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악을
가져오는 제사 안양규 / 불교문화대
불교학과 교수
붓다가
제타바나(Jetavana)에 계실 때 죽은 자(死者)에게
음식을 차려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수많은
양과 염소를 죽여 작고한 친지나 조상들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 사람들이 이런 희생제의(犧牲祭儀)를
하는 것을 목격한 붓다의 제자들이 붓다에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사람들은
많은 생명체를 죽여 사자를 위한 제사를
지내는데, 이런 제사에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붓다는
대답했다. "제자들이여! 이러한 희생제의를
해서는 안된다. 생명을 죽이는데 무슨
이익 있겠는가? 과거생에 성인은 희생제의의
죄악에 관해 가르치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희생제의를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번 생에 다시 이런 악습이 다시
나타나고 있구나." 그리고 나서 붓다는
희생제의와 관련하여 전생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셨다.
아주
먼 옛날에 브라흐마닷타(Brahma-datta)왕이
베나레스(Benares)를 다스릴 때, 3종의
베다(Veda)에 능통하여 세상사람으로부터
존경받는 브라흐만이 있었다. 그는 희생제의를
지내기 위해 염소를 가져오게 하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 염소를 강가에 데려가서
목욕을 시키고 목에 화환을 둘러주고 충분한
양의 옥수수를 주어라. 잘 장식하여 다시
나에게 데리고 와라." 제자들은 시키는
데로 염소를 강에 데리고 가 목욕을 시키고
장식을 하고 나서 강둑에 세웠다.
여기에서
염소는 자신이 전생에 지은 악업의 과보를
보면서 생각했다. '오늘 나는 악업의 과보로부터
자유로워 질 것이다.' 이 생각에 기뻐서
염소는 행복하게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나
한편 염소는 이 브라흐만이 나를 죽인
죄의 댓가로 내가 겪었던 과보와 같은
불행을 당하게 될 것을 생각하여 그에
대한 동정 때문에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이에
젊은 제자들은 염소에게 왜 웃다가 우는
지 그 이유를 물었다. 염소는 이 질문을
그들의 스승 앞에서 다시 물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염소를 스승에게
데리고 가서 강가에서 일어났던 일을 말하였다.
이 이야기의 전말을 들은 브라흐만 스승은
염소에게 웃고 운 이유를 물었다.
염소는
자신이 전생에 지은 행위를 기억해내고
브라흐만에게 말했다. "브라흐만이여!
전생에 나도 브라흐만으로 태어나 신비스러운
베다를 공부하고 사자(死者)를 위한 희생제의를
행하고자 결심하였다. 나는 염소를 죽여
제사를 지냈다. 저 염소 한 마리를 죽인
과보로 나는 499번의 생애 동안 499번
머리가 잘려 나갔다. 이번 생애는 500번째이며
이제 더 이상 다음 생애에는 괴로운 과보를
받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나는 즐거워
크게 웃었다. 그러나 한편 그대를 생각하니
슬펐다. 이 브라흐만은 나를 죽임으로써
나처럼 500번씩이나 머리가 잘려나가는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이런 생각에
나는 슬퍼 울었던 것이다."
브라흐만
스승은 말했다.
"염소여!
두려워 말라. 나는 그대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염소는
대답했다.
"브라흐만이여!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그대가 나를 죽이든
말든 나는 오늘 죽음을 면할 수 없다."
"염소여!
두려워 말라. 내가 그대를 보호할 것이다.
나 가까이 머물러라."
"브라흐만이여!
그대의 보호는 보잘 것 없다. 오히려 내가
저지를 죄악은 훨씬 크고 강력하다."
브라흐만
스승은 염소를 놓아주고, 제자들로 하여금
가까이서 보호하도록 하였다. 염소가 자유롭게
커다란 바위 옆에 자라고 있는 나무의
잎을 따먹기 위해 자신의 목을 뻗치는
순간, 바위에 천둥 번개가 떨어졌다. 바위가
깨어지면서 파편이 염소의 목을 뚫고 지나갔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때
보살은 그 일이 일어난 장소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의 신이었다. 자신의 신통력으로
공중에서 가부좌를 하고서 모여있는 청중을
보면서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 업보의
광경을 목격하고 저런 살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게송으로 가르쳤다.
"만약 사람들이 이런 행위가 고통스런
삶을 야기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살생한 자는
틀림없이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보살은 살생의 과보는 지옥에 태어나는
것임을 알리고 보시 등과 같은 선한 행위를
할 것을 가르쳤다.
지금
살고 있는 생물을 죽여서 죽은 자를 위하여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이야기를
좀 더 넓게 해석해 보면 죽은 자 또는
신을 위하여 살아 있는 생명체에 폭력을
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짓이다.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가치
없고 유용하지 못한 동물, 식물일지라도
모두 생명체라는 점에서 평등하고 존엄하다.
따라서 붓다는 오계 중 첫 번째로 불살생계(산
생명을 죽이지 말라)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은
인간의 생명을 다소 경시하는 경향이 보인다.
염소와 같은 동물을 죽이는 과보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는데 하물며 사람을
해치거나 괴롭히는 행위는 고통스러운
과보를 초래할 것임은 재언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붓다가 다른 곳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무고한 생명을 죽여 제사하지
말고 자신의 이기심을 죽여 제사하는 것이
진정한 제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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