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타난 붓다의 가르침
김세종/ 영어영문학과 4학년

셰익스피어는 16, 17세기경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현재까지도 인정받는 대문호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매우 다양하며, 그 경향 또한 시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한 가지,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며 일관성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upside down’, ‘handy-dandy world’로 표현되는 현상의 가변성, 혼란 등의 불규칙적 흐름이라 할 것이다. 그의 이러한 작품 사상이 필자에게는 붓다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가르침과 연기설(緣起說)의 세계관으로 다가왔다.

여기서는 이러한 공통점들을 찾고 동양과 서양을 초월한 궁극적 깨달음의 존재를 희미하게나마 짚어 보고자 한다. 하지만 붓다의 일관적인 가르침과는 다르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그 일관성이 확연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상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 중의 하나인 『리어 왕』을 선택하여 구체적인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리어 왕』은 셰익스피어가 1605년에 쓴 비극이다. 사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분분하지만, 필자는 『리어 왕』이 셰익스피어의 비극들 가운데 심오한 인간의 문제와 함께 여러 가지 생의 철학들을 제기한 가장 복잡하고 깊이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리어 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개의 플롯을 이루고 있는 리어 왕과 글로스터의 이야기 속에 결코 행복이 존재치 않는다는 것이다.

스윈번(A. C. Swinburne, 1837∼1909년)은 『리어 왕』에서, “한 줄기 구원의 불빛도, 화해의 보증”도 없는 어둠만을 발견한다. 그는 말한다. “『리어 왕』에는 빛도 휴식도 출구도 전혀 없다. 우리는 그 어떤 신도 물을 부어 주지 않는 뿌리들로부터 인간에게 아무 빛도 던지지 않는 별들까지, 휴식처나 안내소도 없는 삶과 죽음으로 가득 찬 세계를 쳐다보고 내려다본다. 다만 헛되이.”

『리어 왕』을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은 4법인(法印) 중 하나인 일체개고(一切皆苦)와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즉 인간은 그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헛된 6도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삶과 죽음으로 점철된 끝없는 윤회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극중의 광대가 리어 왕을 위로하며 노래를 부른다.

“어이, 아저씨. 아이가 처음 태어날 때, 왜 우는 줄 알아? 그건 이 바보들의 무대에 오게 된 것이 슬퍼서 우는 거야.”

이 또한 일체개고의 사상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주목할 만한 하나는 『리어 왕』에 나타나는 ‘Nothing’ 사상이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코델리아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자리에서 말한다.

“Nothing. My lord.” 즉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모든 비극이 초래된다.

모든 비극이 극에 다다를 무렵 코델리아와 재회한 리어 왕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자, 그녀는 또 다시 말한다.

“No cause, No cause.” 즉 아무런 잘못도 인위적 행위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 ‘No cause.’는 작품 도입부의 ‘Nothing’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무(無)로써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리어 왕』의 모든 사건과 비극은 ‘Nothing’에서 시작되어 ‘No cause.’로 막을 내렸다. 다시 말하자면 무(無)가 모든 사건과 급진적 파멸을 야기하였고 또 끝을 맺은 것이다. 이는 인생과 세계 자체가 무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시 말해 3법인의 첫째인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그 어떤 실체도 『리어 왕』의 작품 속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단지 혼돈 그 자체만이 소용돌이치듯 동요하고 있을 뿐이었다.

또한 『리어 왕』 안의 주요 인물, 리어, 코델리아, 에드먼드, 글로스터 등은 모두 비극으로 종결되는데, 그 원인은 중도를 이루지 못한 데 있었다. 리어 왕은 자신의 신분을 잃은 채 나태와 안일로 기울어 버렸다. 그는 더 이상 국정을 돌보기를 원치 않았으며 딸들에게 그 책임을 넘기고 편함을 추구하고자 했다. 코델리아 또한 중도를 지키지 못함으로 죽음을 향하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너무도 숭고하게 여긴 채 그 어떤 미사 여구(美辭麗句)도 끼어 들어서는 안 될 성역으로 간주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붓다와 셰익스피어 사이에는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차이점이란, 각자의 세계관에 대처할 수 있는 대안의 차이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그 대안이 소극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 극 중 에드가의 대사에서 이는 잘 나타난다.

“사람은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하직할 때도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참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회를 기다리는 일입니다.”

셰익스피어에게 인생은 참고 기다리는,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반면에, 붓다는 8정도를 통한 열반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삶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적극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둘의 사상에 우위를 가릴 순 없다. 그것은 각자의 가치관에 달린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 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떠나 하나의 삶 속에서 그 답을 밝히고 진리를 탐구하며 대안을 찾아 한 평생을 고뇌했던 붓다와 셰익스피어의 삶에 깊은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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