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anger) 다스리기
전해주 스님/ 불교학과 교수

최근 틱낫한(Thich Nhat Hanh, 1926- ) 스님의 『화(anger)』가 불자들 사이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스님은 베트남의 고승으로서 현재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자신이 세운 명상수련센터 플럼빌리지(plumvillage)에서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화(anger)』의 서문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절망 · 미움 · 두려움 등은 모두 우리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독이라 했다. 그리고 이 독들을 하나로 묶어 ‘화’라고 했다. 마음속에서 화를 해독하지 못하면 우리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라고 하면서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지혜를 자세히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화가 날수록 말을 삼가라’, ‘성난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라’, ‘화가 났을 때 남의 탓을 하지 마라’ 등이다.  

우리는 대부분 화를 다스려야 하는 줄 알면서도 잘 다스려지지 않아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일본 하루야마 시게오의 『뇌내혁명』에서는 인간은 화를 내거나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서 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그 물질은 대단히 강한 독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자연계에 있는 독으로는 뱀 다음으로 그 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뇌에서 분비하는 호르몬은 극히 소량에 지나지 않지만, 항상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자주 받으면 이 호르몬의 독성 때문에 노화가 촉진되어 오래 살 수 없다고 한다. 아무리 불쾌한 일을 겪더라도 사태를 긍정적이고 발전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뇌는 신체에 이로운 호르몬을 분비하고, 반대로 아무리 행복한 환경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거나 누군가를 증오하는 불쾌한 감정을 가지면 몸에 해로운 물질을 분비한다. 따라서 모든 것을 플러스 발상으로 받아들여 늘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항상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면서 편안하게 일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뇌에서 분비하는 호르몬중 가장 긍정적인 효력을 발생하는 물질을 엔돌핀이라 하니, 엔돌핀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뇌내혁명』에서는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만약 우리 인간이 나쁜 짓을 하여 이익을 얻어서 느끼는 기쁨의 결과는 어떨까하는 것이다. 가령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려서 많은 돈을 벌어 지위나 명예를 얻었다고 하자. 자신이 원했던 것을 성취하였기에 그 사람은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행복을 느끼고 기쁨을 맛보면 뇌에서는 역시 몸에 이로운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웃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거나 남에게 원망을 사는 행동을 하면 무슨 까닭인지 잘 알 수 없으나 뇌는 그 사람을 서서히 멸망의 방향으로 유도해 간다는 것이다. 뇌의 유전자 속에는 선조의 선행이나 악행에 관한 기억까지 모두 입력되어 대대손손 누적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항상 선한 생각을 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며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해야 건강하게 잘 산다고 강조하고 있다.

남에게 해를 끼치려하면 자신에게 나쁜 과보가 되돌아오고, 선한 마음으로 행하면 반드시 즐거운 과보가 생기는 것이다. 선인선과 악인악과는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법이고 연기의 진리이다. 사소한 일에 크게 걱정하거나 화내지 말고 오히려 상대를 불쌍하게 여기고 자비롭게 대할 때 자신도 즐겁게 될 것이다.

『화엄경』 「보현행품」에서는 화내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을 보지 못하였다고까지 교설하고 있다. 화내는 마음을 일으키면 백만 가지 장애되는 문을 이루게 되는 까닭이라고 화내는 것을 크게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십지품」에서는

보살은 성품이 화내지 않나니, 보살이 일체중생에게 항상 자비한 마음을 일으킨다.

라고 한다. 그리고 화가 나면 자비관을 하도록 말씀하고도 있다.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이고 수행자상인 보살은 대비로 인해 중생을 구제하고 궁극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게 된다. 자신을 화나게 하고 해롭게 하는 듯이 여겨지는 중생들로 인해 대비를 창출하고 대비심을 일으킴으로써 자신도 중생도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현행원품」에서는 보현보살이 선재에게 중생을 수순하는 원을 일으키도록 다음과 같이 가르쳐주고 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대비심으로 체를 삼으시는 까닭에, 중생으로 인하여 대비심을 내고 대비로 인하여 보리심을 일으키고 보리심으로 인하여 등각을 이루시느니라. 비유하면, 넓은 벌판 모래밭 가운데 한 큰 나무가 있어 만약 그 뿌리가 물을 만나면 가지나 꽃이나 과실이 모두 무성하게 되는 것과 같다. 생사광야의 보리수왕도 역시 그러하니, 일체중생으로 나무 뿌리를 삼고 여러 불보살로 꽃과 과실을 삼아서 대비의 물로 중생을 이익하게 하면 즉시에 여러 불보살의 지혜의 꽃과 과실이 성숙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들이 대비의 물로 중생을 이익하게 하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보리는 중생에 속하는 것이니 만약 중생이 없으면 일체 보살이 위없는 깨달음 (無上正覺)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동체대비로 중생을 수순함으로써 보리를 얻고 불보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비관으로 자신의 화를 다스릴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대비심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성불하는 보살이 될 수 있게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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