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사마타 명상 그룹
황순일 / 불교대학 인도철학과 강사

인터넷 상에서 서구의 불교 사이트들을 돌아 다니다 보면, 겉은 아주 화려하면서 속으로는 별로 실속이 없는 사이트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간혹 겉도 속도 알찬 것 같은 사이트를 만나기도 하지만, 과연 이 곳이 실제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서구 불교 모임의 사이트인지 아니면 인터넷 상에만 존재하는 홍보 사이트인지는 컴퓨터의 모니터를 통해서 도대체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유수 대학에서 잔잔한 불교 명상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사마타(samatha) 명상 그룹의 홈페이지(http://www.samatha.org)는 결코 화려하지도 방대하지도 않으면서 영국 특유의 절제된 모습으로 서구의 재가 불교 명상 그룹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고 인터넷이 여기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근래 남방불교의 위파사나(vipassana) 수행법이 일종의 유행처럼 국내에 소개되면서 이것 만이 남방의 명상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지만, 止觀(samatha-vipassana)이란 한역 복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사마타와 위파사나는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음의 작용을 그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마타는 불교뿐만 아니라 인도의 요가 전통에서도 수행되어 온 것으로, 부드러우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마음 속의 숨어있는 능력을 끌어내어 단련시켜 마음을 평온하고 집중력이 높은 상태로 유지하여 계속해서, ‘직관’이란 의미를 지닌 위파사나 뿐만 아니라, 관법, 만트라 (mantra) 암송, 그리고 禪 명상 수행 등으로 나갈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마타 명상 그룹에서는 사마타 명상 기법 중에서도 가장 쉽고 모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호흡을 자연스럽게 따라 가는 수식관을 중심으로 명상 수행을 한다. 태국의 태라바다 전통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찾고 있는 사마타 명상은 1962년 태국 승려인 Nai Boonman에 의해 영국에 소개 되었고, 1973년 복지 재단의 형태를 갖추면서 영국 전역의 다양한 분야에서 이러한 형태의 명상 수행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87년에는 영국 서부 왜일즈 지방의 한 농장을 구입하고 내부를 수리해서 명상 수행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오래된 헛간을 명상 수행 강당으로 개조하고 주변에 몇몇 오두막을 지어서 주말이나 1 주일 단위로 영국 전역의 사마타 회원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집중적으로 명상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앞에서 언급 했듯이 사마타 명상 그룹은 재가 불교 명상 그룹으로서 대학의 불교 학생회에 뿌리를 두고 자생적으로 성장한 단체인데 초기에 주로 영국 중부 맨체스터 (Manchester)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1970년대 초반 맨체스터 대학의 불교 학생회에서 학생회 활동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명상에 참여하는 학생 및 학교 관계자들의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독립적이고 영구적인 장소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1977년경에 맨체스터 남서부에 있는 한 감리교 교회 건물을 구입하여 명상 센터로 사용하게 되는데 현재 이곳은 영국 중·북부 지역에 흩어져 있는 작은 명상 그룹들을 관리하는 본부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사마타 명상 그룹은 옥스포드, 켐브리치, 버밍험, 그리고 런던 (SOAS) 대학과 미국의 버클리 대학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필자가 처음 사마타 명상 그룹을 알게 된 것도 대학의 불교 학생회를 통해서이다.

옥스포드 대학 불교 학생회에서는 학기 중에 매주 한 차례씩 저명한 불교 학자 또는 승려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개최하는데, 불교 학생회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후에 알고 보니 대부분 사마타 명상 그룹의 회원들이었다. 따라서 각 대학의 불교 학생회는 강연회 등을 통해 불교와 명상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모으고 이들을 자연스럽게 사마타 명상 그룹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명상 교실 자체는 기본적으로 학생회와 별도로 사마타 명상 그룹에서 운영하는데 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 내부의 명상 교실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명상 교실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대학 내부의 경우 저녁 시간에 한두 시간 정도 빌릴 수 있는 강당이 많고 학생 또는 학생회의 이름으로 저렴하게 장소를 빌릴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대학 외부의 경우 저렴하면서 안정적으로 명상 그룹을 운영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아서 때때로 교회에 속한 문화센터의 강당을 빌리기도 한다.

현재 옥스포드의 경우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명상 교실은 New College의 Long room이란 작은 강당에서 매주 열리고 있는 반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명상 교실은 St. Giles Church에 속한 문화센터의 강당에서 열리고 있다.

이 경우 불교라는 색체 보다는 명상을 통해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수련한다는 일종의 정신과적이고 代替 의학적인 성격을 강조하는데 불교·기독교 신자를 포함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때로는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때로는 진지한 자세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재 사마타 명상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면서 사마타 명상의 교리적 바탕을 제공해 주고 계신 분은 랑스 카진(Lance S. Cousins) 교수로서 멘체스터 대학에서 빨리 아비담마 (abhidhamma)를 주로 강의하시다 은퇴하시고 현재 PTS (Pali Text Society)의 회장으로서 옥스포드와 런던 SOAS에서 주로 활동하시고 있다. 또한 1주일 정도로 진행되는 사마타의 집중 명상 코스를 주관하시기도 한다.

사마타 명상 그룹이 다른 일반적인 명상 그룹과 다른 점은 이들이 명상과 아비담마를 접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禪불교 전통에서는 가지고 있는 지식마저 모두 던져 버리고 좌선에 임하는 것에 반해서, 이들을 자신들의 명상 체험을 태라바다의 아비담마 전통과 연결시켜 보려고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1982년에 출판된 Abhidhamma Papers란 책으로 사마타 명상 그룹의 사이트에서 HTML 포맷으로 전문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사마타 명상에 익숙하면서 빨리 아비담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아비담마 그룹(An Abhidhamma Group)이란 공부 모임을 만들고 잘 알려진 빨리 아비담마의 개론서인 Abhidhammattha-sangaha를 교재로 오랫동안 공부해 오면서 각 회원들이 작성한 소논문들을 빨리 아비담마의 형식에 맞게 모은 것으로 책의 후기 (afterword)에서 랑스 카진 교수를 잠시 만날 수 있다.

이상으로 보았을 때 사마타 명상 그룹의 홈페이지는 자신들의 명상 그룹을 일반에 소개하면서 영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작은 명상 그룹들을 하나로 묶고 이들에게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해 주는 역할과 각 대학의 불교 학생회와 사마타 명상 그룹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의 홈페이지는 결코 방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실용적이고 알찬 내용들로 채워져서 나름대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대학을 중심으로 서구의 재가 불교 명상 활동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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