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독송 기도 이법산 스님 / 서울
캠퍼스 정각원장
금강경(金剛經)은
반야심경(般若心經)이나 천수경(千手經)
다음으로 가장 많이 독송되는 경전이다.
반야심경이나 천수경은 한국불교 의례에서
반드시 독송되고 있지만, 신행(信行)이나
사상적인 면에서는 금강경만큼 위력을
가지고 유통되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금강경은 대한불교 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불교 선수행의 지침서로서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강경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대장경 가운데서 가장 많은
주석서(注釋書)나 번역서가 나왔다는 것은
깨달음으로 가는 오묘한 반야의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금강경
번역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많이
독송되고 연구되는 것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이다.
이 금강경은 이름이 말해주듯 금강(金剛)이란
보석 중에 가장 강하고 투명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라는 뜻이며, 반야는 밝고 맑은
근본 지혜를 뜻하며, 바라밀이란 언덕의
뜻이며, 경이란 진리의 말씀이란 뜻이므로
'가장 강하고 밝은 지혜의 언덕에 이르는
진리의 말씀'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금강경을
독송하면 신심이 다이아몬드처럼 돈독해지고
마음에 맑고 밝은 지혜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에
있는 모든 집착의 상(相)이 망상을 일으켜
업(業)을 짖고, 그 업으로 인해서 과보를
받아 괴로움을 받기 때문에 모든 상(相)을
놓아버리면 곧 괴로움에서 해탈하여 열반의
언덕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경전(經典)은 부처님께서
중생들에게 당부하신 교훈이다. 금강경은
중생이 망상을 일으킬 수 있는 어떤 상(相)이든
모양을 지어 집착하면 본심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수행을 통해서 모든 상을 버리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말씀하신 것이다.
금강경에서
목적하는 것은 보살(菩薩), 즉 중생으로써
깨달음을 구하는 구도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위없고
비유할 수 없는 바른 깨달음)를 성취하겠다는
서원을 한 사람이 어떻게 그 서원의 자리를
깨달음을 성취할 때까지 지키며, 수행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경계가 나타나
그 유혹에 끌려가려는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아
순조로운 수행으로 성불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상(相)이
끊어지면 마음의 본래 자성인 맑고 밝고
깨끗한 반야의 지혜가 드러나게 되므로
"응당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키다(應無所住而生其心)"는 경계를
성취할 수 있다.
마음이
어떤 상(相)에 의해서 머무르는 바가 없는
이 자리는 차별이 없는 평등의 자리이며,
막힘이 없는 자유의 자리이며, 구속이
없는 해탈의 자리이며, 번뇌망상이 없는
열반의 경계이다. 이것이 곧 수행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첫 마음이다.
종자와
열매는 그 모양이 같은 것처럼 시작과
결과는 동일한 것이다. 이와 같이 초심(初心)을
성숙시켜 결실을 맺는다는 것이 "초발심(初發心)이
곧 정각을 이룬다(成正覺)"라는 의미다.
세상을 살다보면 무엇인가 하려고 원은
세웠지만 초지일관 그 뜻을 관철시켜 성취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시간의 흐름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끌려가는 마음, 게으름에
포기하려는 마음,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며
스스로를 비하하는 마음 등 이러한 번거로운
마음을 항복받지 못하고 끌려다니게 되면
초발심의 목적은 희미해지고 모든 의지를
잃게되며 중생의 괴로운 삶을 떠날 수
없다.
금강경의
수행법은 모든 상(相)을 떠나는 것이다.
모든 상(相)을 떠나면 초발심에서 세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일체의 괴로움은 자연히 없어지고
부처님과 같은 열반의 즐거움만 있게 된다.
금강경은 마음의 헛된 망상을 비우는 수행이
담겨있기 때문에 금강경을 독송하면 전생의
죄업이 소멸하고 마음이 깨달음의 지혜로
밝아지게 되므로 마음이 편안하게 된다.
마음이
편안하여 어떤 상(相)에도 머무르지 않는
보시를 하면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는
인욕행을 수행할 수 있고, 또 계(戒)를
받아 지키고 복을 지어 신심을 일으키므로
모든 부처님이 즐거워하신다.
금강경은
부처님의 마음에서 나온 말씀이므로 금강경은
마치 부처님의 사리탑과 같으므로 금강경을
독송할 때는 부처님이 기뻐한다는 의미다.
금강경을 독송하면 할수록 금강경에 대한
의미를 차츰 마음에 익히게되고, 자연히
금강경의 수행에 익숙해지게 되므로 금강경을
독송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금강경의 네
구절만이라도 알려주고 독송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공덕이 마치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보배로 보시하는 것보다
수승하다는 것이다.
금강경을
장례식이나 천도제를 지낼 때 많이 독송하는
것을 보고 극락세계로 보내 주는 경(經)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이는 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금강경의 의미를 깨달아 지혜로운
영혼이 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새로운 삶의
길을 깨우쳐 가시라는 뜻이다. 이것은
선종(禪宗)에서 하는 영혼천도의 방편이다.
금강경
독송기도는 때와 장소가 따로 없다. 어디서나
어느 때나 일상적으로 독경할 때의 처음인
정구업진언부터 개법장진언까지를 하고
금강반야바라밀경 "여시아문일시불
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중략)
신수봉행"으로
끝나면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개공성불도" 하는 축원으로 미치면
된다.
선종의
오조홍인(五祖弘忍) 스님은 금강경 독송으로
육조혜능(六祖慧能) 스님을 깨달음으로
이끌었고, 고려시대 보조지눌(普照知訥)
스님도 육조단경(六祖壇經)으로 깨달음을
얻고 조계산 수선사(송광사) 결사도량에서
금강경을 독송하였다. 백성욱 박사는 금강경
독송회를 만들어 많은 대중이 동참하고
있고, 필자 역시 금강경 10만독 발원을
세우고 항상 새롭게 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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