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의 불교
불교학생회 / 경주 캠퍼스

오늘처럼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높고 파란 가을 하늘을 보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떠날 준비를 한다. 내 삶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수업이 없던 날이라서 나는 모처럼 마음 편히 버스에 올랐다. 낯선 길을 따라 암자 하나를 찾아 나섰다. 그곳은 버스를 타고 불과 한시간도 안 걸리는 시내 아파트가 보이는 곳이었지만, 가을냄새를 물씬 풍기니 참으로 자연이 경외스럽기까지 했다. 잡초 하나 없이 곱게 길러진 고개 숙인 누런 벼를 보니 농부 아저씨가 생각이 났고, 밭에 심겨진 콩이며 참깨, 고구마 등도 애써 기른 아주머니의 손길이 생각났다. 초행이라 그 동네 입구에서 고추를 널고 계신 아저씨께 여쭈어 겨우 암자 입구로 향하는 길을 찾았다.

조금은 가파른 길. 일찍이 고목이 되어버린 감나무엔 이른 홍시가 달려있고, 그 홍시들이 길이며 개울에 떨어져 시큼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밤나무는 어느새 송이가 벌어져 하늘을 향했다. 덕분에 한 톨 짜리 밤알 하나를 줍고, 도토리 몇 알도 따서 주머니에 넣었다. 다리도 아프고 햇볕도 따갑지만, 이렇게 여유 있게 어슬렁 어슬렁 산길을 올랐다.

한참을 오르니 목이 마르던 차에 마침 약수터가 있었다. 목을 축이고 약간은 차가운 벤치에 앉았다. 하늘은 끝이 어딘지 모르게 높고 파랗고 보이진 않지만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 운동회 하는 아이들 소리와 새소리, 가을녁 내 코를 자극하는 숲 속의 풀냄새, 이제 막 먹은 물로 달콤해진 입안, 그리고 차가운 벤치, 단 하나 내 마음은 어느새 암자를 향해있고, 이 모든 것들이 내 육근을 자극했다. 가만히 여기 벤치에서 저 깊은 기억 속 어디쯤엔가 자리잡고 있을 부처님에 관한 내 추억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내 기억 속에 절이 처음 생각나는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족 친지들과 함께 강화도 여행을 갔을 때이다. 그곳에 '전등사'란 절이 있었고 아빠는 혼자서 법당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불전을 놓으시고 삼배를 하셨다. 당시 우리 집은 종교가 없었는데,  아빠는 늘 절에 가시면 법당에 들러 절을 하고 나오셨다. 그게 내 첫 번째 절에 간 경험이고 그 후 교과서에서 그 절이 사진으로 나왔던 기억이 난다.

어느새 중학교 1학년이 되었고 동네 친구들 따라 처음으로 법회란 걸 참석하게 되었다. 무슨 행사가 있다고 구경가자고 해서 갔는데 그게 법회였던 것이다. 지금도 불교와 끈을 맺어 준 그 친구들에게 참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때 토요일 오후 학교를 마치면 절에 가서 점심도 먹고 경내도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나른한 이른 봄날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피어오르고 나비 한 쌍이 경내를 날아다니고, 풍경소리 하며 사르르 잠들게 하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편안해 잠들어버릴 것 같은 그런 기억이 든다. 또, 그 때 나는 절에서의 공양 덕분에 편식의 습관이 고쳐졌다. 부모님께서도 기뻐하셨다.

그 후 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열심히 불교학생회 활동을 했다. 그때 나의 절친한 친구가 생겼고 나의 성격과 대인관계도 절에서 많이 성숙되어졌다. 그 후 난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해야만 했고, 내가 암자를 찾아 1시간을 넘도록 헤메다가 아저씨에게 입구를 물었던 것처럼, 학생회 활동 때 만났던 친구들이 나의 재수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때 그 친구들은 일요일마다 절에 가서 어린이법회를 보고 있었는데, 나중에 시험이 끝난 나도 그들을 따라 다녔고, 그곳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얼마 안되어 친구와 함께 나도 법회를 맡게 되었다. 그렇게 내 삶 속의 불교가 또다시 싹트기 시작했다.

처음 가끔은 조그만 아이들이 밖에서 떨고 있던 생각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몹시 속이 상하다. 차량 운행도 수시로 빠지고 간식도 없고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가끔 아이들이 떠들려고 하면 시끄러우니까 뒷밭에서 놀라고 하시던, 그 땐 왜 그리 스님들이 밉고 보살님들이 야속하던지.

그 일을 시작하고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오기가 생겨서 보란듯이 잘해보고 싶었다. 사실 그때 어린이 법회가 다시 새로 만들어졌고 스님도 몇 분 안계시고 해서 다들 관심 밖이었던 것으로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럭저럭 시간이 1년이 흘렀다. 서넛 되던 아이들도 이젠 20여명이 넘고 지도법사 스님도 계시고 봉고도 운행이 되고, 조립식이라도 우리 방이 생겼고, 선생님도 고정적으로 3명이 되어서 진행한다. 아직은 미숙하고 약하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에게 관심어린 스님들 보살님 처사님들 그리고 도와주는 후배들에게 고맙다. 그때 처음 나랑 만난 아이가 이젠 중학교 1학년이 되었고 변성기가 되어 목소리도 변했다. 아. 항상 밝고 맑은 우리 아이들을 보면 나까지 기쁘고 맑아진다.

이번 주 일요일 절에서 한 아이가 아픈 날 위해 내 손에 꼭 쥐어주던 사탕 한 개가 생각난다. 그 달콤함과 내 삶 속의 불교와의 삶을 아이들에게 그리고 내 가족과 이웃에게 다시 나눠주고 싶다.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린다. 나 말고도 이 암자를 찾는 사람이 있나보다. 이제 곧 나는 암자를 향해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온 염주알을 세면서 부처님께 절을 하며 내 삶과 불교는 둘이 아니라는 것을 부처님께 말씀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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