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운 사슴왕
안양규 / 불교문화대학 교수

붓다 재세시 쿠마라 카삿파(Kumra Kassapa)의 어머니는 어릴 적에 이미 세상사의 무상과 무의미를 느끼고 불법을 배우고자 출가하려고 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부모의 반대를 피하기 위해 시집을 가서 출가하고자 결심했다. 그녀는 훌륭하고 매력적인 아내로서 가정 생활을 잘 꾸려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되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출가의 뜻을 밝히고 허락을 받는다.

결국 그녀는 비구니 승원에서 행복하게 수행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위의 동료가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출가하기 전에 가진 아이이며 출가 이후에는 순결하게 생활을 하였다고 설명하였다. 그렇지만 데바닷타(Devadatta)는 사람들이 자신 및 자신의 교단을 다음과 같이 비난할 것이 두려웠다. “만약 내가 이 비구니의 결백을 수용하고 내 밑에 머물게 허락하면 사람들은 데바닷타 제자 중에 한 비구니가 임신을 하였다고 비난할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데바닷타는 그녀를 추방해 버렸다.

추방당한 그녀는 붓다에게 찾아갔다. 붓다는 지혜의 눈으로 그녀의 사정을 아시고 자비로운 방편을 냈다. 만약 그녀를 받아들이면 외도들이 그녀의 임신을 이용하여 “붓다와 그의 제자들은 청정하지 못하며 음란하다.” 라고 하며 붓다와 그 제자들을 비난할 것을 예상하시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문제를 분명히 하고자 했다.

그녀의 진실을 가리기 위한 모임에는 비구와 비구니뿐만 아니라 왕과 대신들도 초대되었고, 명망있는 재가신자들도 모이게 되었다. 붓다는 율에 정통한 우팔리(Upli)비구로 하여금 이 문제를 다루도록 했다. 우팔리는 현명한 재가 여자 신자 한 사람에게 정확하게 임신이 출가 전에 일어난 것인지 출가 후에 이루어 진 것인지 계산해 달라고 부탁한다. 재가 여자 신자는 그녀의 상태를 조사한 후 출가 전에 임신한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알렸다.

진실이 밝혀지고 그녀는 승원에서 수행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이후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다. 어느 날 왕이 승원을 지나다가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출가 생활에 아이는 장애가 된다라고 생각하여 왕궁으로 데리고 가서 키웠다. 이 아이는 영특하여 7살에 출가하여 불법을 배워 아라한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도 역시 아라한이 되었다. 붓다의 지혜와 자비스러운 방편에 의해 두 모자는 혹독한 곤경에서 구출되어 아라한이 된 것이다. 그런데 붓다는 전생에도 이 두 모자를 구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주 먼 과거에 붓다는 아름다운 황금빛 사슴으로 태어났다. 자라서 500마리의 사슴을 거느리는 ‘반얀(Banyan)’이라는 이름의 사슴왕이 되어 숲 속에서 살았다. 이 숲에는 역시 500마리의 사슴을 거느리는 ‘원숭이 사슴왕’이라는 사슴왕도 있었다.

베나레스(Benares)의 왕은 사슴사냥에 탐닉하여 매일 백성들을 불러 함께 사슴 사냥을 하였다. 백성들이 자신들의 생업이 사냥으로 방해받자 숲 속의 사슴들을 커다란 울타리 내에 가두어 두고 왕이 마음대로 사냥을 하게 했다. 왕은 두 마리 사슴왕 만은 죽이지 말도록 하였으나, 직접 와서 다른 사슴들을 활로 쏘아 죽이기도 하고, 그의 요리사가 와서 사슴을 죽이기도 했다.

반얀왕은 생각했다. ‘울안에 잡혀 있는 사슴들은 결국 모두 죽을 것이다. 그런데 불필요하게 활을 맞고 구타당하며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활을 보고 사슴들은 이리저리 무서워 달아난다. 차라리 하루에 한 마리씩 순번을 정해 스스로 돌에 부딪혀 죽는 것이 더 낫겠다.’ 반얀왕은 다른 사슴왕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동의를 받았다. 하루는 반얀 사슴 무리 중에서 한 마리가 뽑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또 다른 하루는 원숭이 사슴 무리 중에서 뽑혀 나갔다.

이렇게 번갈아 가며 사슴이 한 마리씩 죽어가던 중 새끼를 벤 어미 사슴의 차례가 되고 말았다. 이 어미 사슴은 원숭이 사슴 왕에게 찾아가 임신 때문에 자신의 차례를 뒤로 미루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원숭이 사슴왕은 어쩔 수 없노라고 하며 그 간청을 물리친다.

어미 사슴은 반얀왕에게 찾아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한다. 반얀왕은 그녀의 차례를 뒤로 미루어 주겠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반얀왕은 그 날 자신이 직접 그녀를 대신하여 돌에 부딪혀 드러누웠다. 신하가 반얀왕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왕에게 달려가 알렸다. 베나레스의 왕은 즉각 반얀왕에게 가서 왜 이렇게 되었는지 물었다. 어린 아이를 가진 어머니 사슴을 대신하여 자신이 오는 순서가 되어 이렇게 되었다는 반얀왕의 말에 왕은 감탄했다.

“오! 황금빛 사슴왕이여! 이전에 어느 누구도 그대처럼 친절, 관용, 사랑으로 가득찬 이는 보지 못했구나. 나는 그대의 사랑에 감동되어 그대와 그 어머니 사슴의 생명을 구해주고자 허락하노라.” 왕은 백성들로 하여금 함부로 사냥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고 백성들을 잘 다스렸다.

반얀 사슴왕의 아름다운 행위로 많은 생명들이 구해질 수 있었다. 위대한 한 사람의 희생이 얼마나 많은 이에게 선한 이익을 가져다 주는 지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붓다의 위대한 자비는 모든 중생들 특히 어려움에 처해 있는 중생들에게 미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기계적으로 사무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처리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타인의 어려움을 돌보라고 반얀왕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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