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윤리의식
정승석 /불교대학 교수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은 정치인들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확산되기 마련이다. 확고한 정치 철학과 투철한 윤리 의식을 세우고서 가시적으로 실천하는 정치인이 늘어난다면, 정치적 무관심은 능동적인 정치 참여로 바뀌게 된다. 앞으로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은 이 같은 변화의 선례를 남긴 분인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말하는 정치인이란 대체로 국민이 선택한 국회의원을 가리키므로, 정치인은 결국 국민이 만들어 낸다. 이 점을 고려하면 정치적 무관심은 오히려 국민을 불리하게 할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국민의 세련되고 건전한 정치적 관심은 현실 정치의 행태를 바르게 이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는 큰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관심으로부터 초연한 이데올로기가 종교라는 견해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특히 불교인이라면 정치적 문제에 초연하는 것이 불교인답다고 생각하는 성향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간의 역사와 문명을 돌이켜 보면, 종교가 정치를 도외시한 적은 거의 없다. 불교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전륜왕사자후경』 등의 여러 불전에는 불교의 정치적 관심이 잘 표명되어 있다. 또 민주화로 말하면, 불교의 승가 자체가 가장 민주적인 사회로서 조직되었던 전통을 계속 유지해 왔다. 물론 불전에 표명된 정치적 관심은 깨달음이나 해탈에 비추어 보면 부수적인 것이기는 하다.

예를 들어 『반니원경』에서는 "천하에 도(道)는 많다. 그 중에서 왕법(王法)은 큰 길이다. 그러나 불도(佛道)는 최상의 길이다."라고 설한다. 이 말씀은 국가적 법률적 질서 위에 정법 즉 종교적 도덕적 질서가 있을 뿐이며, 왕법은 결국 정법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 부수적인 것이 본질적인 깨달음이나 자비 실천과 직결되기 마련이므로, 그 부수적인 입장을 현실의 문제에 원용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이다.

불전에 나타난 정치적 관심은 제이의적인 것이므로, 그것이 급격한 사회 개혁론을 주창하는 것인 양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아울러 "만약 종교가 잘못된다면 그에 잇따라 위험한 정치가 일어난다."라는 경고도 경청할 만하다. 이 경고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치 현실에 요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전륜왕사자후경』에 의하면, 전륜왕은 인간의 정신적 요구를 충족하여 도덕성을 증진하려는 부처님의 이상을 실현하는 동시에, 부(富)를 평등하게 분배함으로써 인간의 물질적 요구를 충족시킬 것을 정치적 이념으로 삼는다. 결국 도덕성의 증진과 부의 평등한 분배를 실현하는 데 노력하는 정치인이 불전에서 제시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이다. 즉 전륜왕이란 오계(五戒)의 완전한 실현자로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보편적인 진리의 위력으로써 사회를 평정하고 통치하는 정치인이다.

『대살차니건자소설경』에는 정치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 있다.

"국왕의 관료가 국가의 대계(大計)를 생각지 않고 사리(私利)를 도모하며, 뇌물을 받아 정도(政道)를 문란하게 하고 민중의 도의를 퇴폐하게 할 때, 민중은 서로 속이려 하게 되고, 강자는 약자를 학대하고, 상류층은 하층을 경시하고, 부자는 가난한 자를 속이며, 옳지 않은 것으로써 옳은 것을 굽혀 재앙과 변란을 증장시키게 된다.

이러한 때는 충실한 사람들은 물러나 은둔하고 모리배가 정권을 장악하며, 뜻있는 자는 자신의 몸에 위해가 가해질 것을 염려하여 입을 다물고, 공권력은 더욱 더 남용되며, 자기의 배를 채우는 자가 속출함으로써 민중의 빈곤은 해결되지 않게 된다.

이상과 같은 것은 행정을 담당하는 관료가 충절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로 인민의 행복을 훔치는 도적이므로, 국왕은 이런 못된 관료를 가장 엄중하게 처벌해야만 한다."

정치인에게 윤리 의식이 결여될 경우를 예견한 위와 같은 상황은 바로 우리의 현실을 지적하는 듯하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정치적 무관심이 만연해 간다. 그러나 이런 무관심은 고통의 원인을 외면하는 무명(無明)의 발로에 속한다. 무관심은 정치적 비윤리를 더욱 활성화하여 고통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점을 직시한다면, 우리는 정치인에게 또는 정치에 나서려는 이들에게 더욱 각별한 윤리 의식을 그들의 정치 철학으로서 요구해야 한다. 『증일아함』의 「결금품」(細禁品)에서는 그들에게 요구해야 할 자세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재물에 집착하지 말고 노하지 말 것, 항상 군신과 화목하고 충고를 받아들일 것, 항상 즐겨 베풀고 인민과 즐거움을 함께할 것, 징세와 사법에서 반드시 법률에 따라 처리할 것, 규문(閨門)을 순결히 하고 처를 보호할 것, 술을 금하여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할 것, 실없는 웃음을 피하고 국가의 안녕에 힘쓸 것 등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이처럼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보다는 권력을 효율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정치인의 자질로 신봉하고 있는 것 같다. 『전륜왕사자후경』이나 『구라단두경』에서는 죄악을 근절하기 위해 가하는 처벌이 무용하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한다. 불교에서 오계는 투철한 윤리 의식의 상징이자 정치 철학의 기반이다. 이에 의하면, 현실적 고통을 해결하는 부의 분배는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건전한 정신과 도덕의 증진을 도모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 목차 |
 

| 월간정각도량 | 편집자에게 | 편집후기 |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