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풀 한포기 법념(法念) 스님
/ 불교문화대학 강사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들'이라는 안톤슈낙의 수필이
있다. 생활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고,
또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작은 것들이
주는 기쁨을 가슴에 와 닿게 적고 있는
글이다. 정말이지 우리주변에는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우리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고 있다. 들에 핀 이름도 모르는 들꽃이라든가
길가에 아무렇게나 자란 작은 풀 한 포기라든가
냇가에 굴러다니는 모나고 못생긴 돌멩이까지도
때로는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정각원
올라가는 길에 나의 눈길을 끄는 풀이
하나 있었다. 쇠뜨기라는 풀이 나오기
전에 올라오는 담갈색을 띤 포자(胞子)의
줄기이다. 특징으로는 약간 뭉뚝한 붓끝같이
생긴 곳에 하얀 가루 같은 포자가 잔뜩
붙어 있고 바람이 불면 날아가서 종자를
퍼뜨리는 식물로 중간 중간에 쇠뜨기처럼
마디가 있다. 우리말로는 뱀 밥이라고
부르고, 한문으로는 붓같이 생겼다해서
토필(土筆) 혹은 필두채(筆頭菜)라고도
부른다.
일본에서는
차를 마실 때 이 뱀 밥을 설탕에 졸인
다과(茶菓)가 나오면 '아! 봄이 왔구나!'하고
봄을 느낄 정도로 봄과 가장 깊은 연관이
있기에 '봄의 전령(傳令)'이라고 불리는
풀이다. 길가에서, 들에서, 논둑이나 밭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담갈색의 작은 뱀 밥
한 포기가 우리에게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왔다고 알리는 것이다. 자연은
이렇게 우리 곁에서 봄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건만 우리는 무심코 지나쳐버리고
계절이 오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수가 많다.
'자아와
명상'이라는 수업시간에 뱀 밥을 칠판에
그려놓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정각원에
올라오면서 이런 풀을 본 사람이나 풀이름을
아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여섯 시간
강의 때마다 물어 봤으니 사백여 명이
넘는 학생들인데 풀이름은 아예 모르고
본 사람도 몇 안 되었다. 학생들이 자연의
소리에 자연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고
눈길을 주는 여유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정각원
옆의 솔밭에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는데
그것은 백로(白鷺)이다. 수년 전부터 정각원
올라가는 솔밭에 깃들어 산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파란 소나무에 흰 백로가
앉아 있거나 나르고 있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우는 소리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지만, 유난히 긴 목을 하고
있는 백로는 울 때 목 윗 부분이 꽈리처럼
부풀어오르면서 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신비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동대교
다리 밑에 흐르는 서천을 비롯해서 경주
일원의 강물이 오염되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가끔 괴로워하고 있는 백로가 눈에
띄기도 하고 시체가 된 백로를 만나기도
한다. 인간들이 아무렇게나 버리는 하수구
물이나 쓰레기로 인해 해마다 산이나 강이
오염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강에 사는
물고기나 벌레, 개구리나 뱀 등을 잡아먹고
사는 백로가 공해병에 걸려서 신음하다가
인간들에게 말도 못하고 괴로워 하다가
죽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정각원 가는 길옆의 소나무 숲 기슭이
다른 곳보다 살기 좋은 환경이라 찾아온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까지도
했다. 같은 캠퍼스 안에서 더불어 살고
있는 백로에게 우리는 좀 더 따뜻한 배려와
관심을 기울여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학생들에게 또 질문을 던졌는데 별다른
관심이 없기는 뱀 밥의 경우와 마찬가지였다.
백로가 정각원 올라오는 기슭에 깃들어
사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백로가 울 때 목이 어떤 모양이 되는지
물었더니 백로가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학생이 과반수라서 내심 속으로 놀랐다.
학생들의 반응은 "야, 백로 본 적
있나?", "우리학교에 백로가
있다고?", "백로! 캠퍼스 안에서
보긴 본 것 같은데 정각원 올라가는데
있는 줄은 몰랐다" 등등 갖가지였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젊은이들의 마음가짐이 자못 염려스러웠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그 자리에 있건만
우리 인간들은 못 본 척 지나치거나 관심
없이 그냥 스쳐가거나 지나가 버린다.
뱀 밥을 보고 봄이 온 것을 즐거워 할
줄 알고 백로가 우는 것을 보고 자연의
신비함을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남을
이해할 줄 아는 마음, 주위사람을, 주변의
환경을 살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무언(無言)의
가르침을 항상 주고 있는데 알아듣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가르침을 받으려고 안간힘만
쓰는 것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풀
한 포기, 새의 울음과 같은 정말로 자그마한
데서부터 우리는 남을 배려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싹이 트는 것이다. 나
이외의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우려 보자.
그리고 사랑하자. 그러다 보면 지금 당면문제가
되고 있는 환경문제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과 분쟁들도
서서히 사라지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 하셨다. "이 세상만물은 유정(有情)이나
무정(無情)이나 다 불성이 있다"고.
그러니까 어느 것 하나 부처님 아닌 것이
없으니 이 세상에 있는 모두를 어찌 다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