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불교
틱낫한 스님

틱낫한(釋一行·76) 스님은 16세에 베트남에서 출가해 평생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시인이자 평화 운동가이기도 한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세계를 돌며 전쟁을 반대하는 연설과 법회를 했다. 이런 평화 운동으로 1967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으나, 베트남 정부의 입국 금지로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몸이 되고 말았다. 1960년대에 그가 주창한 참여불교는 전세계 불교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80년대 초 프랑스로 망명한 스님은 1982년 보르도 지방에 명상 수련 센터 ‘플럼 빌리지’를 세워 세계 각국에서 몰려오는 사람들에게 종교 간 갈등 극복을 호소하고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특히 플럼 빌리지는 걸으면서 명상하는 수행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선 현재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세계 각국의 비구·비구니 1백20여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평화와 행복은 꿈이 아닙니다. 일상의 삶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현실로 나타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설계를 잠시 접고, 현재에 대한 불안과 걱정도 거두면서 바로 이 순간에 여러분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을 깊이 들여다 보길 바랍니다. 문득 태양의 따스함, 어린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그리고 상쾌한 바람이 느껴집니다. 이 모든 것이 행복과 안녕과 기쁨의 샘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은 평화와 행복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현대사회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길을 잃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잠시 서서 미소를 짓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길거리에 마른 풀이 추운 겨울을 힘겹게 견디고 있음을 매일 봅니다. 그리고 놀이에 빠진 초등학생도 만납니다. 이런 풍경은 여러분을 미소 짓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미소는 여러분 자신에게 기쁨과 기분전환을 안겨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심지어 작은 풀까지도 여러분의 미소에 힘을 얻을지 모를 일 입니다.

푸른 하늘과 울긋불긋한 꽃, 새의 지저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이 모든 것은 불국정토, 즉 신의 왕국에 속하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은 죽어야 신의 왕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신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매우 치열하게 살아 있어야 합니다. 다만 ‘정신집중(concentration)’과  ‘마음다함(mindfulness)’이 전제되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경이로 가득한 참된 삶을 몸으로 접할 기회를 잡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바로 이 순간에, 바로 여기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면서 내세의 천국을, 신의 왕국을, 혹은 정토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죽음 뒤에나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죠.

그러나 부처님에 따르면, 이 순간에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능합니다.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지금 이 순간에는 행복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미래를 위해 현생을 거부해야 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삶은 바로 이 순간에 경이롭고, 이 순간에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평화와 행복을 얻는 방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먼저, 마음다함이라는 수행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행복의 조건들이 늘 우리 곁에 있구나라고 자각하게 됩니다. 지금 당장 펜을 들고 여러분이 가진 행복의 조건을 적어 보십시오.

행복의 조건들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불교 신자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몸을 열고, 마음을 열면 모든 행복의 조건이 당신의 손에 닿습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마음다함이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마음다함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행복의 조건들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많은 사람은 행복을 돈과 명성·권력·섹스를 기준으로 파악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와 젊은 세대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과 파괴를 안겨줍니까?

마음다함은 일상의 모든 활동에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 운전을 하고, 차나 커피를 마실 때도 지극 정성으로 마시고, 심지어 전화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마음다함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정신 집중 또한 행복의 원천입니다. 마음다함이 여러분을 행복으로 안내하지만, 만약에 여러분의 마음이 마음다함의 상태를 놓아 버린다면 여러분은 다시 행복을 잃고 맙니다. 마음다함의 지속은 여러분이 정신집중을 계속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이 순간에 정신집중했다가 그 다음 순간에 놓아 버린다면, 여러분은 행복을 계속 지켜갈 수 없습니다.

소극적으로 들리는 행복의 원천이 하나 있습니다. 포기하거나 마음을 비우는 것이지요. 여러분을 행복하지 못하게 막는 유일한 장애는 아마 여러분이 버리거나 비우지 못하고 있는 바로 그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의 행복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온 것들을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사람일 수도 있고, 주택일 수도 있고, 욕망일 수도 있고, 관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뒤로 버리고, 더 이상 그런 것의 희생이 되지 않는 것이 아마 행복의 진정한 조건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마음을 비우지 못합니다. 그 때문에 지속적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참선수행의 목적이 뭡니까? 여러분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것입니다. 자유인처럼 호흡해 보세요. 그러면서 여러분 속에 도사리고 있는 노예의 뿌리를 찾아내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의 욕망과 화와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쑥 빠져나가게 내버려 두십시오.

단순한 삶은 행복의 또 다른 원천입니다. 단순하고, 마음을 다하는 삶의 중요한 양상 하나는 소비 방식입니다. 우리는 매일 뭘 먹습니까? 아이들에게는 뭘 먹이고 있습니까? 심각한 질문입니다. 잠시 그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부처님은 모든 존재가 음식으로 살아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현대인의 경우 육체에는 소화 가능한 음식을 공급하고, 정신에는 TV와 음악·빌보드 광고·잡지·영화 등 감각적인 대상들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모든 이미지와 소리를 섭취합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모든 것은 우리의 의식과 육체·마음에 영향을 미칩니다.

일부 선진국의 어린이들은 매일 TV를 네 시간 이상 시청합니다. 어린이들이 TV를 보면서 어떤 자양분을 섭취하겠습니까. 어린이들이 어떤 감정과 사상을 받아들일까요? 젊은 세대 사이에 폭력과 화·갈망·절망이 팽배합니다. 그들이 소비하는 음식을 보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섭취한다는 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그것이 우리의 신체와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안다는 뜻입니다. 어린이와 이 사회를 보호하려면 우리는 마음을 다 쏟는 소비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매일 섭취하도록 내놓을 수 있는 경이로운 것들이 이 세상에는 아주 많습니다. 자연의 정원은 맛나고 건강한 음식으로 넘쳐납니다. 말하는 방식, 걷는 방식, 정성을 다하여 호흡하는 방식, 그리고 동정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방식,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어린이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음식들입니다.

평화의 이미지, 화해의 이미지, 더욱 커진 이해심의 이미지가 어린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음식입니다. 부디 여러분이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가꿔 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린이들을 어떻게 키워가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돌아봐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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