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수코타이와 그 주변
강영철 / 동국대 박물관

수코타이(Sukhotai) 왕국(1238 1438)은 타이족 최초의 통일 국가이다. 이 왕조에 이르러 타이민족을 시암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타이문자가 제정되었다. 민족적 정체성을 찾으면서도 그들을 지배하였던 크메르인들의 문화에 영향을 받고 스리랑카와 미얀마, 중국과 같은 이웃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융합하여 수코타이 고유의 문화의 꽃을 피웠다.

수코타이의 문화와 불교미술은 테라바다(上座部) 불교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남방미술의 화려함 속에서도 내면적인 충실함이 잘 드러나 있다. 불상에서는 석재의 연마 기술과 뛰어난 청동 주조법을 이용하여 섬세하고 우아한 새로운 조형양식을 선보였다. 사원건축에서도 이전의 시기에서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왕조는 13 14세기에 그 절정의 시기를 거쳐 14세기 후반부터는 속국이었던 아유타야 왕조(1350 1767)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수코타이 왕조의 수도가 위치했던 수코타이 유적은 태국의 중앙 평원지대인 현재의 수코타이 시에서 서쪽으로 13km 떨어진 욤 언덕에 둘러싸인 평지에 있다. 올드 수코타이로도 불리워지는 이 유적에는 37곳의 와트가 도성의 안쪽과 바깥쪽에 분포해 있는데, 85개의 장소에서도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와트란, 일종의 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건물의 배치와 축조 양식은 시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와트의 기본적인 축조물로는 부처님의 성골(聖骨)이나 왕의 유해를 안치하는 체디와 불상이나 성물(聖物)이나 경전을 안치하는 몬도프 그리고 종루에 해당되는 호라캉, 경전을 보관하는 호트라이, 강당에 해당되는 위한, 의식을 집전하는 곳인 보트 등이 있다.

수코타이 도성의 중앙에는 이 왕조를 열었던 인드라디탸가 세운 와트 마하다트가 있는데, 스투파(탑)만도 185개가 있는 수코타이에서 가장 크고 장엄한 건축 조형물군이다. 대칭과 비례가 강조되는 기하학적 축조 계획에 따라 조성되었다. 당시의 장인들은 수코타이 건축 고유의 것으로 자리잡은 연꽃 봉오리 모양의 상륜부를 지닌 체디를 중심으로 좌우 측면에 두 개의 몬도프를 세우고 그 안에 프라아타로트라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불입상을 안치하였다. 주변의 수많은 석조 건축물들도 구획에 따라 배치되고 있으며 외곽에는 인공 호수와 제방이 일부분 남아 있다. 와트 마하다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화려한 옛 도성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당시에는 불교 건축물에만 석재를 사용하게 하였기 때문에 목재로 지어진 왕궁이나 민가는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성의 동쪽에 있는 와트 트라방통은 연꽃이 가득 피어있는 호수의 작은 섬에 자리잡고 있는데, 여기에는 천녀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석가모니 상의 부조가 있다. 수코타이 최고의 예술작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도성의 남쪽에는 와트 시사와이가 아름다운 조경환경을 자랑한다.

수코타이 주변의 역사 지구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시삿차날라이와 캄팽페트 지구이다. 시삿차날라이는 수코타이의 제2의 도성이다. 원나라의 도자기 기술을 받아들여서 시삿차날라이의 옛 이름인 사완칼록의 이름을 딴 상칼록 도기로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 수출하였다. 수출이 활발하던 14세기 중반부터는 많은 뛰어난 작품들이 만들어졌는데, 코끼리를 탄 국왕을 조형화한 기품있는 녹갈색의 청자나 물고기와 꽃의 모티브가 담겨져 있는 그릇들 그리고 건축물의 장식부재나 지붕 장식에 쓰였던 많은 유백색의 화려한 도자 장식들은 수준 높은 도자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지금도 당시의 가마터가 145개나 현존하고 있다. 또한 시삿차날라이에는 14개의 와트가 남아 있으며 특히 '코끼리가 둘러 싼 사원'이라고도 하는 와트 창롬이 유명하다. 장식 벽토로 만든 39마리의 코끼리가 체디의 이중 기단부 위의 벽면을 따라 상반신만을 내민 채 서 있다.

캄팽페트 지구는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성격뿐만 아니라, 화장 회반죽이나 도자기와 더불어 당시 와트의 중요 장식 재료였던 테라코타 장식이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으로 이름이 높다.

수코타이의 예술세계는 사원 건축물과 공예품에서 그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지만 당대의 미적정서와 종교적 사유가 가장 잘 반영되고 있는 것이 불상조각이다. 이 시기 불상의 특징은 전체적으로 간결한 선과 면을 통해 내면의 고요한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다. 그 조형 감각을 살펴보면, 화염 형태의 계주(쬇珠)에 나발은 작고 곱슬곱슬하며 안면은 아치형의 눈썹과 길고 가느다란 코 그리고 은은한 미소를 담은 계란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어깨는 넓고 허리는 다소 들어가 있지만 거의 등신대에 가까운 비례로 말미암아 안정감이 있다. 가사는 의문선만이 보일 정로도 신체에 가볍게 밀착되어 있고 좌측 어깨에서 배꼽까지 드리워져 있으며 V자형의 새김눈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좌대는 이단의 연화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라시라타나마하타트에 있는 14세기 핏사눌록 불상은 수코타이 불상의 정점에 있는 것으로서 방콕의 에머럴드 불상과 함께 가장 큰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보통 불상은 좌상이나 와상 그리고 입상이 대부분인데, 이 왕조에 이르러서는 걷고 있는 부처님을 표현한 유행불(遊行佛)이 등장한다. 비대칭 속에서도 동체와 팔 그리고 다리의 움직임으로 나타난 신체 사이의 공간을 자연스러운 동선으로 연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신체 비례와 부드러운 양감 위에 어떤 군더더기나 과장없는 완벽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생기와 활달함으로 넘치던 이 시대의 하나의 문화적 자신감이라 할 수 있다. 람캄행 국립박물관에서 이러한 유행불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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