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법칙과 붓다의 가르침
신병준/ 경영학 전공 3학년

내가 엔트로피(entropy)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곳은 군대에서였다. 부대 안의 책방에서 책을 뒤적거리다가 엔트로피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는데 일단 제목이 특이해서 ‘이건 소설책인가?’ 하고 몇 장 읽다가 결국 세 시간 만에 쉬지 않고 다 읽어 버렸다. 책을 읽고 나서 약간은 머리가 혼란스럽기도 하고 뭐랄까 흔히들 말하는 신선한 충격도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가장 크게 받은 느낌은 ‘불안감’ 바로 그것이었다. 정말 이 책대로라면 ‘우리는 지금 잘못 살고 있는데!’라는 생각이 든 것은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하는 사실일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불안감을 다소 해소시켜 주는 대안을 내세웠는데, 나는 그것과 붓다의 깨달음과의 연관성을 발견하고선 붓다에 대한 존경심을 새삼 크게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붓다의 깨달음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배워서 이해하기에는 무척 어려움이 있다고 느끼지만, 최대한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 핵심은 ‘고리를 끊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어느 하나도 우연히 이루어진 게 없다는 것, 모든 일에는 그 근원이 있고 그것에 의해 결과라는 것이 생기다는 것이다. 들판에 풀 한 포기, 하늘의 구름 한 점도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몇 억겁의 윤회의 과정을 거쳐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그 수레바퀴의 틀에서 현실 세계의 우리의 눈에 그 자신의 존재로 비춰진다는 것이 불교의 핵심 교리인 윤회 사상이다. 이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서 자아에 대한 관념을 초월해야만 붓다는 깨달음의 길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말이 쉽지, 우리 현대인의 그 집착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고 그 집착 혹은 더 나아지려는 욕구에 의해 지금 우리들은 편리하다고 느끼는 발전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그 목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더 비상식적인 그리고 위험한 생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정말 붓다의 그 깨달음은 까마득한 옛날 얘기, 아니면 일부 수행자 혹은 불교도만의 논리일까? 정말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서 그게 우리 현대인에게 진정 통하는 말일까? 앞에서 말했듯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나는 엔트로피라는 개념에서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다.

엔트로피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의 총합을 말한다. 여기서 바로 유일한 엔트로피의 법칙이 나오게 되는데, 그것은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에너지를 소비함으로써 그만큼 앞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 세상의 전체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엔트로피의 유일한 법칙이다.

엔트로피 법칙은 우주가 생겨나고 자연 현상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자연계의 질서로서 아마도 인류는 이 엔트로피 법칙의 속박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윤회의 굴레를 끊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엔트로피의 증가를 멈추게 할 수 없다. 다만 다행히도 그 증가의 속도는 늦추게 할 수 있다. 엔트로피적 사고 방식이 뿌리 깊이 박힌 사람들은 그 대안으로서 지금까지의 세계관을 바꿀 것을 강조한다. 영구적인 물질적 성장을 믿는 기계적 세계관에서 한정된 자원을 보존하고 아껴 쓰는 엔트로피적 세계관으로 바꾸자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붓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것은 우리에게 엔트로피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

모든 일의 근원은 인연에서 비롯된다는 연기법을 토대로 하여, 붓다는 모든 존재의 생로병사를 그 이전 삶의 업에서 근원을 찾았고 그 업을 소멸시키기 위해 깨달음을 강조한다. 그 깨달음은 연기의 사슬을 끊는 것, 욕구와 집착을 버리고 그 원인이 되는 느낌, 접촉, 여섯 가지 감각, 의식 그리고 그 태초의 근원인 어리석음을 타파하라는 것이다.

어리석음……. 붓다는 이 세상이 고통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8정도를 통해서 어리석음의 고리를 끊고 중도를 취해서 모든 집착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렇다. 인류의 더 나아지려는 욕구는 이렇게 우리를 편리하다고 느끼는 세상으로 인도해 주었지만 이미 그 발전 단계에서부터 부작용을 동시에 생산해 냈다.

이제는 그 욕심을 좀 버려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까지 ‘발전호’라는 열차를 타고 무수히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엔트로피’ 레일 위를 달려 왔다. 이대로라면 종착지인 ‘열 종말’ 역까지는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붓다의 깨달음의 심오한 부분까지는 모르더라도 이제 우리는 안다. 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 주는 현생의 존재로서 미래의 우리 자손들을 위해서, 그리고 후생의 우리를 위해 무언가 해야만 한다. 엔트로피 법칙은 이 세계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붓다는 이러한 충족될 수 없는 욕망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만 궁극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엔트로피의 증가를 가속화시키는 어리석음만을 범하지 말고,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해 보는 것을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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