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조심
정운 스님/ 불교문화대학 강사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겨울이 짧은 가을을 더 짧게 느끼게 한다.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는 십일월의 문턱에서 겨울 준비하느라고 마음들이 바쁘다. 추위를 녹이려고 가까이 더 가까이 불을 대하다 보면 그 고마움이 가슴까지 따뜻해진다.

그러나 행복과 불행은 한 자매라는 비유도 있듯이 이 때쯤이면 뉴스에서 전해오는 무서운 화재 소식은 그것이 누구의 일이든 가슴 철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주위에 있는 난방 시설 등을 점검하고 꺼진 불도 다시 살펴보는 불조심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한 순간 방심하고 부주의한 탓으로 일평생 이루어 왔던 것들을 순식간에 무(無)로 돌려놓는 것이 불이기 때문이다.

한 순간 타오른 불길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불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음의 불인 화내는 일이다. 짜증, 스트레스, 성냄, 분노, 무자비 그리고 폭력 등이 마음 불의 권속들이며, 이것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 속에서 점화되어 세력을 떨치려고 야단이다.

늦어진 아침, 밀리는 출근 길, 해결해야 할 일들과 부딪히는 사람들 그리고 원하는 결과는 보이지 않고 끝없는 노력만을 요구하는 현실 앞에서 화 밖에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며 모습이다. ‘그래 인생은 역시 고해다’ 라고 하면서.

겨울이면 화재를 일으킬 조건과 환경이 너무도 많이 있듯이 현실 또한 화 한번 냈다하면 언제 어디서든 우리 자신을 태워버릴 요소들로 꽉 차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이처럼 화나게 하는 일들을 피해서 도망 갈 수도 없다. 우선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다. 불조심처럼.

하지만 이것으로 해결을 본다면 부처님께서 근본번뇌에 넣지도 않았을 것이다. 탐·진·치 즉 탐욕, 성냄, 어리석음 이 셋은 모든 번뇌망상의 뿌리이며 그 해로움은 독사와 같다고 하여 삼독이라 하였다.

부처님께서 ‘화를 내어 나쁜 말을 하게 되면 마치 입에 피를 물고 남에게 뿌리는 것과 같다. 그 뿌리는 피가 남에게 닿기도 전에 이미 자기 자신의 입안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듯이 화를 낼 땐 분명 밖으로 불을 뿜었는데 결국 자신이 타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화를 내면 다른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생명을 해치게 된다. 자주 화를 내면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자꾸 꼬이며 자신의 성격이 원만해지지 못하고 모습과 행동이 평화롭지 못하다. 끝까지 고치지 못하면 축생 중에서도 뱀의 과보를 받거나 화탕 지옥을 피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렇게 되면 화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절실히 요구된다.

현대는 전문가의 기술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생활용품 가운데 작은 것이라도 고장이 나면 전문 기술자 없이는 꼼짝 못하는 세상이다. 화를 다스릴 수 있는 전문 기술을 습득한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만나는 인연 모두에게 불안과 고통 대신 평화와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화를 다스릴 수 있는 기술 가운데 계戒·정定·혜慧 삼학을 익혀 적용하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화를 내는 횟수를 줄여가야 한다. 화내는 습관이 악업을 짓는 지름길임을 깊이 새기고 얼마나 자주 화를 내는지 관찰해 본다. ‘자주 화를 내지 않는다’, ‘두 번에서 한 번으로 줄인다’, ‘다시는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하는 약속이나 맹세를 스스로 다짐하고 깨뜨리지 않을 것을 노력하는 것이 계의 힘이다.

그리고 화를 냈을 때 자신이 가장 먼저 빠르게 화난 모습을 알아차리고 차분히 가라앉힌다. 이것은 선정에서 얻은 직관의 힘으로 가능하다. 선 수행이나 명상 등이 이에 해당한다.

화의 불길이 식지 않고 오래도록 타면서 괴롭힐 때에는 세상 모든 것이 본래 실체가 없이 공하다고 하였듯이 지금 붙어있는 화근 덩어리도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혜의 힘이다.

부처님이 금강경에서 말씀하셨듯이 옛적 인욕선인으로 수행하던 시절에 가리왕이 자신의 육신을 하나씩 잘라 버릴 때에도 조금도 화를 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다고 하였다. 인욕하는 수행자로써 어떤 어려움도 참아내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맹세인 계의 힘과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선정력과 본래 실체가 없음을 깨우친 지혜의 힘이 어떤 화냄도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끝으로 이런 일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아차 또 화를 내었구나 했을 땐 더 심하게 화가 날 것이다. 이것을 고통의 고통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감정들을 어떻게 보살피고 다루어야 하는지를 틱낫한 스님은 “화(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라는 책에서 자세히 전하고 있다.

화를 다스리고 해탈에 이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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