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로 살자
정산 스님 /불교문화대학 강사

새해가 되면 누구나 올해에는 좀더 보람되고 알찬 삶을 만들어 보려고 다짐을 한다. 그러다가 지나간 시간을 보면 늘 결과에 대해 맘에 차지 않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의 세상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히려 짧은 기간에 일어난 자신 내부의 문제가 또는 외부의 변화가 작은 육신을 고민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행복이라는 문제를 생각하곤 한다. 새해에 세워 놓은 의욕적인 계획은 점점 더 멀어져 가며 작심삼일이 되기도 하지 않은가. 부처님께서는 『열반경』 「성행품」에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하셨다.

 

자기 집 앞에서 얼굴이 아름답고 화사하게 차려입은 여인을 보고 집주인은 반기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지요"

"저는 공덕천(功德天)입니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시나요."

"저는 가는 집마다 그 집에 행복을 줍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그 여인을 맞아들여 향을 사르고 꽃을 뿌려 공양했다. 그리고 밖을 보니 또 한 여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추한 얼굴에 남루한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저는 흑암천(黑暗天)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왔소."

"저는 가는 집마다 그 집에 재앙을 뿌린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썩 물러가라고 고함을 쳤다. 그러자 그녀가 비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에 당신이 반겨준 이는 우리 언니인데 나는 항상 언니와 살아야 할 팔자입니다. 나를 쫓아내면 우리 언니도 나를 따라올 겁니다."

주인이 공덕천 여인에게 그 사실을 물으니 그렇다고 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를 좋아하려면 우리 동생도 함께 좋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시도 떨어져서는 못 사니까요."

화가 난 주인은 두 여인을 다 쫓아버렸다. 그리고 손을 잡고 사라져 가는 두 자매의 뒷모습을 보고 그는 마음이 후련해 했다.

우리들 인간은 행복만을 원한다. 그 누구도 불행과 재앙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는데 그 계획의 최종 목적은, 본인과 주변사람들의 행복에 있다. 그러나 그 계획이 얼마가지 않아 흐지부지되는 것은 본인의 의지의 박약함과 아울러 반갑지 않게 끼어드는 재앙으로 인한 좌절 때문인 것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면 온갖 괴로움을 겪어야 하고 늙어야 하고 병이 들면 죽게 되는 법이다. 따라서 행복과 불행의 두 자매 중에서 하나만 선택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것이 어찌 행복과 불행에만 국한 된 것인가. 인간이 아름다운 것만 좋아하고 추한 것은 싫어하는 마음이 가득 차게 되면 필경 사물에 대한 선택이 지나치게 심하여 모든 사물이 서로 어울리지 못할 것이며, 어진 이를 사랑하고 어리석은 이를 미워하는 마음이 너무 분명하면 모든 사람에게 신망을 잃을 것이다.

세상살이는 인간에게 아름다운 것, 어진 사람만을 만나게 해 주지 않는다. 때로는 추한 것을 쓰다듬어야 하고, 미워하는 이와 동고동락을 해야 하는 것이 세상살이 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취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부처님께서는 어리석은 사람은 두 가지에 다 같이 집착하지만 보살은 함께 버리고 애착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즉 행복에만 집착하다보면 자연 불행을 겪을 것이요, 그러다 보면 행복에 대한 욕심만이 더욱 강해져 돌이킬 수 없는 불행에 빠지는 인간의 탐심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사는 동안 어찌 이러한 행복과 불행을 외면하고 버릴 수가 있는가. 설사 나는 그것을 버렸다고 하지만 나와 남이 서로 다르지 않으므로 남의 행복과 불행이 나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동안 함께 있어야 할 행복과 불행의 두 자매에 대해 우리는 끌려가지 않는 초연함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맹렬한 불길이 단단한 쇠붙이를 녹여 흐르게 함과 같이 번거롭고 답답한 일을 당하더라도 부드럽고 맑은 소신을 가지는 것이며, 늦가을의 찬 서리가 모든 생물을 시들어 죽게 함과 같이 쇠잔하고 걱정되는 처지에 이르더라도 온화한 봄기운과 같은 생명력 있고 평화로운 기상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지 행복과 불행이 교차되는 순리를 거부할 수가 없다.

우리 동국인들에게 이 두 가지를 버리고 집착하지 않는 보살도에 이르는 방법은 부드럽고 맑은 소신을 가지는 일이요, 생명력 있고 평화로운 기상을 가지는 일임을 알아 새해 년 초에 다짐했던 알차고 보람된 나날이 되자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자고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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