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이
핀 못 강석근 스님 / 인문과학대
국어국문학과 강사
幽禽入水擘靑羅 새
한 마리 물속에 들며 푸른 비단물결 가르니
微動方池擁蓋荷 작은
연못에 이는 미세한 파동 연잎을 감싸안네
欲識禪心元自淨 선심이
원래부터 스스로 맑은 것을 알고자 하니
秋蓮濯濯出寒波 희디흰
가을 연꽃이 찬 물결 속에서 솟아오르네
<혜문
장로의 수다사 팔영에 차운한(次韻惠文長老水多寺八詠)
작품 가운데, 하지(荷池)>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의 이 시는 <연꽃이
핀 못>이라는 작품이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고려재조대장경》의 출판이 상징하듯이
불교문화의 절정기였다. 이런 문화적인
자양과 풍토에서 살아가던 그는 당대를
대표하는 거사였고 시인이었다. 한국문학사에서
선시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시대를 산
관계로 그의 시에는 제철 과일의 농익은
맛과 고차적인 불교 정서가 깃들어 있다.
기·승구의
주된 소재인 ‘고요한 곳에 사는 새[幽禽]’는
아마 물총새인 듯하다. 이 새는 한가한
못에서 먹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들었다.
이 때문에 푸른 물결에 파문이 생기고
이 파문으로 인해 연잎까지 흔들렸다.
이런 논리는 불교의 인연설인데,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구에서 ‘소쩍새의
울음’이 ‘국화의 개화’를 이끌어냈듯이,
이 시의 새는 연못에 파문을 일으킨 원인이었다.
이 파문은 어리석은 중생의 흔들리는 마음을
상징하는 시어이지만 결국에는 연꽃의
개화를 인도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전·결구는
앞뒤를 바꾸어 “희디흰 가을 연꽃이 찬
물결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보니/ 선심이
원래부터 스스로 맑은 것을 알겠네”라고
읽으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다가온다.
부처님이 가섭에게 도를 전했던 염화시중(拈華示衆)의
고사가 연상되는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연꽃에서 마음의 정체를 알아버린 도인이다.
밤이슬을 맞고 함초롬히 피는 연꽃은 선종이
수많은 화두를 숨겨놓은 깨달음의 창고였던
것이다. 선시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선입견을 가진 이들이 많지만 이규보의
이 선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데다 불교의
심오한 논리까지 분명히 담겨있어 시의
맛이 가을 햇살처럼 상쾌하다. 이 시는
불교를 문학이라는 그릇에 오롯이 옮겨
놓았기 때문에 진한 서정시의 감동과 선시의
향기를 동시에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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