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의 세계
최법혜 스님 / 경주캠퍼스 정각원장

불교도들이 수행하면서 최종의 목표는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그 깨달음의 세계를'부처님의 세계'라고 한다고 하면, 그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하지 못한 반대의 상태의 세계는 '중생의 세계'라고 합니다. 이 중생의 세계는 '오탁악세(五濁惡世)'라고 표현되기도 하며, 진리를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배반하면서 사는 세계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에 순응해서 나아가려고 항상 목표를 세우고 그 세계의 마지막 목표가 부처님의 세계이지만은 거기까지 도달했다고는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중생이라고 부르자니 중생보다는 나은 세계의 구도자를 대승불교에서는 '보살(菩薩)'이라고 합니다.

보살이라고 하면 흔히 여러 보살님들을 떠올릴 수 있으며 각기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은 우주의 밝은 진리, 대광명을 발하여 법계(法界)를 두루 비춘다고  합니다. 석가불이 주불(主佛)이 될 때 협시불이 되는 문수(文殊)보살과 보현(普賢)보살은 한쪽은 사자를 타고 있고, 한쪽은 코끼리를 타고 있습니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상징이고, 보현보살은 실천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지혜와 실천이 두 가지 겸하여 광명변조의 뜻이 됩니다. 그리고 정토세계를 구현하는 아미타불이 주불이 되었다면 거기에 좌협시는 관세음(觀世音)보살이 되며, 우협시는 대세지(大勢至)보살 또는 지장(地藏)보살이 됩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자와 비로 고통을 덜어주고, 그 다음에 즐거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대세지보살은 희사(喜捨)입니다. 받을 생각은 없고 그저 주는 기쁨만 있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그 분을 대세지보살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한 분, 지장(地藏) 보살은 지옥에 있는 중생들이 한 사람도 없을 때 성불하겠다는 원을 세운 분입니다.

이러한 여러 불보살의 세계를 떠나서 현재 우리는 대게 절에 다니는 신도님들을 보고 보살이라 부릅니다. 불교사전을 찾아보면 보살은 보디사트바(bodhisattva)의 준말이며 보디는 깨달음, 사트바는 중생이라고 하여 깨달음과 중생 이 두 말이 보살이 되고 그 다음에 보살계를 받은 사람을 보살이라 한다고 했습니다.

불교에는 계(戒)라는 것이 있죠. 우리가 받는 것 즉 출가와 재가 양쪽으로 크게 나누고, 출가에는 정식 스님이 되기 위해서 20세 이상이 받는 비구 비구니의 계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예비 승려인 사미 사미니의 계가 있고, 비구니가 되기 위해서 받는 사미니의 식차마나계도 있습니다. 그러면 재가 신도들은 무얼 받는가요? 오계(五戒)를 받게 됩니다. 이 오계를 받는 데에 있어『범망경(梵網經)』을 중심으로 한 보살계가 있습니다.

만약 부처님처럼 되려고 한다면 행과 지혜가 완전하게 되어야 합니다. 소승불교에서는 역사적으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분은 '부처님' 한 분으로 딱 정해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수행자들이 수행을 해서 최종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을 '아라한'이라 정했습니다. 대승불교에 와서 "깨달은 부처님도 인간이시고, 우리도 인간이다"라고 얘기합니다. 우리가 수 없는 수행을 반복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 불성(佛性)은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진흙 속에 묻혀서 때가 끼여 보이지 않듯 모르고 있을 뿐 개개인이 모두 부처님이 될 가능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여래장(如來藏) 사상'이라고 합니다.

보살이라는 말을 해석할 때는 보리살타에서 각과 유정, 두 단어를 해석하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깨달을 중생' 이렇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얘기하자니 아직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문자로 써서 위로 진리를 구한다. 깨달음을 구한다. 그래서 '상구보리(上求菩提)'라는 문자를 쓰죠. 또한 보살은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보살은 깨달을 중생에서 '깨달은 중생'으로도 해석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항상 선(善)을 추구하는 그런 노력이 있는 생활이 될 때, 보살의 세계가 되고 그렇지 못했을 때는 중생의 세계로 전락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학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아버지로서, 자식으로서 자기의 지위에서 정말 내 도리를 다하는 가 이것을 한번 자성 해봤을 때 만일에 그것의 점수가 높이 올라가면 그분은 바로 보살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보살의 세계에서 보살들이 지녀야할 계법으로 범망경에서 세 가지, 삼취정계(三聚淨戒)로 요약되는데 첫째가 자기가 지켜야 할 계율을 잘 지키는 즉 자기 행동을 잘 간수해서 하라는 섭율의계(攝律儀戒)이요, 둘째는 섭선법계(攝善法戒)로 보살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선을 베풀어야 되는 일들이 많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섭선법계에서 선한 것이라는 것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복지사업이나, 모든 중생들이 이로움 즉 행복추구를 위해서 하는 행동을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을 할 때 그것을 악용하거나 잘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보살이 계를 파한 것이 됩니다.

셋째는 섭중생계(攝衆生戒)로 자비심으로 중생을 보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을 버리거나 괴롭힌다면 보살이 아닌 것입니다. 기업활동을 할 때 좋은 일을 하면서도 너무 자기의 이익에 치우치다 보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하며 해로운 일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 예가 낙동강의 페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돈이나 권력을 남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중생을 보살피라고 하는 섭중생계를 어기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보살계를 받고 이를 지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범죄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더불어 살면서 내가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조금이라도 이로움이 될까 이렇게 살피는 사람이 보살의 세계에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내가 한 행동이 바로 연기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배려하는 것이 보살의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보살의 사상에는 어떤 것이 있냐고 하면 사홍서원(四弘誓願)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가 무엇입니까?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로 중생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내가 어려운 사람들을 건지겠다는 그 원이 첫째가 됩니다.

둘째가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으로 내 머릿속에 번뇌, 이기심, 질투심, 탐욕과 어리석음이 꽉 차 있는데 그것을 자꾸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셋째가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으로 법문이 아주 많지만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으로 불도가 한량없지만 맹세코 저도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홍서원에서 바로 중생무변서원도는 섭중생계가 되고 번뇌무진서원단은 섭율의계가 됩니다. 법문무량서원학과 불도무상서원성은 섭선법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오탁악세를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똑같은 사바세계에 살면서 어떤 사람은 지상극락과 같이 느끼며 살고, 어떤 사람은 늘 가지고 있어도 불안하고 무언가 부족하다고 불평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사홍서원을 가지고 삼취정계를 실천해나가며 사는 것이 보살의 세계로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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