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포탈라 궁전 김미숙
/ 불교대학 강사
포탈라,
그 이름만 들어도 목이 메이는 사람들은
그 곳에서 쫓겨난 티베트 승려뿐만이 아니다.
달라이
라마, 티베트 유민(流民)들에게 그 이름은
희망이자 관세음 보살이며, 구세주와 다름없다.
티베트는
이미 한 나라의 이름이 아니다. 흔히 '티베트의
포탈라궁(布達拉宮)'이라 말한다. 그렇지만
1994년 유네스코에 의해서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그 곳은 현재 중국 땅에 속해 있다.
1950년 중국의 무력 침략으로 인해 티베트는
독립 국가로서의 지위를 잃은 뒤, 현재
시짱(西藏) 자치구로 불린다. 그 동안
나라의 독립을 위해 세계를 순방했던 달라이
라마의 피 어린 호소도 허사였다. 이제는
달라이 라마 자신의 현생 동안에는 독립의
날이 오지 않을 듯하다는 비감 어린 토로만
전하고 있다.
티베트의
수도였던 라싸의 상징, 포탈라 궁전은
본래 달라이 라마의 겨울 궁전이었다.
달라이 라마 14세(1935년생)도 인도로
망명하기 직전까지 그 곳에서 살았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고, 관광객과 티베트
사람들의 순례 대상이 되고 말았지만,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기 전까지 티베트의
정치 사회 문화의 핵심이자 정수였던 곳이다.
라싸
시내 어디에서나 눈만 들면 보일 정도로
포탈라 궁전은 홍산(紅山) 언덕 위에 높이
솟아 있다. 그 거대한 위용만큼이나 궁전
자체로서의 명성도 높아서 세계 10대 불가사의
건축물로 꼽힌다.
해발
3,600미터에 달하는 홍산에 토번(吐蕃)
왕 송첸 감포(581 649년)가 631년에 궁전을
짓고 '홍산 궁전'이라 하였는데, 17세기에
이르러 달라이 라마 5세(1617 1682년)가
같은 자리에 새로 건축한 궁전이 '포탈라'이다.
관세음 보살의 거처인 포탈라카에서 따온
이름이다.
전체
높이 117미터, 동서 길이 360미터, 총
면적 10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궁전은 마치
거대한 요새와도 같고, 보는 순간 누구나
압도당하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13층이지만 실제로는 9층 건물인데,
천 칸에 이르는 방들은 미로처럼 계단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건물 벽은 2 5미터
두께의 화강암과 나무를 섞어서 만들었는데,
못을 전혀 쓰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궁전의 중앙 부분에는 황금빛 궁전 세
채가 있는데, 그 아래쪽에 다섯 기의 황금
탑이 세워져 있다.
전체
구조는 크게 홍궁(紅宮)과 백궁(白宮)으로
나뉘는데, 어딜 가든 갖가지 불상 조각과
화려한 단청으로 치장된 기둥들이 사열하듯
맞이한다.
홍궁
동쪽에 자리한 백궁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달라이 라마가 정사를 돌보고 일상
생활을 하던 곳이다. 홍궁에 앞서 축조되었고
1649년에 완성되었다. 궁전의 중심 건물인
동대전(東大殿)은 중요한 정치 종교 의식을
거행했던 장소로서, 상층부에는 달라이
라마의 사적인 공간인 일광전(日光殿)이
있다. 그런데 궁전의 완성을 지휘하던
달라이 라마 5세는 끝을 보지 못하고,
1682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어서
1690년에 건설된 홍궁은 주요 종교 의식들을
거행하는 곳으로 티베트의 전통 건축 양식을
따른 13층 누각이다. 벽 전체가 진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홍궁으로 불리는데,
중심 건물인 영탑전에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영탑 여덟 기가 있다. 그 중 가장 화려한
달라이 라마 5세의 성묘(聖廟)는 그 중심에
봉안되어 있다. 온갖 보석들로 치장한
영탑은 탑신만 해도 14.85미터에 달한다.
달라이
라마는 살아서는 백궁에, 죽어서는 홍궁에
묻혀서 결국 포탈라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 죽어서도 다시 살아나는 활불이기에
영원한 부처 그대로 영생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포탈라에는 불당 독경실 승가 대학
요사채 등이 곳곳에 자리해 있는데, 이
궁전을 완성하는 데 동원된 연인원수가
백만 명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정교의
일치를 이룬 달라이 라마 5세의 위세을
한눈에 증명시키는 포탈라 궁전은 세계
만방에 티베트의 국력을 알리기 충분했다.
청 나라 때 고종(高宗)은 1767년부터 1771년에
걸쳐서 달라이 라마의 주거용으로 허베이성(河北省)
청더(承德)에 보타종승지묘(普陀宗乘之廟)를
세웠는데, 포탈라 궁전을 그대로 본떠서
짓기도 하였다.
현재
포탈라 궁전에는 전생(轉生) 활불(活佛)로
숭배되는 달라이 라마는 없지만, 티베트
민족의 라마 신앙의 산실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크고
작은 수많은 존상(尊像)들이 방마다 가득한데,
대불(大佛)은 1천 위(位), 소불(小佛)들을
모두 합치면 수만 위가 봉안되어 있는데,
방마다 돌고 도는 이들이 절 올리며 기도하고
보시하느라 염불 소리 끊이지 않는다.
"옴
마니 파드메 훔, 옴 마니 파드메 훔……"
웅웅거리는
진언 소리가 부딪쳐 되돌아오는 벽에는
걸개그림들이 가득하다.
티베트
불교 미술을 화려하게 만든 첫째 요소는
탕카일 것이다. 면 바탕에 각종 채색과
금니(金泥)로 그려서 벽을 장식하는 탕카는
티베트 사원을 불교 미술의 보고(寶庫)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중국의 탄압은
독립 운동을 주도하던 승려와 사원에 집중되었고,
그 많던 사원들은 죄다 파괴되다시피 하였다.
현재,
포탈라 궁전 외에도 티베트의 각종 문화
유산들은 훼손과 방치로 인해서 쇠퇴와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더구나 2000년
8월, 중국 당국은 라싸에서 유적 복원
사업을 하던, 독일의 티베트 유산 기금(THF)을
폐쇄시키고 관련자들도 모두 추방했다.
곳곳에서 허물어지고 있는 티베트 문화의
혼들은 어디를 떠돌고 있는 것인가?
포탈라
궁전에 걸린 중국 국기를 걷어 내리려
했던 티베트 독립 지지자가 체포되었다는
등의 소식을 전하는 외신(外信)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
광속(光速)의
빠르기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쉼 없이
윤회 바퀴를 손으로 돌리며 독립의 미래를
꿈꾸는 티베트 유민들. 이미 도그마가
되어 버린 속도의 경쟁에서 지지 않을
만큼 휙휙 돌릴 재간은 없는 것인가? 그들의
유랑은 언제 끝이 날 것인가?
미래의
어느 날, 티베트의 독립이 예정되어 있다면
우리 모두 힘 모아 기도해야 하리라. 인도의
기차간에서 마주치게 되는 티베트 스님들의
공허한 눈길이 하루 빨리 고향의 설산에
정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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