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은
나의 수행이자 원행 구태희 /교육대학원
교학부장, 시인
아파트를
지키고 있는 보안등 아래 가지런히 잠을
자고 있는 자동차가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장난감처럼 보인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제법 숲을 이룬 나무 위에서 소쩍새가
곡우를 지나 입하가 십 여일 남았음을
알리는 듯 목청껏 노래부른다. 청년시절
긴긴 밤을 생각에 지새우던 추억들을 ,
책갈피 속에서 화석이 된 은행나뭇잎 꺼내듯
하나하나 끄집어내서 이야기라도 하자는
듯….
산사에서는
지금쯤 아침예불을 끝내고 좌선과 간경을
하며 하루를 맞이하겠지, 녹차한잔을 달여
마시고 원효성사의 발심수행장을 심독
하고 나면 마음이 담담해 진다. 옷을 갈아입고
아침 운동에 나서면 한시간 정도가 영겁
속으로 사라진 5시경, 얼마 전만 해도
소나무에 살짝 걸려 있는 그믐달이 얼굴을
내미는 것 외에는 어두운 밤이었는데,
벌써 목련을 젖히고 라일락 향기 그윽한
새벽의 맑은 공기가 가슴속을 파고든다.
달리며 만나는 새벽의 미화원, 우유배달원,
신문을 싣고 달리는 오토바이, 아침기도에
참석하는 사람들... , 이렇게 새벽을 열어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시작되는 하루는
상쾌하다.
불자로서
성불의 원대한 꿈을 향해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원행을 실천하는데는 출 재가를 막론하고
투철한 사명감과 확고한 신행이 있어야겠지만
나는 가장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나름대로
노력하는 것이 작은 원행의 실천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결혼
20년을 맞이한 지금 2남 1여의 가장으로
연로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여섯 식구가
살고있으니 요즘으로써는 대가족에 3대가
같이 사는 셈이다. 아버지는 한 며느리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짐이 된다며 추석과
설날 제사 등에 내려가시면 대전의 동생과
논산의 큰집에서 연 6개월 정도를 계시다
오셨는데 지난해부터는 우리부부의 뜻을
따라 이제는 우리 집에서 상주하신다.
"어떻게
하면 화목한 가정을 가꾸고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결혼을 하면서부터 나의 화두였지만
지금은 하나의 원행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화목은 가정의 시작이고 마지막이라는
것은 어려서도 부모님으로부터 익히 듣고
훈습 되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나이가 들면서 더욱 절실한 현실적 문제이며
모든 인류가 지향하는 공존의 터전이고
희망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를 사랑하고 불국정토를 꿈꾸던
우리민족의 심연에 가화만사성이 뿌리깊이
자리 매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금년에
대학생이 된 딸애가 세 살 되었을 무렵부터
나는 출근할 때 처와 셋이서 손을 잡고
"우리는 화목한 가정, 항상 사랑합니다.
파이팅!" 하고 하루를 시작하였다.
지금도 출근할 때는 어김없이 아버지를
제외한 다섯 식구가 손을 마주 모으고
똑같이 파이팅을 한다. 아무리 힘들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가족의 따뜻한 격려와
신뢰 속에는 모든 것이 눈 녹듯 사라진다.
내가 힘들어도 나를 밑거름 하여 너희들이
훌륭하게 된다면, 그리고 아버님이 편안하시고
처가 편안함을 느낀다면 나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토요일에는
차 한잔을 마시며 가족모두가 정답게 둘러앉아
가족회의를 한다. 처음 시작 할 때는 딸애가
다섯 살 되던 해로 벌써 15년이 지났다.
가족회의를 통해 밖에서 일어나는 일,
자녀가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있으며 부모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수 있고, 인성교육을
시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대화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우리 부부로써는 가정교육과
미래의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원하는
것과 밖에서 일어나는 교우 관계들을 포함하여
마음속에 담아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자리가 되는 셈이다.
이와
같이 화목한 가정을 가꾸고 지켜가기 위해
가족구성원 모두가 노력하면서 그 뜻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 밤에 잠자리
들기 전에 나름대로 발원을 꼭 하도록
한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시는데 그 원하는 것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하루의 일과를 반성하면서 꼭
발원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나 또한 나름대로 발원을 하루도 빠짐없이
30년이 넘게 해 오고 있다. 군 복무 중에도
나의 마무리는 잠자리 들기 전에 발원을
되새기며 다짐하는 것이었다. 또한, 검소하고
절약하는 담백한 삶을 살면서 나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 힘 따라 도우려고 하는 사람을
부처님은 예뻐하신다고 가르치면 아이들도
좋아하고 우리 부부도 같이 즐겁다.
나는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한 일이 있다. 유한한
우리의 삶 속에서 나만 있다면, 우리 가족만
있다면, 우리 이웃만 있다면, 우리나라만
있다면, 그것은 썩 좋은 것은 아니라고….
개개인의 정서로 볼 때는 불만스러운 것이
많이 있겠지만 동시대를 함께 하는 지구상
모든 사람이 백년을 넘기지 못하고 한
줌의 재로 변하는 벌거숭이 같은 가련한
존재라는 것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과 지식 권력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덧없는 것인가를….
가정마다
화목하여 나라가 평화롭고 세계가 평화롭다면
이것이 바로 불국정토가 아니겠는가. 많이
가졌다고 자랑하지말고 힘 따라 이웃을
돕는다면 이 또한 빈곤과 도둑이 없는
세상으로 연화계 불국정토가 아니겠는가.
높은데 있고 권력이 있다고 헌 칼 휘두르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검이 아닌 살려주는
활인검을 바로잡으면 불성 평등의 극락정토가
아니겠는가.
오늘도
녹차 한잔과 새벽운동, 만 여 독에 가까운
성사의 발심 수행장의 깊은 뜻을 음미하며
화목을 화두로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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