을 뿐이다.
여물을 먹고 만족하여라
이것은 장수로 이끈다

과연 오래지 않아 사람들은 돼지를 죽여 여러 가지 음식으로 요리하였다. 동생 황소는 이 광경을 보고 말했다. "쌀밥을 먹던 저 불쌍한 돼지에게 어떤 불행이 닥치었는지 보았다. 돼지가 먹던 쌀밥보다 풀, 짚, 여물이 백 배 천 배 낫다. 나의 음식은 어떤 재앙도 가져오지 않았다. 우리의 수명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이상의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붓다는 상사병에 걸린 비구에게 말했다.

"비구여! 그대는 전생에 돼지였고 지금 비구가 사랑에 빠진 저 살찐 여자는 전생에 대지주의 딸이었다. 그대는 전생에 그 여자 때문에 그대의 목숨을 잃고, 사람들의 음식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그대는 저 여자에게 이끌려 가고 있는가?"

돼지를 맛있는 음식으로 배불리 먹이는 것은 돼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돼지를 요리 재료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일시적인 융성한 대접보다 거친 음식일지라도 해를 주지 아니하고 오래 사는 것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돼지는 거친 음식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칭찬하고 부러워할 때, 권력과 재물이 모여들 때 진정으로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인지 아니면 유혹의 미끼인지 조심스럽게 분간할 수 있어야 하겠다. 유혹의 미끼인 줄도 모르고 덥석 물면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젊었을 땐 특히 화려한 겉모양에 미혹되는 바가 많으니 조심하고 경계할 일이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며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낀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 대해선 질투나 시기의 마음을 일으키고 고통스러워한다. 특히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료나 이웃이 자기보다 훨씬 나은 대접을 받는 것을 목격하면 배가 아프고 불평하게 된다. 더군다나 자신은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푸대접을 받고 동료나 이웃은 성실하게 생활하지 않는데도 성대한 대접을 받는 것을 보면 고통의 불만은 배가된다. 동생 황소가 가졌던 마음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인과응보의 법칙은 작용하고 있다. 지금 당장 선인이 고통받고 악인이 부귀를 누리고 있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붓다는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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