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통한 수행, 일본의 정진요리
박성환 / NHN 모바일 게임 기획

생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도락(道樂) 중에서도 식도락(食道樂)만큼 가장 원초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도락이 또 있을까. 얼마 전부터 미식(美食)의 바람이 불어 맛집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이를 위한 인터넷 동호회도 수없이 많아졌다. 하지만 본래 식도락과 미식이란 그것이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탐하고, 혀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음식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먹는 자로 구분을 한다고 하면, 음식을 장만하는 이는 먹는 이를 위해 진정한 재료를 찾고, 그 과정을 통해 사물을 분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더불어 그 재료를 찾아 요리를 하고, 대접을 하는 과정에서 그 정성에 대해 늘 고민해야 한다. 먹는 이의 입장에서는 소중하게 마련한 요리를 받아 그 정성에 감사를 표하고, 다양한 조리법에 의해 요리된 그 재료들이 먹는 이의 몸에 던져주는 갖가지 의미들에 대해 깊은 공감을 표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 음식은 인간의 신체는 물론 정신까지 변화시킬 정도로 무한한 우주를 담고 있으며, 또한 그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자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충족과 맞물려 있으므로, 일상 수행의 방법론이 될만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도(道)이자, 따라서 도락(道樂)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불가(佛家)에서도 수행의 한 방법론으로서 식(食)을 중요시하며, 수행을 위한 여러 가지 조리법이나 전통들이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스님들이 수행 중에 먹는 일상음식을 정진요리(精進料理)라고 하는데, 정진요리는 고기와 생선, 오훈채(마늘, 달래, 무릇, 장파, 실파와 같은 자극성이 있는 다섯 가지 채소를 뜻함)를 제외한 담백한 채식식단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사찰음식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만, 이면에는 우리와 또 다른 문화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다.

 

일본 진언종 본산인 고야산(高野山)의 별격본산(別格本山)인 일승원(一乘院)의 공식 사이트에서는 정진요리의 역사와 간단한 지식 등을 깔끔하게 정리해놓았다(http://www.itijyoin.or.jp/ichijoin/shoujin01.html). 이 사이트에 소개 된 내용에 조금 더 살을 붙여 그 역사를 설명하자면, 정진요리의 시발점은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 1180년대 1333년)에 선종의 한 일파인 조동종(曹洞宗)의 종조였던 도우겐 선사(道元 禪師)가 일상생활 중에서도 엄한 수행을 요구했던 것에서 그 원형을 찾는다. 가마쿠라 시대 이전에는 일본 내에서 조리법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서, 불가에서도 야채나 생선을 생식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후 가마쿠라 시대에는 식재료를 간장이나 된장을 가지고 끓이거나 튀기는 새로운 조리법들이 폭넓게 고안되었고, 그 이후에 다시 다도(茶道)와 더불어 정진요리의 체계가 정리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고도화 된 음식문화는 일본요리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본에서는 정진요리가 일본요리에 플러스 알파를 한 것이라고 종종 말하는데, 바로 앞서 언급한 가마쿠라 시대의 성립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원래 일본은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였으나, 8세기말에는 중앙집권적인 율령제가 무너지고 귀족과 사찰 소유의 사적토지인 장원(莊園)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짧은 시기에 세 번의 천도가 있었고, 관서지방의 오사카(大阪), 나라(奈良), 교토(京都)는 모두 당시 일본의 수도로서 정치, 문화의 핵심지역으로 발전하였다. 교토 천도 이후, 헤이안(平安) 시대를 거쳐 무가(武家)인 가마쿠라 막부가 들어서게 되는데, 이때에도 사찰 장원은 중앙 귀족과 더불어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행사하였고, 음식문화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 요리문화 전반은 대개 관서요리에 뿌리를 두며, 그중에서도 당시 관서문화를 꽃피운 문화권력집단인 사찰 장원의 정진요리가 그 중앙에 있었다고 하겠다. 정진요리는 가이세키요리(*懷石料理)라는 일본 음식 문화의 한 주류를 탄생시켰고, 이는 가마쿠라 시대에 다도와 함께 체계적으로 정리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시대의 식문화가 권력집단의 문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사례로, 우리나라의 상차림에서 궁중음식이 반가(班家)음식에 영향을 주고, 다시 반가음식이 기타 다른 집단의 음식문화에 영향을 주었던 것과 비슷한 유형이라 하겠다.

*주 : 발음이 같은 가이세키요리(會石料理)와는 다른 요리의 종류.

 

현대의 정진요리는 건강을 위한 식습관으로서 그 대안이 되고 있으며, 가와구치(川口) 스님의 홈페이지(http://k_sousei.tripod.

co.jp/)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담백한 흰색을 표현하고자 하는 채식위주의 정진요리는 건식요리(健食料理)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정진요리를 재료별로 오색(五色)으로 분류하는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흰색을 나타내는 쌀, 보리 등으로 지은 밥은 에너지를 주며, 적색을 나타내는 대두(大豆)로 만든 두부 같은 음식은 단백질을 보충해주고, 노랑을 나타내는 근채류(根菜類), 초록을 상징하는 엽채류(葉菜類)는 비타민과 섬유질을, 마지막으로 흑색을 나타내는 해조류와 버섯류는 미네랄을 제공한다고 한다. 각 사찰마다 특색있는 방문객을 위한 손님용 정진요리를 내고 있으며, 사찰 뿐 아니라 시내에서도 정진요리를 코스요리로 판매하는 음식점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자칫 편식하기 쉬운 현대 식생활에서 정진요리가 생체의 밸런스를 찾아주는 대안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는 일본의 사례는 사찰음식문화가 이제 막 민간에게 알려지고 있는 시점의 우리에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나라에서도 얼마 전부터 사찰음식이 대중에게 소개되고 있지만, 아직까진 사찰음식을 평소에 즐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사찰음식을 보다 널리 전파하면 불자에게는 수행방법으로서, 대중에게는 건강식으로서 도락(道樂)을 함께 할 수 있을테니 더더욱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 목차 |
 

| 월간정각도량 | 편집자에게 | 편집후기 |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