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미니 법회
강호덕 / 산림자원학과 교수

백설로 가득 찬 황량한 겨울, 끝없는 옥수수 들판, 이는 내가 공부했던 미국 아이오와 주를 대표하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아이오와 주는 미국에서 가장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제적 수준이 50개의 주 중에서 평균수준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대통령 예비선거를 가장 먼저 치르는 주로 알려져 있다.

아이오와주립대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에임즈 시는 인구 7만 중 학생이 5만으로 전형적인 농촌의 소도시이다. 한국 학생 수는 중국, 인도 다음으로 세 번째로 많은 500여 명 정도였지만 지금은 학부학생의 증가로 1,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농과대학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대학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나는 그곳 아이오와주립대학교에서 6년동안 석사, 박사과정을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대학 재학시 기초과목을 충분히 공부했는데도 언어 장벽에 부딪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강의시간에 옆에 앉아 있는 학생이 필기하는 사각거리는 소리, 심지어는 미국 학생들 조차 녹음하여 강의를 들을 정도로 열의가 대단했다. 매주 금요일까지는 열심히 학업에 열중하고 주말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운동을 즐기곤 했지만 그것도 추위가 영하 40  이하로 떨어지는 겨울철에는 불가능했다.

아마 외국에서의 유학생활이 거의 비슷하겠지만 특히 미국에서 한국인들의 생활은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나도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여러 군데의 한국인 교회에서 픽업을 나와 도움을 받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매 주말이면 주일 예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있어 한인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곤 한다.

우리집은 대대로 불교집안이었다. 나는 이름만 불자였는데 모교인 동국대학교 재학시절 현재 불교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한 선배의 영향으로 불교에 정식으로 입문하게 되었다. 특히 대학교 1학년 재학시 불교문화사라는 교과목을 배우면서 불교를 제대로 접할 수 있었다. 매일 정각원에서 예불도 드리고 1985년에는 수계와 원천(原泉)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어느 해인가 학기중 학교에서 낯선 장면을 목격하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유학온 학생이 시험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원 학생 연구실에 자리를 펴놓고 일주일간 금식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마 일 년에 한 두 차례 있는 금식주간이었던 것 같다. 모슬렘에 대한 믿음이 저렇게 대단할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느꼈다.

유학생활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자 정신적인 빈곤으로 뭔가 의지하고픈 갈증이 일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불자들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미치게 되어 한인회보에 '유학생 중 불자가 있으면 연락바람'이라고 광고를 냈다.

 

한 2주 정도 지나자 다섯 가족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몇 가족 안 되었지만 식구를 포함하면 20명 정도가 되어 우리는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각 가정을 돌아가면서 미니 법회를 갖게 되었다.

사실 법회 순서도 모르고 의식도 정식으로 알지 못해 모든 절차는 합리적으로 즉흥적인 합의에 의해서 진행되었다. 우리는 불교적인 성향을 지닌 한국 사람이었을 뿐 신심 있는 불자는 아니었지만 서서히 독실한 불자로 변해가고 있었다.

삼귀의, 반야심경, 천수경, 찬불가, 사홍서원 등을 독송하고 중간에 성철 스님을 비롯한 큰스님의 법문 테이프를 입수하여 테이프 법회를 열기도 했다. 특히 초등학생 지도법사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도반이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고, 우리는 법회 후에 각자 집에서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는 등 정을 나누며 외로움과 향수를 달래곤 했다. 유학생 다섯 가족이 모여 연 작은 미니 법회였지만 빈곤한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슬기롭게 이끌어갈 수 있었던 정신적 지주였고, 불심으로 똘똘 뭉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때의 법회가 내 일생에 가장 기억에 남고 신심을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회에 참석한 가족 중에는 현재 미국 현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거나 한국에서 대학 또는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등 각각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유학시절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한 덕이라 여기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모교인 동국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불교에 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두 부처님의 은혜와 자비라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간 정부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국가 또는 국제기구와 산림분야 협력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한국 불교를 외국에 전파하고 동남아시아 등 불교국가와의 문화교류 촉진을 위해 불교인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장을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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