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내린 촉촉한 비
이영진 /인도철학과 박사과정

"숨을 마시면서 몸의 평안함을 알고 숨을 내쉬면서 마음의 평안함을 안다."

이는 얼마 전 동국대학교에서 틱낫한 스님이 오셔서 강연하신 들숨과 날숨에 대한 관찰(入出息念) 중의 한 방법으로 요사이 명상을 할 때 많이 사용한다.

스님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몇 해전 도서관에 가서 우연히 뽑아들은 한 권의 책을 통해서였다. '첫사랑은 맨 처음 사랑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화'나 그밖의 다른 책처럼 유명한 책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을 통해 느꼈던 감동은 지금도 유난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어느날 학교에서 우연히 스님이 학교에서 삼일정도 법문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리 큰스님이지만 삼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일어났다. 그리고 스님을 상술로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후원사들에 대해서 분노도 일어났다. 하지만 일단 가보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틱낫한 스님은 티벳의 달라이라마, 캄보디아의 마하 고사난다 스님과 함께 현대에서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 받고 계신 분이다. 이 분들은 수행만이 아니라 자국의 전쟁이나 내전이라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비와 비폭력 저항으로 더욱 빛을 발하시고 계신다. 우선 이러한 명성에 이끌린 것이 사실이다.

첫날은 30여분을 먼저 갔음에도 불구하고, 중강당의 좌석은 이미 꽉 차있어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으니, 틱낫한 스님을 대신하여 비구니 스님이 들숨과 날숨의 관찰에 대하여 설명하시고 청중들은 조용히 그 방법을 실수(實修)하고 있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그 대열에 합류하였다. 얼마 후 틱낫한 스님이 조용히 입장하셨다. 스님의 고요하면서도 충만한 모습은 얼마 전 열반하신 모시고 공부했던 큰스님과 매우 흡사했다.

이런 생각이 스님의 법문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고 스님의 한마디 한마디 말이 건조해진 내 가슴을 촉촉히 적시기 시작했다. 예전에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던 마음의 평정과 풍요로움은 다시 돌아온 빡빡한 일상 속에서 점점 메마르고 건조해져 갔었다. 아니 스님의 법문을 듣지 못했다면 여전히 평정과 풍요로움에 살고 있다는 마음의 장난에 계속해서 속고만 있었을 것이다. 많은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났지만, 점점 스님의 법문으로 그리고 지금 현재로 충만해 질 수 있었다.

스님이 설법하신 수행법은 외형적으로 초기불교의 사념처관을 취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는 대승의 철학과 자비라는 정신을 담고 있다. 가령 오렌지를 본다고 하면 전통적인 방법으로 그 오렌지라는 대상이나 그것을 아는 의식을 관찰한다고 하면, 스님은 그 속에서 흙과 물과 농부의 땀 등을 통하여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모든 인연을 관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방법은 철저히 무아에 기반을 두며 이 세상 모든 것이 상호 인연을 맺고 있다는 대승의 철학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점은 나에게 있어 일종의 충격이자 큰 자극제였다.

대승불교와 선불교라는 토양에서 자라 흔히 소승이라 폄하되는 전공과 남방의 수행을 해나가고 있는 나는 이 둘 사이에서 일관되지 못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때로는 내가 해나가고 있는 길에 대한 자부심과 그에 따른 배타성 그리고 여전히 자라온 토양을 지향하는 엇갈린 심정들.... 이 모든 것을 정리하지 못하여 해결점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는 중이였다. 아마도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불교의 현실도 이러한 부딪침에서 상호 보완해주는 역할로 나가는 중이라면 혼자만의 착각일까?

 이러한 대승과 남방을 넘나들 수 있는 것은 스님의 조국인 베트남에서 한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 베트남은 공산권치하에서 불교가 인정되고 융성한 유일한 나라로 굳이 나누자면 우리와 같이 중국의 영향을 받은 대승 불교권이다. 또한 현재는 정치적인 이유로 정책적으로 국가에서 남방불교를 도입하고자 많은 인재들을 남방에 보내 수행하게 한다. 그리고 또한 남방과 대승불교가 혼합된 또 다른 종파도 역시 존재한다.

또한 입문한 종파는 선불교였지만 스님은 종파를 초월하시고 더 나아가 종교를 초월하여 가톨릭 신부들과 함께 반전운동과 평화운동을 실천하셨으며, 미국의 대학에서 비교종교학을 강의하신 바 있다. 이러한 스님의 경험에 기인한 열린 태도와 관점은 나 개인뿐만이 아니라 우리 불교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돌려 첫날은 세부적인 설명보다는 개괄적이며 그 핵심을 설명하시는 것으로 끝이 났다. 둘째 날은 먼저 경행과 먹는 명상의 실수가 있고 나서 세부적인 사념처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수행법은 방법에서는 예전에 해 오던 것과 차이가 있었지만 근본은 변함이 없었다. 들숨에 두 걸음을 걸으며 지금 현재에 깨어있다는 'I have arrived'로 관찰하고, 날숨에 두 걸음을 걸으며 역시 지금 현재에 머물러 있다는 'I am home'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즉 미래도 과거도 아닌 바로 지금 현재에 마음을 두어 계속하여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내가 아는 바로는 위빠사나의 근본정신과 지극히 일치하는 것이다.

이 날 사념처관 법문의 초점은 분노였다. 분노 역시 먼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고 아이를 감싸듯이 달래야 하며 결코 억눌러서 크게 만들거나 그것을 따라가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이다. 즉 "끌어안지도 말고 밀어내지도 말라."라는 중도의 입장에서 설하셨다.

안타깝지만 마지막날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이 못다한 인연이 다시 언젠가 더 좋은 인연으로 맺어지길 간절히 기원한다.

정말 너무나 오랜만에 메마른 가슴에 내린 촉촉한 봄비였으며, 이 자리에 있게 된 모든 인연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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