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일하고 맘 없이 주는 보시
김상일 / 국문학과 교수

지난 시기의 전적들을 접하다 보면 스님들의 행적이 비판을 넘어서 비난을 받기까지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스님들의 출가행위를 무부무군적(無父無君的) 행위라 하여 비난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은 특히 조선시대에 생산된 유가(儒家)들의 문집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이것들은 대체로 유가들의 불교에 대한 얕은 인식과 편향된 시각, 그리고 유가 중심적 가치기준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시인으로 저명했던 조수삼(趙秀三:1762-1849)도 승려들에게 그리 호의적이었던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그가 채록한 다음 이야기는 참된 보시 정신을 보여주고 있어 감동을 자아낸다.

 

덕천의 향교 근처에 빈 골짜기가 있는데 골 안은 모두가 잡목이 우거지고 돌판으로 되어  있어 비옥한 곳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하루는 한 스님이 와서 청하기를 “제가 저 빈 골짜기를 개간해서 밭을 만들고 갈아서 3년 뒤에는 법대로 세를 바치면 어떻겠습니까?”하였다. 향교에서는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였다

이튿날 아침 그는 두어 말의 떡과 도끼 한 자루를 가지고 와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는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서 손으로 나무를 뽑거나 처내고 발로 돌을 차서 굴려 내렸다. 해가 한 나절도 못 되어 푸른 나무 밑 둥과 뾰쪽한 돌들이 없어지고 땅이 평평해졌는데 뽑은 나무에 불을 놓고 갔다.

다음날 와서는 한 손에 쌍 보습을 움켜쥐고 밑에서부터 봉우리까지 가로 세로 위 아래로 수십 수백 무의 땅을 갈고 조 몇 섬을 심었다. 그리고 초막을 짓고 살았다. 가을이 되어 조 5, 6백 석을 수확했다. 금년에도 명년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이렇게 하여 조 3천여 석을 모았다. 하루는 향교에 와서 고하기를, “불교도는 밭을 갈면서 배울 수 없으니 소승은 지금 돌아갑니다. 밭은 향교에 드립니다.”하고, 다음 날 개간한 땅이 속한 고을과 이웃 고을 백성 3천여 호를 불러서 집마다 조 한 섬씩 나누어주고는 어디론지 훌쩍 떠나갔다.

 

조수삼은 유학의 경전은 물론 다방면의 독서를 통해 많은 견식을 쌓았던 사람이다. 또 그는 전국을 여행하여 견문을 넓혔다고 한다. 위 이야기는 그 견문을 기록한 것 중에서 ‘기이(記異)’이라는 형식의 글 속에 담겨 있다. ‘기이’란 기이한 행적이나 신이한 사적을 기록한다는 뜻이다.

조수삼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면에 감동해 이를 채집·정리한 것이라 여겨진다. 먼저 잡목이 무성하고 돌들이 어지럽게 솟아 있는 산골을 스님 혼자서 하루만에 개간한 점이 특이했을 것이다. 혼자 힘으로 작지 않은 넓이의 땅을 한 나절 만에 고르고 갈아엎은 그 엄청난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스님이니 고기와 같은 특별식을 먹어 체력을 다진 것도 아닐 것이다. 그가 먹은 것은 두어 말의 떡과 물뿐이다. 지금처럼 불도저를 이용한 것도 아니고 도끼 한 자루와 쌍 보습을 가지고 잡목이 무성하고 모난 돌들이 박힌 땅을 그렇게 빨리 개간한 일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스님의 집중력에서 가능하였을 것이다.  집중력은 그 일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된다.  만약 스님이 산골 숲의 개간을 통해서 얻을 이익과 그에 따른 어떤 기대감에 매어 있었다면 그 일을 그렇게 빨리 해낼 수 있었을까? 물론 기대감은 때론 미래에 대한 환상을 심어 주어 일을 힘든 줄 모르게 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을 앞에 두고 또는 일을 해가면서 이런저런 일(좋은 일이건 싫은 일이건)이 마음에 걸려 계획대로 일을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스님은 적어도 일 할 때만은 아무런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은 일과 하나가 되어 실수와 낭비가 없이 척척 되어가니 일은 효율적이고 즐거웠을 것이다. 이것은 곧 ‘일 삼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이 우리들의 상상을 뒤엎는 일을 해낸 힘의 원천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이 이야기의 기이함은 스님이 3년 간 생산한 조 3천여 석을 본 고을 사람들은 물론 이웃 고을 사람들에게도 흔쾌히 나누어주고는 표연히 떠나간 데 있다. 이런 행위도 ‘스님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스님들로서도 그리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시점에서 스님에게 묻는다면, 아마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뿐이다.’ 곡식은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갔으니 제 갈 데로 간 것이요, 스님은 일이 끝나 다시 공부하러 갔으니 역시 제 갈 곳으로 간 것이리라.

금강경에 “應無所住 行於布施”라는 구절이 있다. 보시를 하되 상(相)에 머무는 바 없이 하라는 말이다. 상을 가지고 보시를 하게 되면 그 보시 대상에게 바램을 갖게 되고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나아가서는 그 대상을 자기 소유물화 하려는 생각을 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위 스님이야말로 참으로 금강경의 이러한 보시정신을 실천한 분이라 여겨진다.

한편, 위 이야기는 일에 대한 우리들의 성취 위주의 관념을 반성하게 한다. 우리는 일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꼭 성취하려고만 든다. 물론 이 또한 일을 통해서 무엇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소유욕에 뿌리를 두고 있다. 때문에 일에 대한 성공과 실패라는 관념에 지나치게 얽매어 일하는 속에서 얻어지는 참 즐거움에 대해서는 느껴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스님은 잡목이 무성한 숲을 도끼질로 쳐내고 돌덩이를 뽑아 굴려 내리면서 손끝과 발끝에서 이는 어떤 시원스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마치 가슴속에 오래도록 자리잡고서 온갖 망념을 일으키던 한 집착이 놓여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지 않았을까.  

이제 삼월이 되면 새 학기가 시작된다. 학생들과 교수들의 학업 공간인 강의실도 지식의 전수와 이른바 ‘학점 따기’만이 아닌, 깨달음과 즐거움이 넘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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