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파간의 불탑 김미숙/
불교학부 강사
파간,
황금빛이다. 그 땅이 그렇고, 못다 헤아리는
불탑들이 그렇고, 보는 이의 마음도 이내
금빛으로 물든다. 파간, 그 땅에 서면
누구나 서리서리 감겨드는 감회를 주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오랜 과거
속에 묻혀 있는 영화의 잔영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서
깊은 불교 유적들이 흔히 그렇듯이 파간의
유적군도 마치 박제품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뿐, 미얀마
사람들의 아직도 여일한 불심을 알아채고
나면, 파간의 유적들은 다른 빛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긴
세월, 미얀마의 정치적 주체의 변동과
부침 속에서도, 미얀마 사람들의 불심은
참으로 독실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파간의 유적들을 세웠고 또한 지금껏 지켜
온 지주 또한 그러한 불심이었을 것이다.
파간은
미얀마의 젖줄로 불리는 에야와디 강줄기를
따라 펼쳐져 있는 평원에 있다.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꼽힐 만큼 방대한 유적군은
첫눈에 압도될 만큼 너무도 방대하여 끝
간 데 없다.
미얀마
역사상 최초의 통일 왕조로 불리는 파간
왕조는 1044∼1287년까지 지속되었다.
1057년 수도로 정해진 파간은, 아노야타
왕 당시 태국을 침공하고 나서 수많은
예술가들을 파간으로 이주시키고, 코끼리
30마리 분량의 불교 문화재를 가져다가
곳곳을 치장했다고 전한다. 그 후 200여
년 동안 번성했던 파간의 역사는 1287년
몽골군의 침입 이후부터 쇠잔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옛부터 중국에서 인도로 들어가는 여로에
자리한 파간은 중요한 교통 요충지였다.
윈난성에서 북인도 아삼으로 가는 도상에
들러가는 곳이었던 파간은, 왕조가 성립되어
수도가 되기 이전부터 불교 문물이 넘나들던
불국토 중 하나로 그 이름을 떨쳤다.
전설은
말해 준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 다니며 깨달음의
희열을 만끽하던 고타마 붓다. 그가 라자야타나
나무 아래서 선정에 들어 있을 때였다.
그 곳을 지나가던 대상의 행렬 중에 타풋사와
발리카라는 상인 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붓다를 보고서 보리죽과 꿀떡을 공양으로
바친 뒤, 그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하며
귀의했다. 그들은 증표로서 붓다의 머리카락을
받은 후 돌아와서, 땅속 200미터 깊이에
묻은 뒤 황금 불탑을 세웠다. 그 탑이
양공에 있는 슈에다곤 파고다라 한다.
미얀마의
불교사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슈에다곤 황금 탑의 전설이다. 경전에
등장하는 타풋사와 발리카, 두 인물이
미얀마 땅에 살던 선조로서 유서 깊은
전법의 시초가 되었는지 그 여부는 증명할
길 없다. 다만 초전 법륜이 있기도 전에
붓다의 머리카락을 가져 와서 탑을 세워
신봉했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역사 오랜
불심의 땅이라는 반증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누구든지 사원과 파고다에 들어갈 때에는
경건한 옷차림에 반드시 맨발이어야 할
것을 고수하는 미얀마. 유적들만 남아
지키는 파간에서도 이 원칙은 예외가 아니다.
현재
파간 지역에 남아 있는 2,000여 기의 파고다들
중에서 눈에 담아 둘 파고다를 선별하는
것은 그야말로 난감한 일이다. 파간 왕조
당시에는 반경 42평방 킬로미터에 달하는
권역에 총 13,000기의 파고다가 산재했었다고
전한다. ‘조사 건탑’(造寺 建塔)을 최상의
지상 목표로 내세웠던 시대라 하지만,
인구 밀도마저 희박했던 그 당시를 감안하면
불가사의 그 자체일 따름이다.
파간에서
가장 오래된 파고다는 부파야이다. 7세기경에
건립된 부파야 파고다는 강변에 자리해
있어서 옛부터 뱃길의 등대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따마양지
사원은 파간에서 가장 거대한 사원이다.
왕위에 오르고자 아버지와 형 등을 살해했던
나라투 왕이 참회의 심경으로 조성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슈에지곤 파고다. 1087년에 건립된 파간
제일의 파고다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가장 숭배하는 파고다이며, 그 이유는
붓다의 두전골과 치사리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노야타 왕 때 건립하기 시작했으나,
그의 아들 찬시타 왕 때 완공되었다. 후대
파고다의 전형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간의
유적군 중에서도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아난다 사원은 아름다운
조형미로도 첫손에 꼽힌다. 1091년에 건립된
정방형 사원의 본당 한쪽 길이는 무려
53미터에 이르고, 4면의 내부 각각에는
입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총 면적은 555평방미터에
달한다. 이 넓은 사원 공간을 가득 메웠을
숨결이 아련하기만 하다.
붓다를
시봉했던 미남자 아난다의 이름을 딴 것이라
전하는 아난다 사원의 복제를 방지하고자
찬시타 왕은 그와 관련된 이들을 몰살시켰다는
비화가 바람에 전한다.
그
밖에도 파간 최고층의 파고다인 탓빈뉴
사원은 높이 66미터를 자랑하고, 건립
당시의 벽화가 보존되어 전하는 슐라마니
사원, 프레스코 벽화로 유명한 잔타 동굴,
노을을 만끽하는 데 최상의 전경을 지닌
틸로민로 사원 등등, 파간의 유적 하나
하나가 각별하기 이를 데 없다.
건사(建寺)
왕조로 불리는 파간 왕조 때뿐 아니라
미얀마에서는 왕, 귀족, 민중,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앞다투어 파고다를 세우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미얀마에
산재한 파고다가 수만 기에 이른다고 하니,
그다지 과장은 아닐 것이다.
현재
미얀마는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어 있으며,
불교 또한 국교로 지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한때 사원에 들어가
수도 생활을 하며, 그 경험을 일생 일대의
최고 명예로 안다는 미얀마는, ‘붓다의
나라, 파고다의 나라’라는 칭호가 전혀
무색하지 않다. 전 국민의 86퍼센트가
넘는 불자들이 전통 깊은 롱지를 입고
사원으로, 파고다로 … 무리 지어 예배의
행렬을 이루고, 붉은 가사 걸쳐 입은 스님들의
탁발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미얀마에
지상 불국토의 꿈이 실현될 날은 그리
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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