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오직 모를 뿐 전유진 / 토목환경공학
전공 3학년
지금까지
나도 남들처럼 새로운 뭔가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항상 두려움과 편견이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그러한 두려움과
편견을 이기고 들어갔을 때, 내가 얻었던
많은 희열은 그 전에 내가 치루었던 대가를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 것들이었다.
나의
정신적 방황은 고 2 때부터 시작되었고
그 때의 주된 의문은 ‘왜 사는가?’였다.
미션 스쿨이었던 고등학교에서 기독교를
접했고, 대학교에서는 불교를 접했다.
고교 시절에 교회의 목사님과 전도사님은
나에게 두려움을 심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을
통해 믿음을 강요했다. 대학교 때 만난
불교 과목의 교수님들은 나의 궁극적 질문에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 대답을 회피하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 짧은 경험을 통해
두 종교를 속단해 버렸다.
그러나
그 후 지조 없이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새롭게 다시 배울 수 있었다.
특히 그러한 방황 속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주위에서 아무리 이단이라고 하는
곳도 막상 그들 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그들의 입장을 직접 느끼지 않고는 절대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모든 이야기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다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김영우
박사가 쓴 『전생 여행』이라는 책 때문이었다.
나는 그 당시 윤회에 대해서 믿지 않았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 동물로 윤회하고,
동물이 인간으로도 윤회한다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책을 통해 전생과 윤회에 대해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지어 낸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그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마스터라는 존재의
말들이 너무 논리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전생
여행』은 불교에 관한 책은 아니었지만,
윤회로 대표되는 불교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현각 스님의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숭산 스님의 『선의 나침반』, 그리고
이경숙 씨가 쓴 『마음의 여행』 등은
불교에 대해 나에게 많은 것들을 새롭게
알게 해 주었다. 물론 이경숙 씨의 『마음의
여행』은 양자 역학을 너무 맹신하여 불교를
거기에 맞추려는 경향이 없지 않았지만
불교의 기본 교리 외의 새로운 것들을
체계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현각
스님의 책은 “예수님을 더 잘 알기 위해서
불교에 입문했다.”라는 스님의 말처럼
마음을 열고 끝없이 탐구하는 구도자의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숭산 스님의
책을 통해서는 세상의 어떤 지식에도 휘둘림
없이 ‘나는 누구인가, 오직 모를 뿐’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자신을 관하라는 가르침과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배웠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욱 구체적으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오쇼 라즈니쉬와 크리슈나무르티의
책들을 통해서였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방황을 해 왔지만
아직도 그러한 방황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예전의 그런 혼란스러운 방황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차분하게
나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는
지금까지의 방황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러한
방황을 통해 지금의 심적 여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나도
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사회적 지위와
많은 부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안다.
어른들은 나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사회적 지위와 많은 돈을 얻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분들은 그분들이 믿는 예수님이나
부처님을 인생에 실패한 사람들로 보지는
않는다. 물론 내가 좀더 여유롭고 풍족한
환경에서 편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성공의 관점은 상대적인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꾸었던 많은 꿈들에 나를 잊고
끝없이 이끌려 다녔다. 하지만 이젠 그런
꿈들에서 깨어났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나를 아는 것이다. 군대 가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어 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반대하는 부모님을 뒤로 하고
집에서도 나와서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다. 그분들이 말하는 돈이 과연
나에게 어떤 만족을 줄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돈을 벌면 벌수록
마음의 공허함은 커져 갔고 그 돈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으며 그 당시 나의 심적
공허함은 극에 달해 있었다. 결국 나는
먹고 사는 것보다 삶의 허무함을 이겨
내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미래를 향해 나를 이끌어 가고 싶지
않다. 하루하루 새롭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
한다. 미래의 어떤 시점에 윤회하기 위해
아니면 부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일매일,
순간순간, 윤회하고 부활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를 깨닫는 순간, 그 때
넘쳐 나는 사랑에 나를 내맡기고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나를 찾기 위한 가식적인
봉사가 아니라 진정 순수한 봉사를 하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허무주의로
매도하기도 한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그래었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면
알수록 이 세상에서 가장 충만한 가르침이라는
확신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의
어떤 시점에 새롭게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부처님은 순간순간 새로워지기를 가르친다.
오직 모른다는 생각으로 순간을 살다 보면
지금의 자신과 지금의 세계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자신이나 이 세계를 어떤 이상에
맞게 바꾸려고 투쟁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이 나의 마음에
체득되는 순간 나의 허무함은 사라지리라
믿는다.
지금까지의
경험은 나에게 이젠 현실과 타협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용기를 주었다. 나는 더 이상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을 것이며, 내가
원하는 길을 찾아 다른 사람이 만든 내가
아니라 ‘나를 위한 나’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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